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反국가+공산세력’ 공개 비판에…與 일각서도 ‘물음표’
“서진 정책에 악재” 우려 속 “호남·수도권 의원 불만 커질 것” 추측도
윤석열 대통령의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가 정치권 내 뜨거운 화두가 된 모양새다. 야권을 중심으로 ‘색깔론에 기반한 친일 역사관’이라는 거센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국민의힘이 과도한 비판이라며 방어에 나섰지만, 윤 대통령의 ‘거친 발언’을 바라보는 여당 의원들의 우려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의 우편향 행보와 김기현 지도부의 ‘서진 정책’ ‘호남 구애’ 기조가 어긋난다는 시각에서다. 일각에선 총선 전략을 두고 수도권·호남 기반 여당 의원들과 용산 대통령실 간의 ‘잡음’이 빚어질 수 있단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尹 ‘반국가세력이 문제’…與野 반응 온도차
윤 대통령은 전날(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이들에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유엔사 주요 직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북한은 지금도 유엔군사령부(유엔사)를 한반도 적화통일의 최대 걸림돌로 여기고 있다”며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종전 선언과 연계하여 유엔사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이유”라고 비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거듭 ‘반국가세력’을 언급하자 야권이 극렬히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진보 진영을 모두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려 한다는 의심에서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소위 자유와 인권을 공유하는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선언하는 경축사가 낭독됐다”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해방 이전으로 돌리는 패착을 정부가 더 이상 두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과거사 언급 없이 일본은 파트너이고 민주주의 운동가는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말했다”며 “윤 대통령의 ‘묻지마식 친일 기조’가 그대로 드러나고 국민을 편 가르기 한 최악의 광복절 기념사”라고 혹평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경축사를 옹호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5일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목숨, 재산, 가족까지 희생하신 우리 선열의 뜻을 잘 받들어서 번영하는 대한민국, 자유·인권·평화가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대통령 경축사에 담겨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도 민주당을 향해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비난하는 이유, 눈에 보이는 반국가세력을 없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민주당이야말로 어느 시대를 살고 있으며 도대체 무엇을 보고 듣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與일각서도 ‘색깔론’ 우려…“총선에 악재” 비판도
다만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한 여권 내 평가가 ‘호평 일색’은 아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일부 친윤석열계 의원들조차 최근 윤 대통령의 ‘거친 발언’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적을 규정하고 분노와 불신이 담긴 ‘공격적 표현’을 거듭 사용할수록, ‘산토끼’(국민의힘 지지층 외 유권자)를 잡기 어려워질 수 있단 우려에서다.
TK(대구‧경북) 지역구의 여권 한 인사는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소신과 진심은 존중받아야 한다”면서도 “‘용산 울타리’를 넘는 대통령의 공개 발언은 조금 더 정제될 필요가 있다. (반국가세력 같은) 정의가 모호한 표현에 감정을 담아 발언하면 불필요한 논란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부에 반대하면 반국가 세력, 공산전체주의 세력이고, 야당이랑 친한 사람들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인가”라고 반문한 뒤 “(경축사를 들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언어를 쓰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행보가 김기현 지도부에게 고민을 안길 수 있단 추측도 나온다. 김기현 대표가 호남 표심을 겨냥한 ‘서진 행보’에 속도를 붙이고 있어서다. 여당은 호남 지역 공약, 예산, 정책 등을 뒷받침하기 위한 ‘호남 지역 공약 특위’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 대통령의 발언에 적극적으로 동조‧응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실제 여당 내에서는 지난 4·7 재보선 당시 전북 전주을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처참하게 패배한 ‘재보선 쇼크’가 차기 총선에서 재현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이에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당의 ‘우회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당 지지율이 침체할 시, 호남과 수도권 기반 여당 인사들의 집단 반발이 발생할 수 있단 전망도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밝힌 ‘북한과 발맞춰 가는 적대세력’이 과연 누구인가. 근거가 빈약한 국민 갈라치기이자 과도한 의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과연 윤 대통령의 발언에 모두 박수치고 있을까. 불만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단지 총선을 앞두고 있으니 윤 대통령 발언을 일일이 평가하고 반응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추측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윤 대통령은 보수(유권자)를 결집시켜 차기 총선을 치르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식으로는 수도권에 출마하는 국민의힘 후보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 현재 국민의힘 주류인 영남권 의원들은 이쪽(수도권) 정서를 전혀 모르는 모습”이라며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합리적인 중도층까지 우군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의 경축사를) 보니 포기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