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사태 몸통’ 이인광 에스모 회장 검거 막전막후
검찰 측 “신속한 송환 위해 후속 조치 진행 예정”
‘라임자산운용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돼온 이인광 에스모 회장이 검거됐다. 검찰의 수배를 피해 해외도피길에 오른 지 4년6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3월18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소도시인 니스에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프랑스 경찰과 공조해 이 회장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3대 펀드 사기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해 말 디스커버리펀드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라임에 수사력을 집중해 왔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라임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프랑스 남부 소도시 니스에서 덜미
이번에 검거된 이 회장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김정수 전 리드 회장,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 등과 함께 ‘라임 회장단’으로 불린 기업사냥꾼이다. 그는 수천억원대 라임자산운용 자금을 동원해 동양네트웍스(현 비케이탑스)와 에스모(현 에이팸), 에스모머티리얼즈(현 이엠네트웍스), 디에이테크놀로지 등 상장사를 연이어 인수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이들 기업 자금을 횡령하거나 시세조종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출신인 이 회장은 당초 여느 기업사냥꾼들과 마찬가지로 서울 명동이나 강남 사채시장에서 차입한 자금을 상장사 무자본 인수에 활용했다. 라임자산운용과의 인연이 시작된 건 동양네트웍스를 인수한 2017년 이후다. 당시 이 회장은 같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출신인 김정수 전 회장으로부터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을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 회장은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제공받았다.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가 이 회장이 무자본 인수한 상장사의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동양네트웍스(200억원)와 에스모(700억원), 에스모머티리얼즈(1100억원), 디에이테크놀로지(200억원) 등이 제공받은 라임 자금은 2200억원에 달한다.
라임자산운용의 지원은 자금에 그치지 않았다. 이 회장이 에스모를 통해 디에이테크놀로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는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다. 또 제3의 기업이 발행한 CB에 투자해 에스모머티리얼즈를 인수하게 한 후 펀드 청산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CB를 에스모에 넘기기도 했다. 이를 통해 에스모는 에스모머티리얼즈를 간접 지배할 수 있었다.
시사저널은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오랜 기간 이 회장이나 주변 인사들의 문제를 추적 취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라임자산운용에서 받은 자금으로 다른 기업사냥꾼을 지원한 정황도 포착했다.
‘보디가드’ 등 언더웨어 브랜드로 유명한 좋은사람들을 무자본 인수한 이종현씨가 대표적이다.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차남인 이씨는 2018년 좋은사람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인수 자금 중 100억원을 동양네트웍스(30억원)와 에스모(35억원), 디에이테크놀로지(35억원) 등 이 회장이 실소유한 3개사로부터 지원받았다(시사저널 제1588호 ‘[단독] 라임자산운용 자금 좋은사람들 인수 동원 의혹’ 기사 참조).
이 회장은 2019년 라임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수배 대상에 오르자 차명으로 보유 중이던 동양네트웍스 지분을 담보로 한 저축은행에서 수백억원대 대출을 받은 후 종적을 감췄다. 이후 그는 필리핀과 싱가포르, 태국, 독일, 프랑스 등을 오가며 검거 전까지 4년5개월여 동안 도피생활을 이어왔다.
도피 중에도 이 회장의 불법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해외에서 자신이 실소유한 이엠네트웍스(옛 에스모머티리얼즈)의 경영을 측근인 홍아무개 회장에게 맡기고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시사저널 제1761호 ‘[단독] 라임 사태 주범 이인광, 해외도피 중 원격경영으로 백억대 횡령 의혹’ 참조). 검찰은 최근 이와 관련한 강제수사에도 착수한 상황이다.
검찰 “신병 인도 후 계속해서 수사”
강남 사채업자 출신인 홍 회장은 이 회장이 평소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지분이 전무함에도 2022년 초 이엠네트웍스 경영권을 확보, 재고자산 매각 대금 횡령과 가공거래 등의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는다. 비자금 중 일부를 강남 유흥업소 마담 출신의 이 회장 동거녀 이아무개씨에게 전달한 혐의도 있다.
이 회장의 소재는 서울남부지검의 라임 재수사 과정에서 확보됐다. 검찰은 지난해 말 라임 수사팀을 재편성하고 경찰청,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 인터폴 사무총국, 프랑스 인터폴 등과 합동추적팀을 구성해 이 회장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이 회장의 출입국 내역 등을 조회한 결과 프랑스를 최종 도피 국가로 판단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이 회장의 구체적 은신처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는 최근 홍 회장의 대리 경영 및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시사저널 제1796호 ‘[단독] 검찰, 라임 사태 몸통 이인광 재수사 칼 빼들었다’ 참조). 당시 압수수색 대상에는 이엠네트웍스 본사, 홍 회장과 이 회장 동거녀 이씨의 자택 등이 포함됐다. 검찰은 이씨의 자택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프랑스로 김치 등 식료품을 국제특송으로 발송한 영수증을 확보했다. 이후 영수증상 배송지 주소를 인터폴에 전달해 이 회장의 신병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범죄인 인도 청구를 통해 프랑스에서 이 회장의 신병을 조속히 인도받은 후 이 회장과 국내 조력자에 대한 수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장이 국내로 송환되면 라임 사태의 실체가 좀 더 명확하게 규명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해외에 도피한 자본시장 교란 사범을 끝까지 추적해 죄에 상응하는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이 회장에 대해서도 신속한 송환을 위해 후속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합동추적팀은 라임 사태의 또 다른 주역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의 신병 확보에도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2019년 10월부터 도피생활 중인 김 회장을 최우선 검거·송환 대상인 ‘핵심 등급’으로 분류해 소재지를 추적하고 있다. 합동추적팀은 김 회장이 필리핀에 은신처를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 회장을 검거하기 위해 필리핀 당국에도 지속적인 공조 요청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