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앞두고 저출산 대책 등 공약 쏟아져…재원 마련 방안 없는 선심성 공약도 ‘수두룩’
총선이 눈앞이다. 공약이 쏟아진다. 공약은 사회복지부터 금융시장, 기후위기 대응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아무래도 사회복지 분야, 특히 저출산 문제에 초점을 맞춘 공약이 많다. 여당은 초등학생 방과 후 보육을 담당할 늘봄학교를 무상화하고, 아빠 유급 출산휴가 1개월을 의무화하며, 육아휴직 급여는 최대 21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1억원을 대출해 주고, 첫 자녀를 출산하면 무이자, 둘째를 출산하면 원금 50% 감면, 셋째까지 낳으면 원금 전액 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현금 지원책을 내놨다.
‘무늬만 공약’보다 실적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은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할 때 경제정책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는 32%, 갤럽 조사에서는 유권자의 29%가 경제 공약을 투표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선거 때 정당들이 경제 공약을 쏟아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경제 공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권자도 정당들이 내놓은 공약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른다’거나 ‘전혀 모른다’는 응답이 보통 40%에 가깝다. 내용이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굳이 자세한 내용을 알려고 노력해야 할 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야의 공약은 원칙적으로 각 정당의 정책 기조와 방향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에 사회안전망 확충을 포함한 재정지원 사업이 많다면, 여당은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제도 개편에 집중한다. 여성가족부 해체와 인구 문제를 전담하는 부처 신설이라는 여당의 공약이나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에서 했던 지역화폐 발행 확대라는 야당의 공약은 정당의 색깔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약들이다. 기후위기 대책에서도 여당은 소형원전(SMR) 지원으로 원자력 경쟁력을 함께 높인다는 방향인 데 비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을 현재의 3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여야의 모든 공약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선심성 공약 경쟁 속에서 수준만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야당이 대학 등록금 등 교육비 일체의 장기적인 무상 제공을 약속한다면, 여당은 국가장학금을 중산층까지 확대하겠다고 하는 정도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정당의 공약들을 모두 비교해 보면 생각보다 비슷한 공약이 많다. 아예 같은 공약도 꽤 있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공약은 여야가 모두 내놓은 공약이다. 철도 지하화, 경로당 점심 제공 확대 등도 공통 공약들이다.
이미 추진되고 있어 공약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사업도 많다. 야당이 사실상의 선거운동이라며 비판하는, 대통령의 민생토론회에서 언급된 사업들은 대부분 이미 추진이 확정됐거나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사실 간병비 급여화도 이미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공통으로 내놓은 대선 공약이었다. 21대 국회에서 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에 ‘간병’을 명시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여야는 끝내 처리하지 않았다. 정작 유권자들의 관심이 큰 문제지만 첨예한 논란이 예상되면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당이 공약으로 내놓은 금융투자 소득세 폐지에 대해 민주당은 아직 당론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검토 중이라고만 한다. 위성도시들의 서울시 편입이나 경기도의 분도 문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대해서도 확실한 입장이 없다. 유권자가 공약에 굳이 관심을 갖기 힘들다.
공약의 현실성을 생각하면 유권자가 굳이 알고 있어야 할 이유가 더욱 부족하다.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는 연간 최대 15조원의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 지난해 건강보험 지출 90조원의 17%에 달한다. 민주당의 ‘결혼·출산·양육 패키지’ 대책엔 한 해 28조원이 들어가야 한다. 이미 올해 관리재정수지는 91조6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국채 이자를 갚는 데만 27조4000억원이 든다. 여당이 공약한 철도 지하화 사업비는 65조원으로 추산하는데, 민자 유치로 이 돈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성이 부족한 비수도권에서 민자 조달 방식의 철도 지하화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여야 합의가 필수적인데도 공약이라고 내놓은 것도 많다. ‘재건축 패스트트랙’만 해도 도시정비법과 주택법 등 10여 개 법안을 고쳐야 가능한 일이다. 유권자가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유권자 관심이 공약을 진지하게 만든다
정책의 차별성도 뚜렷하지 않고 논쟁적인 공약도 있는 데다 현실성마저 떨어진다면 굳이 유권자가 공약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줄어든다. 설사 유권자들이 알게 된다고 해도 실현 가능성을 의심한다면 공약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공약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수도 이전처럼 지역적으로 이해관계가 분명한 사안이거나 무상급식처럼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란이 되는 쟁점일 때뿐이었다. 이미 집권한 상태인 여당의 경우 중요한 것은 공약이 아니라 역시 집권 후의 실적일 것이다. 유권자들이 공약을 살펴보고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는 것이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라면, 집권여당의 정책 수행 실적에 대해 심판하는 것은 회고적 투표(reprospective voting)에 해당한다. 대통령 재임 중 선거는 회고적 투표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이때 가장 중요한 변수는 어느 나라나 선거 전의 경제 상황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려는 선심성 공약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야당이 민생 회복을 위해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자고 제안하면, 여당은 세 자녀 이상 가구의 모든 자녀에 대해 대학 등록금 면제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세수 확충 방안을 내놓는 곳은 없고 건전 재정을 강조하던 정부와 여당도 감세만을 얘기한다. 선심성 공약 경쟁 속에서 여야의 모습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권자가 공약에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 바람직한 건 아니다. 선거는 국가적 의제를 여야가 치열하게 논쟁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 그 방향을 정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위임민주주의(Delegation Democracy)의 원리는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가 국민에게 공약을 제시하는 것은 당선되면 실천하도록 위임받는 과정이라는 의미임을 강조한다. 공약을 기억하고 다음 선거에서 그 공약의 실현 여부를 묻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가 아닐까 싶다. 까다로운 유권자가 공약을 진지하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