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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당하며 ‘사용’된 후 버려지는 ‘산업동물’들
불법 승마장 성행…사람이 변해야 말도 변해

나이키가 지냈었던 불법 승마장의 열악한 마방 상태. 본래 마방은 톱밥이나 짚을 깔아 말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김지나
나이키가 지냈었던 불법 승마장의 열악한 마방 상태. 본래 마방은 톱밥이나 짚을 깔아 말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김지나

얼마 전, SBS <TV동물농장>에 말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나이키’는 많은 경주퇴역마들이 그렇듯 성적부진으로 경마 트랙에서 떠나게 됐을 당시 불과 다섯 살이었다. 이후 불법으로 운영되는 승마장으로 보내졌다. 편안한 잠자리도, 신선하고 깨끗한 먹이도 없는 그곳에서 나이키는 갈비뼈가 다 드러날 만큼 야위어갔다. 하지만 승마장 사람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이 죽으면 값싸게 팔려 나오는 또 다른 경주퇴역마를 사들이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런 곳에서 고통을 겪고도 나이키가 다시 한 번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연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만은 끝끝내 거부했다. 그동안 나이키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달려야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격렬한 경마트랙에서, 나중에는 뜨내기 초보 손님들이 드나드는 승마장에서. 열심히 달렸지만 그 어떤 칭찬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끔찍한 배고픔을 견뎌야 했으니, 어쩌면 나이키는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런 나이키를 쓸모없는 말, 문제가 있는 말이라고 치부해버렸다.

나이키를 입양한 마주(馬主)는 그에게 새로운 놀이를 가르쳤다. 승용마를 찾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 타지 못하는 말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채찍과 박차를 강하게 쓴다면 어떻게든 달리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마’는 어디까지나 말과 함께 즐겁게 운동하고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 여러 가지 놀이를 배우는 나이키. ⓒ출처: @taraelizabeth6
새로운 주인을 만나 여러 가지 놀이를 배우는 나이키. ⓒ출처: @taraelizabeth6

‘승마’의 목적은 ‘달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학대 받았다가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나 마음의 상처를 회복한 동물 사연은 나이키 말고도 많다.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강아지, 고양이 이야기라면 차고 넘친다. 말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아마도 ‘산업동물’이란 특수한 구조 안에서 착취와 학대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일 테다.

산업동물이란 소나 돼지, 닭처럼 ‘산업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말은 ‘스포츠산업’, ‘여가산업’에서 활약한다. 승마가 동물학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부족한 이해와 잘못된 선입견이 학대와 다름없는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실은 승마라는 스포츠가 아니라 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인식이 변해야 하는 문제다.

잘못된 말산업 구조 속에서 비전문화된 승마장들이 생겨나고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말이 늘어나고 있다.
잘못된 말산업 구조 속에서 비전문화된 승마장들이 생겨나고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말이 늘어나고 있다. ⓒ김지나
잘못된 말산업 구조 속에서 비전문화된 승마장들이 생겨나고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말이 늘어나고 있다. ⓒ김지나
잘못된 말산업 구조 속에서 비전문화된 승마장들이 생겨나고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말이 늘어나고 있다. ⓒ김지나

말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면 충분

나이키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들은 대개 불법으로 운영되는 승마장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꼭 불법이 아니더라도 미성숙한 승마장들이 너무 많다. 말 산업을 육성한다며 각종 지원금이 나오고, 매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퇴역마가 경마장에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다. 전문화되지 않은 승마장에서 특별한 훈련을 거치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자격증 몇 가지로 전문가 행세를 하며 제2, 제3의 나이키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이키가 머물렀던 그 불법 승마장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말들이 마르고 지친 모습으로 마방을 지키고 있다. 나이키 마주는 그 승마장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랬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했다. 다만 ‘더 좋은 방법’이 있음을 모를 뿐이라고, 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이키와 함께 하는데 가장 필요했던 건 대단한 기승실력이나 말 조련 능력이 아니었다. 인내심과 시간, 그리고 나이키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했다.

나이키 사연을 다룬 방송국의 인터넷 계정에는 ‘경주마는 일반 승용마보다 거칠다’, ‘나이키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기 때문에 승용마로 전환이 힘들다’는 선입견 가득한 댓글이 달려 있다. 변하지 않으려는 건 말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아닐까. 나이키 마주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말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좋은 승용마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나이키도 다시 사람을 태우고 달릴 날이 곧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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