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위암 사망률 추월해 2040년 1위 전망
가족력 지녔거나 췌장염 환자는 매년 검사해야
췌장암이 심상치 않다. 췌장암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성큼성큼 높아지고 있어서다. 의학 발전으로 대부분의 암 사망은 감소하는데 췌장암 사망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증가 추세다. 앞으로 5~10년 이내에 인간을 위협하는 1~2위 암으로 췌장암이 급부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뾰족한 진단법과 치료법이 없는 만큼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 췌장암 사망률(인구 10만 명당)이 처음으로 위암을 추월했다. 통계청의 2023년 사망원인 통계 자료를 보면, 암 사망률 순위는 폐암·간암·대장암·췌장암·위암 순이다. 남성에서는 폐암·간암·대장암·위암에 이어 5위이고, 여성에서는 폐암과 대장암에 이어 3위다. 2021년과 2022년의 췌장암 사망률은 13.5명에서 14.3명으로 증가했고, 위암 사망률은 14.1명에서 13.9명으로 낮아진 것이다.
2014년부터 10년 동안 소위 5대 암 가운데 간암과 위암 사망률은 꾸준히 낮아졌다. 반면에 폐암·대장암·췌장암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폐암 환자는 34.4명에서 36.3명으로, 대장암은 16.5에서 17.9명으로 증가했다. 췌장암은 10.1명에서 17.9명으로, 가장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미국에서는 이미 췌장암 사망률이 폐암과 대장암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30년에는 2위로 부상해 직접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암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췌장암행동네트워크(PanCAN)와 MD앤더슨 암연구소는 2021년 미국의사협회저널에 암 발생과 사망에 대한 예측 보고서를 발표했다. 앞으로 20년 동안 가장 많이 발병하고 사망하는 암 종류가 변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췌장암 사망자 수가 2030년 대장암 사망자 수를 넘어설 것이라는 대목이다.
이들 단체는 과거에도 암 예측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암 사망률 4위였던 췌장암이 2016년 유방암 사망률을 추월해 3위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는데, 그 전망은 현실이 됐다. 당시 그 예측 보고서는 과학자와 의사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그해 가장 높은 인용률을 보인 연구논문이 됐다. 췌장암행동네트워크의 최고책임자인 린 마트리시안 박사는 “약 10년 전에 췌장암은 미국에서 암 사망 4위 암이었다. 우리가 예측했듯이 췌장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16년 유방암 사망자 수를 앞질러 3위가 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연구진도 2022년 대한의학회지에 같은 전망을 내놨다. 국립암센터 연구진은 국내 췌장암 발생자 수가 2017년 7032명에서 2040년 1만6170명으로 2.3배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성식 국립암센터 간담도췌장암센터장은 “췌장암 발생자 수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40년이면 간암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사망률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겠지만 그 정도는 미미할 것이다. 성별로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발병률과 사망률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췌장암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암정보센터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폐암 사망자는 약 1만8000명으로 모든 암 가운데 가장 많고, 간암이 약 1만 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4위인 췌장암 사망자는 약 7000명인데, 췌장과 붙어있는 담낭·담도암 사망자 약 5000명까지 합하면 약 1만2000명에 이른다. 이미 췌장암, 담낭·담도암은 암 사망률 순위 2위인 셈이다. 이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 유럽췌장암학회 데이터를 봤는데, 2024년 암질환 중 사망 1위가 췌장암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췌장암과 담도암으로 인한 사망이 암질환 중 3~4위 정도인데, 2040년에는 다른 암을 다 제치고 압도적 1위가 될 것이다. 지금도 한 해 약 8000명의 췌장암 환자가 생기는데 그때는 2배가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견 힘들고 진단과 치료도 어려워
이처럼 췌장암 발생과 사망이 급부상하는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가장 큰 배경은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점이다. 의학이 발달해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범위가 넓어졌지만 췌장암은 그 범위 밖에 존재하는 셈이다. 이진 교수는 “간암은 간염과 간경변 검사, 위암은 40세 이상에서 2년마다 내시경 검사, 대장암은 5~10년마다 내시경 검사, 폐암은 저선량 CT 선별검사로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췌장암을 조기 진단할 방법은 아직 없다. 그래서 6대 국가암검진에도 췌장암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없다.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야 황달, 복통, 체중 감소 등이 생기는데, 그나마 잘 인식하지 못하고 방치하기 십상이다. 췌장암만을 위한 진단법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복부 초음파,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내시경 초음파(EUS), 양성자 방출 단층촬영(PET), 혈청종양표지자(CA19-9) 등 거의 모든 진단법을 총동원하다시피 한다.
췌장암을 발견해도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가 많아 치료도 마땅치 않다. 췌장암의 기본 치료는 수술인데 주변 혈관, 간, 폐 등으로 전이되지 않은 1기나 2기여야 수술이 가능하다.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은 20% 남짓이다.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도 십이지장, 담도, 담낭, 비장 등 여러 장기에 둘러싸여 있는 췌장암 수술은 범위가 넓고 까다로워 수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췌장암을 제거했더라도 합병증이나 재발 등으로 생존율이 높지 않다.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모든 암 가운데 가장 낮은 15% 전후다. 1995년과 2020년 암 생존율 추이를 살펴보면, 모든 암의 생존율은 평균 30% 이상 높아졌다. 위암이 43.9%에서 78%로, 대장암은 56.2%에서 74.3%로, 생존율이 낮다는 폐암도 12.5%에서 36.8%로 상승했다. 그런데 췌장암은 10.6%에서 15.2%로 5% 정도 높아지는 데 그쳤다. 담낭·담도암 생존율도 30%가 채 되지 않는다. 담낭·담도암도 사망자 수에서는 6위(2022년 기준 5127명)를 차지할 정도로 만만치 않다. 이종균 대한췌장담도학회장(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췌장암은 발견이 어렵고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전이하므로 사망률이 높다. 그래서 생존율 상승이 가장 더딘 암이 췌장암”이라고 말했다.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면 남은 것은 예방뿐이다. 그러나 췌장암 예방을 위한 뚜렷한 수칙이나 권고 기준이 없다. 다만 위험요인으로 알려진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회피하는 것이 예방법으로 권장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의학적 증거로 확인한 위험요인은 흡연과 가족력이다. 췌장암의 25%가 흡연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또 흡연자가 췌장암에 걸리는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2~5배 높고 다른 기관에 암이 생길 확률도 증가하므로 금연은 췌장암 예방에 필수 요인이다.
췌장암 25%는 흡연 때문으로 추정
췌장암 환자 중 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약 7.8%로 일반인의 췌장암 발생률 0.6%에 비해 빈도가 높다. 직계가족 중 50세 이전에 췌장암에 걸린 사람이 1명 이상 있거나, 발병 연령과 상관없이 2명 이상 췌장암 환자가 있으면 가족성 췌장암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췌장암 관련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거나, 가족 중에 췌장암 환자가 있거나, 자신이 만성 췌장염 환자라면 다소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종양표지자검사 같은 주기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꾸준한 검사를 통해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도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2022년 미국 임상종약학저널에 발표된 바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연구팀은 2014년부터 7개 의료기관의 췌장암 검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들 중 거의 절반은 췌장암 관련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매우 강력한 췌장암 가족력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73%가 진단 후 5년까지 생존했고, 평균 생존 기간은 10년 미만이었다. 그러나 췌장암 검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중도에 탈락한 사람은 대부분 암세포가 전이된 후 진단됐고 평균 생존 기간은 1.5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강력한 증거가 있는 위험요인은 비만(과체중)이다. 따라서 고지방·고열량 식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적색육, 가공육, 포화지방산 음식, 술, 과일당 함유 음료나 음식 등은 췌장암 발병 위험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췌장암은 당뇨병과도 관련이 있다. 갑자기 당뇨병이 생겼거나, 본래 당뇨병이 있거나, 췌장염이 있는 사람은 정기적인 진료를 받아야 한다. 당뇨병이 췌장암의 원인일 수 있고 반대로 췌장암이 당뇨병의 원인일 수 있다. 췌장암을 진단받기 전 2년 사이에 당뇨병이 흔히 발생하고, 당뇨병을 5년 이상 앓은 사람에게서 췌장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당뇨병을 장기간 앓고 있거나, 특히 55세 이상에서 가족력 없이 갑자기 당뇨병 진단을 받은 사람은 췌장암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50세 이상에서 급격한 체중 감소, 원인을 모르는 상복부와 등의 통증, 이유 없는 소화불량, 지방변이 생긴 경우도 췌장암을 의심하고 진료받아야 한다.
간 수치 높이는 건강보조식품은 금물
서동완 대한췌장담도학회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현재는 진단이 장기별로 접근한다. 그러나 일반인은 한 번의 복부 골반 CT로 대장·자궁·난소·전립선·췌장 등에 이상이 없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앞으로는 흉부나 복부 등을 검사할 때 가능한 한 많은 장기의 이상을 살펴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찾기 힘든 췌장암을 조금이라도 더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췌장암 예방을 위해 피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건강보조식품이다. 건강보조식품을 대사하는 간이나 콩팥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령 무슨 즙을 먹고 간 수치가 상승하면 즙 복용을 몇 개월 중단하라는 처방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는 췌장 등 내장 기관의 문제로 간 수치가 올라간 상황인데도 긴급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