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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강북∙분당의 근생 접근성, 물품 조달 시간, 물가 비교해 보니…도농 격차 실감
‘농촌유학’으로 인구 유턴 성과 거둔 곡성군…“국가 전체로 보면 인구 쟁탈전 불과” 지적도

※ 이하 기사는 2월19일 온라인 기사 "“해 지면 이북”…‘소멸 위기 0순위’ 곡성군에서의 7일"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거기 무서운 동네 아니야?” 영화 《곡성》의 음산한 이미지 탓인지 ‘곡성 1주일 살기’ 기획은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샀다. 결론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숙식에 필요한 환경도 다 마련돼 있었고, 주민들도 친절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이곳을 ‘요람 없는 무덤’으로 만들었을까. 곡성 생활의 편의성을 실증적으로 따져봤다.

우선 기자는 곡성군 옥과면 숙소에서 주요 근린생활시설 22곳까지 접근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해 봤다. 숙소는 전남과학대 인근 원룸으로 실제 학생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의원과 약국, 어린이집, 초·중·고교 등 근린생활시설 18곳은 모두 걸어서 20분 내에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4곳이다. 산부인과, 소아과, 종합병원, 영화관 등에 가려면 광주시나 곡성읍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면 출발시간과 버스 간격에 따라 짧게는 45분에서 길게는 2시간10분까지 걸렸다. 은행의 경우 2금융권(옥과농협)은 걸어서 8분 거리에 있지만, 시중은행(NH농협은행)은 곡성읍에 있다. 버스로 가려면 50분~1시간50분을 잡아야 했다.

수도권은 근린생활시설 22곳 모두 도보 또는 버스로 최장 23분이면 접근이 가능했다. 시사저널이 서울 강북구 번동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소속 기자 집에서 같은 시설을 대상으로 각각 소요시간을 잰 결과다. 특히 강북과 분당에는 곡성군에 한 곳도 없는 산부인과, 소아과, 종합병원이 다 있었다.

곡성군 옥과면 전경. 대다수 근린생활시설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지만 산부인과, 소아과, 종합병원, 영화관 등 4곳은 면내에 없다. ⓒ시사저널 박정훈

산부인과·소아과 접근성, 곡성 2시간·수도권 23분

곡성은 물품 조달 측면에서도 불리했다. 수도권에서는 인천 강화군과 경기 가평군·광주시 등 11개 시군만 제외하고 쿠팡 새벽배송이 가능하다. 일명 ‘쿠세권’이다. 반면 전남 내 22개 시군은 전부 새벽배송 불가 지역이다. 기자가 옥과면에서 쿠팡으로 물품을 사보니 주문에서 도착까지 23시간 걸렸다. 쿠팡 기사가 직접 배달하는 게 아니라 외부 물류회사를 통해 전달됐다. 강북과 분당에서는 밤늦게 주문해도 10시간이면 도착했다. 베트남 출신으로 옥과면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마티베씨는 “쇼핑하고 싶으면 쿠팡을 이용하니 편하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새벽배송에 대해 설명하자 “그래요?”라며 놀라는 눈치였다.

음식 배달도 제한적이었다. 요즘 MZ세대의 인기 음식이라는 마라탕, 탕후루, 베이글 등 음식 3종을 ‘요기요’ ‘배달의민족’ 앱으로 주문해 봤다. 강북과 분당에선 짧게는 19분, 늦어도 36분 만에 도착했다. 옥과면에서는 프랜차이즈 치킨을 빼면 배달 자체가 불가능했다. 선택권이 좁은 부분도 도농 격차를 느끼게 한다. 일례로 제과점의 경우 강북과 분당에는 프랜차이즈부터 개인 빵집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옥과면엔 두 곳뿐이다. ‘톰아저씨빵집’을 운영하는 이승민씨는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으면 광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가도 발목을 잡았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외식비를 측정하는 8가지 품목의 가격을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 기준으로 비교해 봤다. 김밥과 칼국수를 제외하면 옥과면 외식비는 강북·분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삼겹살과 삼계탕은 더 비싼 경우도 있었다. 옥과면의 여러 식당 점주들은 “물류비와 인건비 때문에 쉽게 가격을 낮추기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주거비도 만만치 않다. 보증금 500만원·전용 33㎡ 이하 원룸의 월세를 비교했을 때 옥과면은 25만~35만원 수준이고, 광주 번화가 상무지구는 18만~60만원이었다. 최저가는 광주가 더 저렴하다. 심재우 옥과면 청년회장은 “광주 시내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수요가 없는데도 집값이 비싸다”고 지적했다.

특정 시설의 부재가 곡성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이유로 꼽히기도 했다. 서형규 곡성군청 기획실장은 “카페는 많지만 스타벅스가 없는 게 복병”이라고 말했다. 보육교사 장하나씨는 “키즈카페처럼 아이가 놀 만한 실내 시설이 없으니 부모가 쉴 틈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영농조합법인 대표 김미향씨는 “시골 사람도 교육열은 서울 못지않은데, 유명 학원이 모두 광주에 몰려있다 보니 여기서 출산해도 결국에는 광주행을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지방 소멸은 공멸…서울 외곽부터 곡성 될 수도”

그럼 편의성을 제고하면 사람이 늘어날까.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걸림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 이미숙씨는 “시골 특성상 인간관계가 좁다 보니 밖에서 만나면 집안 사정까지 묻는 게 예삿일”이라며 “이런 점을 개인주의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나아가 인구 감소의 근본 원인은 일자리 부족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농촌 특성상 1차 산업의 저변 확대가 유인책으로 거론되지만, 현실적으로 청년을 끌어들이기에 역부족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허청 곡성군4-H연합회장은 “정착지원금을 받으면 초보 농업인도 농작물 생산은 할 수 있지만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공판장에 헐값으로 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또 “축산업의 경우 축사 하나 짓는 데만 수억원이 들다 보니 웬만한 자본금 없이는 시작하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이상철 곡성군수는 “청년 농업인을 위한 스마트 온실과 교육시설, 기숙사 등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학생과 학부모 모두 곡성에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농촌유학 제도는 현재 시행 중”이라고 했다.

농촌유학은 6개월이나 1년 동안 지방학교로 전학 가서 농촌생활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효과는 차차 나타나고 있다. 올해 곡성 옥과중 졸업생은 50명인데 신입생은 58명을 기록했다. 박철우 옥과중 교장은 “농촌유학 덕분에 소규모 학교의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그 밖에 곡성군은 ‘청년 하우징타운’ ‘찾아가는 산부인과’ ‘청소년 문화바우처’ 등의 사업을 통해 젊은 층의 발길을 돌리려 하고 있다.

다만 지자체의 개별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병기 전남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장은 “인구 감소 지역이 자체 사업으로 단기에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는 있겠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인구 쟁탈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대신 그는 “지방에 정착한 기업뿐만 아니라 종사자들도 세금을 완전 감면해 주고 전국 226개 시·군·구 재정이 균등해질 때까지 비수도권 보조금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차별론이 거세지지 않을까’란 질문에 오 실장이 답했다. “지방 소멸은 생산기반 몰락으로 이어져 곧 수도권도 무너뜨릴 겁니다. 그러면 공멸입니다. 당장 서울 외곽부터 곡성처럼 휑하게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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