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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병·의원 휴진 참여율 저조…사전신고 4% 그쳐
“휴진 병원 목록 만들어 불매하자” 지역사회 분통터져
정부, 업무개시명령 발령 “의료인 자유 제한할 수 있어”

서울 강북구 메디컬센터 건물 엘리베이터에 휴진을 안내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서울 강북구 메디컬센터 건물 엘리베이터에 휴진을 안내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하이고 다행이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단 휴진을 예고한 18일 오전. 서울 강북구 메디컬센터 건물에서 만난 이아무개(65)씨는 정형외과가 정상 진료를 한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병원을 찾았다는 이씨는 “무더위에 문 여는 병원을 찾아 헤맬 뻔 했다”며 “나이 든 사람들은 ‘병원이 진료를 안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덜컥 겁부터 난다”고 토로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미로 소속 교수, 봉직의, 개원의들에게 이날 하루 휴진할 것을 독려했다. 의협 지도부는 “감옥은 내가 간다. 쪽팔린 선배가 되지 말아 달라”며 휴진에 동참해 달라고 피력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등 엄정 대응에도 진료를 거부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진료를 쉬겠다고 한 곳은 3만6371개 의료기관(의원급 중 치과·한의원 제외, 일부 병원급 포함) 중 4.02%에 그쳤다. 이날 오전 시사저널 취재진이 메디컬센터 3곳을 비롯한 병·의원 30여 곳을 살펴본 결과, 휴진에 참여한 병원은 3곳밖에 되지 않았다.

휴진 소식에 불안에 떨었던 환자들도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이아무개(70)씨는 뇌경색 진단을 받고 신경과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이씨는 “평소처럼 진료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서도 “대학병원에서 치료가 안 된다고 하기에 동네 종합병원으로 왔다. 여기까지 휴진하면 앞으로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한 항문외과의 청소노동자도 “오전 8시30분경 문을 열었는데 대기실에 환자들이 빼곡하게 줄을 서있었다”면서 “하루라도 쉬었다가는 환자들이 난리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가 휴진을 예고한 18일 오전 시민들이 병원을 오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대한의사협회가 휴진을 예고한 18일 오전 시민들이 병원을 오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환자 볼모 삼은 파업에 절대 반대”

실제 지역 커뮤니티 등에서는 휴진에 참여하는 병원 목록을 만들어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충남 당진시 주민이 모인 한 커뮤니티에는 “이번 집단 휴진에 동참하는 병·의원을 불매하자. 환자를 볼모로 하는 파업에는 절대 반대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에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며 “절대로 그런 병원은 가지 않고 주변 지인에게도 널리 전달해 불매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개원가에서 50년째 약국을 운영해왔다는 한 약사는 “4년 전 의협 휴진 때도 개원의 참여율은 저조했다”면서 “개인병원이 진료를 거부할 경우 타격이 크기 때문에 쉽게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18일 병원 입구에 붙은 휴진 안내문 ⓒ시사저널 정윤경
18일 병원 입구에 붙은 휴진 안내문 ⓒ시사저널 정윤경

다만 일부 병원의 휴진으로 환자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한 하지정맥류 전문병원 앞에는 “급한 용무나 진료 문의는 병원으로 전화하면 담당자에게 연결된다”는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래층 정신과의원도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해당 병원은 환자들에게 휴진을 알리며 “19일부터 정상적으로 진료 한다”고 공지했다.

김아무개(70대)씨는 “오늘 문 여는 것 아니었느냐”며 허탈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2층짜리 메디컬센터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휴진에 참여하는 병원 목록을 환자 등에게 보여주며 혼란을 수습하기도 했다.

이날 휴진을 주도한 의협은 오후 2시 서울 여의대로에서 ‘정부가 죽인 한국 의료, 의사들이 살려낸다’는 주제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공연과 가두행진 등을 통해 정부 의료정책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휴진을 ‘불법 진료 거부’로 보고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사전에 안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료를 취소하면, 의료법 제15조에 따른 ‘진료 거부’로 판단해 고발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전국 3만6000여 곳 의료기관에 진료 명령을 내린 데 이어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업무개시명령도 발령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국민의 생명권은 그 어떤 경우에도 보호돼야 할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며 “정부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등 공공복리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 부분 자유를 제한할 수 있고, 의료업도 무제한 자유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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