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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대법 판결에 들썩
사회적 다양성 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 제시

7월18일, 동성 커플을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한다는 대법원의 판결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동성 커플인 소성욱씨와 김용민씨는 대한민국에서 법적 혼인관계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2019년 결혼식을 올렸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허용했다가 언론에서 이슈가 되자 박탈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역사상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에서 동성커플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기에 중요성을 띤다. 비록 동성혼 자체를 법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 차별이기에 인간의 행복 추구권 등을 침해한다고 보았다. 65쪽에 이르는 판결문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가 우리 사회의 변화하는 가족 형태에 따라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명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요성이 큰 판결 이슈에 비해 다소 조용히 알려지기는 했지만, 같은 날 나온 또 다른 판결 중 하나는 성소수자에게 축복식을 했다는 이유로 감리교단에서 출교당한 이동환 목사의 출교 효력 정지 판결이다. 이 목사는 2019년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경기연회에서 정직 2년의 징계를 받았고,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이 목사가 출교 처분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7월18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7월18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퀴어 영화 배제’ 요구한 인천에 시정 권고

이 역시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종교계 일부의 혐오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판결이다. 법원은 이 목사에 대한 출교 효력을 정지함으로써 종교기관 내의 차별적 관행에 맞서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기독교계 밖의 사회 변화를 애써 외면한 채 자신들만의 세계를 고집하던 교계 일부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7월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인천여성영화제에서 퀴어 관련 영화 상영 시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겠다는 인천시의 처분이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2005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20회를 맞이하는 인천여성영화제는 2020년부터 인천시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인천시는 영화제 상영작 검열과 퀴어 영화 배제를 요구했고, 이에 인천여성영화제 측은 인천시의 차별적 행정을 비판하고 보조금 수령을 거부했다. 인권위는 8~9월 중 인천시에 시정을 권고할 예정이고, 인천시는 90일 이내에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 밝혀야 한다. 

이번 결정은 특히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영화 상영을 금지하는 것이 차별임을 명확히 하고, 문화예술계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촉진하도록 하는 기반이 되는 결정이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단순한 사적인 편견의 차원을 넘어 공공정책과 행정 절차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시켜주는 의미도 지니며, 더 나아가 인천시뿐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이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다양성을 더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국내에서 잇따른 성소수자 이슈 관련 새로운 판결들은 이미 실행된 지 오래되기도 한 해외의 변화들과 연결되어 있다. 네덜란드는 23년 전인 2001년에 이미 “결혼은 이성의 혹은 동성의 두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법률에 명시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현재 전 세계 35개국에서 전국적으로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2019년에 동성혼을 합법화했으며, 이에 따라 대만의 동성 커플들은 혼인 등기를 할 수 있고 이성 부부처럼 자녀 양육권, 세금, 보험 등과 관련한 권리도 갖게 되었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지자체에서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해 동성 커플에게 어느 정도 법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2015년 도쿄도는 세타가야구와 시부야구를 시작으로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승인했고, 2022년에는 도쿄도 전체가 이 제도를 승인했다.

 

글로벌 기업들, 성소수자 인정 정책 펴

전 세계 기업에서는 이미 성소수자를 존중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IBM의 사례다. 26세이던 1964년 IBM에 입사한 린 콘웨이가 성전환 과정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1968년 IBM은 그를 해고했다. 성전환 수술을 마친 콘웨이는 이후 제록스에 입사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마이크로칩 설계를 자동화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 기술은 이를 함께 연구했던 카버 미드 교수의 이름을 합쳐 ‘미드-콘웨이 혁명’이라 불릴 만큼 컴퓨터 산업과 반도체 과학에 큰 영향을 끼친 기술이다.

린 콘웨이는 이후 미시간대학 교수가 되었고, 컴퓨터과학자로 영예로운 다수의 수상을 했으며, 트랜스젠더 활동가로도 활동했다. 그가 82세가 되던 해인 2020년 IBM은 그를 찾아가, 52년 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해고했던 일을 사과하고 공로상을 전달하기까지 했다. 현재 IBM은 적극적인 성소수자 친화 정책을 펼치는 기업 중 하나다.

현재 포춘 500 기업의 91%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많은 글로벌 기업은 다양성(diversity) 및 포용(inclusion)과 관련한 전담 조직을 두고, 이와 관련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는 특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책무일 뿐 아니라, 직원들이 직장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 때 창의성과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고, 이것이 곧 수익과 연결된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토요타는 성소수자 직원을 포함해 모든 직원이 사내 괴롭힘, 건강 문제, 다양성 정책과 관련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두고 있다. 구글은 사내에 성소수자 지지 모임 ‘게이글러스(Gayglers)’가 있으며, 구글코리아는 2014년부터 매년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국내외 변호사와 연구자들로 구성된 ‘SOGI법정책연구회’는 2018년부터 이미 ‘성소수자 친화적 직장을 만들기 위한 다양성 가이드라인’ 책자를 제작·배포하고 있다. 구글과 ‘인권재단사람’의 지원으로 제작한 이 가이드라인은 웹사이트(//diverseguide.org)에서 누구나 다운받아 조직 운영에 참고할 수 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5월 동성혼 법제화와 비혼 출산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혼인평등법’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득표율이 2.14%에 그쳤던 것에 비해, 장혜영 전 의원이 서울 마포갑 지역구에서 8.78%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선거 후 3일간 후원금 폭탄을 받았다는 사실은 주목해볼 만한 일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사회적 명분에서든 실리적 이유에서든 국내외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선택지는 점점 더 적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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