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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범죄심리분석관 단독 인터뷰
현역 프로파일러들이 말하는 사이코패스

7월21일 신림역 칼부림 사건, 8월3일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8월17일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 8월19일 2호선 지하철 흉기난동 사건.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강력범죄가 잇따랐다. 한 달여 만에 도심 곳곳에서 발생한 강력범죄의 피해자만 20명이 넘는다. 피해자들은 일면식도 없던 범죄자들이 휘두른 흉기에 속수무책이었다. 대개 살인 사건은 개인 간 원한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범행 동기도, 대상도 뚜렷하지 않다. 더욱 공포스러운 점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범행 이후 범죄자들의 과거 이력 등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들의 사이코패스 여부 등도 조명됐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속한다. 학계는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고 보고 있다. 물론 모든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 것도, 사이코패스가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범죄의 잔혹성과 관리 대책 등을 고려해 범죄자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PCL-R)를 실시한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의 조선(33)은 사이코패스 진단검사 결과 기준점(25점)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은 최근 ‘묻지마 범죄’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신림역 사건의 영향을 받은 범죄가 우후죽순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에서는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범죄자의 ‘과거와 달라진’ 범행 수법이 드러났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어금니 아빠’ 이영학, 과외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난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계곡 살인 사건’의 이은해 등은 특정 집단을 목표로 하거나 살인을 계획해 실행한 경우에 해당한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은 이와 다르다. 조선은 뚜렷한 목표 대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시민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시사저널은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범죄분석팀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와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조선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직접 진행한 곳이 바로 서울청 범죄분석팀이다. 여자 3명, 남자 1명 등 모두 4명의 프로파일러가 팀원이다. 김상훈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정유정 등의 경우와 다르게 조선은 골목에서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상해를 가했다”면서 “반사회적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범죄 행각이 지지를 받고 또 다른 범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선. 작은 사진은 범행 당시 장면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선. 작은 사진은 범행 당시 장면 ⓒ시사저널 임준선

진단검사에서 25점 넘으면 사이코패스 판정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범죄분석팀의 하루는 긴박하게 흘러간다. 최근 밀려드는 사건에 정신이 없다. 이들은 범죄 현장에도 직접 다닌다. 시사저널이 8월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범죄분석팀은 조선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막 끝낸 후였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이후 신림동 강간살인 사건 등이 발생했다. 신림동 강간살인 사건의 최윤종(30)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는 진행 중이다.

사이코패스 진단검사 항목은 크게 네 가지다. 대인관계, 감정·정서, 생활양식, 반사회성 등이다. 관련 문항은 20개다. 40점 만점에 25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의 조선은 기준점 이상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조선에 대한 범죄분석팀의 판단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조선의 경우 대인관계상 문제, 정서적 부분, 전과가 많은 점 등의 생활방식, 반사회적 성향 등에서 다소 높게 평가받았다"면서 "사회적 일탈 부분에 생활 양식과 반사회적 행동이 있는데, 이 두 가지가 높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조선의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다른 사건의 범죄자들은 사이코패스로 판명 나지 않았다. 서현역 사건의 최원종(22)은 과거 조현성 인격장애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호선 지하철 흉기난동 사건을 저지른 50대 남성 역시 과거 조현병 치료 기록이 있다고 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와 정신질환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림역 칼부림-서현역 흉기난동-2호선 흉기난동 등의 사건 모두 ‘묻지마 범죄’ 양상으로 나타났다. 살인 예고글이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올라오기도 했다. 서울청 역시 살인 예고글로 인해 현장을 수시로 찾았다.

결과적으로는 ‘묻지마 범죄’ 양상이어도 범죄 이면의 속성은 다르다. “조선은 사회 불만을 가지고 묻지마 범죄를 한 것이 맞지만 서현역 사건의 경우에는 정신질환 문제에 속한다”는 것이 이주현 프로파일러의 설명이다. 살인 예고글의 경우에는 과시하기 위해서나 장난으로 올리는 등 배경도 다양하다. 조선은 현재 범행 이유로 ‘피해 망상’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 측은 8월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또래 남성들에 대한 열등감과 분노를 품어온 사실은 없다”고 설명했다. 살인에도 고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본인을 미행한다는 피해망상 등을 겪어 그들을 닮은 듯한 남성들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17년 10월13일 여중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피의자 이영학이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적으로 떨어지는 사이코패스는 없었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 외에 ‘어금니 아빠’ 이영학에 대한 프로파일링도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범죄분석팀이 했다. 범죄분석팀은 이를 포함해 지난 10여 년간 10건의 사이코패스 검사를 진행했다. 살인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들이었다. 그 결과 7명은 기준점을 넘겨 사이코패스로 진단됐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25점)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사이코패스 검사는 큰 사건, 혹은 범죄자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여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범죄분석팀이 진단한 범죄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연령대는 20대부터 60·70대까지다. 고등학교 졸업자이거나 검정고시 출신이기도 했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다양했다. 집안 환경 때문에 못 간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대학 진학을 안 한 경우도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이들의 지능이 떨어진다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범죄자들의 지능과 관련한 데이터도 없기 때문이다.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다만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이들이 지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면담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범죄자도 상당하다. 프로파일러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거짓말을 하는 범죄자도 있다. 하지만 진실되게 이야기하면서도 객관적 자료와 정반대의 속임수를 쓰는 경우도 있다. 프로파일러들이 통상 2~3시간에 걸친 면담 시간 내내 상대의 답변을 모두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사이코패스 진단에는 일반적으로 2주의 시간이 소요된다. 2인 이상의 프로파일러가 사이코패스 검사에 동의한 범죄자를 함께 면담해야 한다. 범죄자가 검사지에 직접 표시하지 않는다. 프로파일러들이 면담 과정에서 각각 판단해 검사지에 직접 표시한다. 프로파일러들이 면담을 한 범죄자의 과거 기록을 검토하며 판단할 시간도 필요하다. 이들은 생활기록부, 전과 내역 등 주로 과거 자료를 들여다본다. 이후 프로파일러들이 일정을 잡고 모여 각자 판단한 내용을 공유한다. 논의를 거치면서 범죄자의 사이코패스 점수를 조정한다.

모든 강력범죄자가 사이코패스 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프로파일러 등의 판단에 따라 검사 여부를 결정한다. 과거 강력범죄자들의 사이코패스 관련 통계 자료도 없다.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사기나 경제범 중에도 사이코패스 성향이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며 “다만 모든 범죄자에 대해 사이코패스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관련 통계도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7월25일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서울경찰청 자하문로별관 과학수사과 ⓒ시사저널 임준선

범죄행위 자세히 묘사하면 안 돼…정부는 사이코패스 관리방안 모색

남은 과제는 사이코패스 관리, 모방범죄 예방 등이다. 경찰은 현재 지역치안활동 등을 점검 중이다. 다양한 방범활동 계획도 재수립하고 있다. 다만 범죄자들의 범행계획을 사전에 포착하는 데 한계는 있다. 이에 경찰은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서울경찰청의 ‘불특정 다수 살상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는 “현장 경찰관이 위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적절하게 탐지하고 검문·검색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행동과학적 접근방식에 대한 자료를 수집·검토 중”이라고 돼있다. 김상훈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이와 관련해 “외국의 경우 행동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 등 여러 예시를 만들었다”며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해 범죄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사례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피해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큰 경우도 많다. 범죄를 지지하는 공범이 있고, 폭탄 등 살상력이 강한 도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범죄는 개인이 저지르는 것에 머물렀다. 하지만 개인의 반사회적 신념과 혐오가 온라인상에서 확산될 여지는 충분하다. 서울경찰청은 보고서에서 “온라인상에서 반사회적 표현이 방치되지 않고 효과적으로 차단되도록 적절한 제도·사회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일 국무회의에서 선진국이 만든 ‘정신건강 프로젝트’ 등을 참고해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 수 있도록 예산에 반영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당부했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정신질환자 치료 관련 제도를 검토하기로 했다.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7월22일 정신질환과 다른 사이코패스에 대한 관리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경찰의 치안 역량 보강을 위해 의무경찰제 재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냈다.

언론의 모방범죄와 관련한 보도 지침도 요구됐다.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범죄행위 영상이 보도되면서 이에 자극을 받아 모방하는 경우도 있다”며 “범죄행위를 자세히 묘사하거나 범죄행위 영상 자체를 그대로 내보내는 대신 범죄자가 체포되는 영상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방범죄와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수사기관은 물론, 국민적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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