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서 불이 나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다. 고시원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복도나 문이 좁고, 창문이 없는 방도 많아 탈출이 어렵다. 이런 구조 탓에 2018년 종로구 국일 고시원에서는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이듬해 소방법을 바꿔 고시원을 지을 때는 복도 폭을 120cm 이상으로 하고, 방이 양옆에 있을 때는 그 폭을 150cm 이상으로 만들도록 강제했다. 그리고 밖으로 낸 창문이 없는 방은 아예 만들지도 못하게 법을 바꿨고 창문의 크기도 유사시 탈출이 가능할 만큼 크게 짓도록 했다.
이런 아름다운(?) 정책의 취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됐을까. 2019년 이전에 이미 지어져 새로운 소방법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낡은 고시원들의 권리금이 치솟았다. 복도 폭을 150cm 이상으로 만들고 방마다 큰 창문을 내서는 고시원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권리금 없이도 거래되던 낡은 고시원의 권리금이 수억원대로 뛰어올랐다. 고시원을 새로 하려던 사람들이 투자처를 원룸이나 오피스텔로 돌리면서 고시원 공급량은 크게 감소하게 됐다. 그렇게 되자 낡은 고시원의 방값도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새 고시원이 자꾸 생겨야 방값도 내려갈 텐데, 새 고시원이 생길 방법이 없다 보니 낡은 고시원은 수리를 하지 않아도 대기자가 계속 줄을 서게 됐다.
소방법을 바꾼 덕분에 깨끗하고 안전한 시설을 갖춘 새로운 고시원도 간혹 생겼다. 그러나 그건 월세가 50만~80만원에 이르는 사실상의 원룸 오피스텔이지 고시원이 아니다. 그 혜택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던 중산층에게 돌아갔다. 과거의 그 낡은 고시원은 오히려 더 열악해졌지만, 대안이 없으니 사람들은 여전히 몰렸다. 만약 화재가 발생한다면 사상자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차라리 소방법을 바꾸지 않았다면 낡은 고시원 옆에 새 고시원이 계속 들어섰을 것이고, 한 달 거주비로 30만원 이상 쓸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그나마 여러 고시원으로 분산돼 거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열악하고 위험한 고시원을 없애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소방법 때문에 오히려 시설은 더 열악해졌고, 신설 고시원이 사라지면서 불우한 사람들은 열악한 고시원에 더 빽빽하게 수용됐다. 2019년에 우리 사회가 개정한 소방법은 결국 불우한 이웃들에게 ‘돈을 더 벌어 프리미엄 고시원으로 옮기라’는 엉뚱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 문제는 직장과 가까운 도심에서 잠을 잘 만한 공간을 싸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들 방법은 없다는 딜레마에서 기인한다. 안전을 위해 한정된 공간에 대피용 복도와 탈출용 창문을 만들면 공간의 주거 효율이 낮아지고 비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서민들은 그 비용이 없어 좁고 위험한 고시원에서 생활했던 것인데, 좁고 위험한 고시원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된다면 이제 남은 대안은 길에서 자는 것 말고는 없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소방법 규제를 강화하고 비용을 증가시키는 게 불가피했다면 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만한 혜택을 함께 줬어야 했다. 복도를 넓히고 창문을 키운 고시원은 세금을 깎아주든, 보조금을 주든, 시설 개선에 투입되는 비용보다 더 많은 혜택을 줬어야 했다. 그래야 새로운 고시원이 꾸준히 공급되고 기존 고시원들도 프리미엄급 고시원으로 빠르게 변신했을 것이다. 물론 재정 투입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돈을 들이지 않고 그냥 제도만 바꾸고 규제를 강화해 해결될 문제라면 세상 어떤 나라가 열악한 주거 문제로 고민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