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미애 장관에 밀리고, 이성윤 지검장에 치이고...도덕성에도 흠집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둘러싼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힘겨루기가 윤 총장의 완패로 일단락됐다. 버티기에 돌입했던 윤 총장은 7일 만에 추 장관의 수사지휘를 모두 수용하며 ‘백기투항’했다. 추 장관의 지휘대로 검언 유착 의혹 사건에 대한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은 박탈됐으며 서울중앙지검이 이 사건을 자체 수사하게 됐다. 우려됐던 검찰의 집단항명이나 윤 총장의 항명성 자진사퇴는 없었다. 반면, 윤 총장은 물론 검찰은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먼저 ‘힘의 우위’가 검찰총장이 아닌 법무장관에게 있다는 것이 명백히 입증됐다. 추 장관은 자신의 말 그대로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 기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윤 총장은 도덕성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번 사태는 윤 총장이 자신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식 행태를 보이면서 시작됐다. 윤 총장이 지금까지 누차 강조해 왔던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가 최측근 사건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검찰의 비리를 검찰이 수사-기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사에 대한 수사-기소권을 가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여권으로부터 ‘자진사퇴’ 압박을 받아왔던 윤 총장은, 이번 사태로 ‘식물 검찰총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번 사태에서 윤 총장에게 사실상 ‘항명’했지만, 추 장관은 이 지검장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두 개의 태양이 떴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 장관을 통한 민주적 통제

“법적으로는 ‘법무부 외청 검찰청’이지만 현실에서는 ‘검찰부 외청 법무청’으로 역전됐다. 검찰 개혁은 검찰권에 대한 문민 통제 즉 민주적 통제에서 출발한다. 법무장관은 검찰사무의 지휘·감독을 통해 책임지는 자리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적절한 지휘·감독 권한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추 장관은 검언 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수사지휘를 내리기 전인 6월29일, 페이스북을 통해 법무장관 수사지휘권의 정당성을 이와 같이 설명했다. 법무장관을 통한 검찰 통제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다. 헌법 제1조 2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즉, ‘국민주권’을 명시해 놓은 것이다.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선, 국가권력은 반드시 국민들의 ‘상시적인 통제 체제’ 아래에서 작동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접 민주주의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선출된 권력’인 국회가 행정부 등 권력기관을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법무장관 역시 국회의 감시를 받는다. 국회는 국정감사,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법무장관을 견제하고 탄핵소추, 해임건의 등을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법무장관이 국회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이에 준하는 권한이 필요하다. 즉, 법무장관이 책임지는 권력기관에 대해서는 법무장관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지휘권이 필요한 것이다. 검찰은 법무부 산하에 있다. 따라서 법무장관은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국회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검찰에 대한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 이에 따라 검찰청법 제8조(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에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명시돼 있다. 검찰총장 역시 검사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 책임을 지는 것은 검찰총장이 아닌 법무장관이다. 검찰총장은 검찰청법에 따라 임기 2년을 보장받고 있으며 국회의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 국회의 탄핵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반면에 법무장관의 경우, 국회에 해임건의권이 있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국회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즉, 검찰사무는 ‘검사→검찰총장→법무장관→국회’라는 민주적 통제체제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지난 7월7일 “법무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최종적인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다”고 밝히며 윤 총장에게 수사지휘를 따를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자정능력 상실한 검찰

“위법한 수사지휘는 따를 수 없다.”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윤석열 당시 국정원 선거개입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이 한 말이다. 당시 윤석열 팀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놓고 법무부 및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상부의 외압성 수사지휘를 따르지 않으면서 이른바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이번 추 장관의 수사지휘를 놓고 이 말이 다시 한번 회자됐다. 즉, 추 장관의 수사지휘가 위법하기 때문에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아니하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수사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할 것을 지휘함”이라는 내용이 있다. 검찰청법 제12조 2항에 따르면,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 윤 총장이 7월3일 소집한 전국 검사장회의에서는 이 조항에 근거해 추 장관의 수사지휘가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것이므로 위법 또는 부당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법무부는 “검찰청법 제8조 규정은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뿐만 아니라 ‘지휘 배제’를 포함하는 취지의 포괄적인 감독 권한도 장관에게 있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위법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윤 총장 역시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수사지휘가 위법하다고 생각한다면 권한쟁의심판이나 불복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검은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이 “형성적 처분”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처분이 내려지는 순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효력이 발생하는 처분’이란 의미다. 즉,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지휘를 받아들여서 수사지휘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윤 총장의 수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휘권이 박탈된 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총장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수사지휘권을 둘러싼 법무부와 검찰 간 힘겨루기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그러나 이 부분을 차치하고, 이번 사태가 무엇 때문에 촉발됐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언 유착 의혹은 채널A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과 결탁해 신라젠 수사 상황을 논의하고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 측에 여당 실세의 비위 첩보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는 사건이다. 한 검사장은 윤 총장의 최측근이다. 한 검사장은 지난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역임할 당시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윤 총장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검찰청공무원 행동강령 제5조(이해관계 직무의 회피)에 '직연 등 지속적인 친분관계자'에 대한 직무회피 규정이 있는 만큼, 윤 총장 스스로 한 검사장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를 자제하거나 회피했어야 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자신이 지휘감독을 일임했던 대검 부장회의의 결정을 뒤집고 일방적으로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결정했다. 전문수사자문단 제도는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위해 도입한 것으로, 검언 유착 사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문단 제도는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 때처럼 검찰총장의 입장을 관철시키고,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의 방패막으로 삼기 위해 악용돼 왔다. 이 때문에 법무부는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 행태는 검찰 최대의 ‘적폐’ 중 하나다. 이를 막기 위해 공수처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야당을 중심으로 위헌 등 공수처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검찰이 공수처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입증해 준 셈이 됐다.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1월13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검찰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1월13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검찰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 ‘차기 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윤 총장이 임기를 채우든 채우지 못하든 차기 검찰총장은 이성윤이다. 100% 장담할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지검장이 윤 총장을 누르고 검찰 내 주도권을 이미 가져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윤 총장의 임기가 1년이나 남았지만, 이번 달로 예상되고 있는 검찰 정기인사에서 몇 남지 않은 ‘윤석열 사단’이 요직에서 정리되고, 대신 이 지검장의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공공연히 나온다. 이 지검장은 지난 6월30일 대검에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절차를 중단하고, 수사팀(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특임검사급 독립성을 부여해 달라”고 건의했다. 건의 형식을 갖췄지만 사실상 윤 총장의 수사지휘에 대한 항명으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 의해 이 지검장의 요구는 모두 수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이 항명을 이유로 이 지검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북 고창 출신으로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 지검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로 분류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지검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말 그대로 ‘꽃길’만 걸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핵심 보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을 이끌고 있다. 차기 검찰총장은 ‘대선’을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다. 정부·여당으로서는 100%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차기 총장을 내세울 것이 분명하다. 청문회에서 야당의 결사반대가 불을 보듯 뻔하지만,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지금까지 부지기수다. 여당 관계자는 “윤석열도 임명 당시에는 정부·여당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그런데도 이 사달이 난 것”이라면서 “차기 검찰총장은 ‘믿을 만하다’ ‘정부·여당과 관계가 깊다’ 정도로는 안 된다.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으로 앉혀야만 한다. 이성윤이 적임자다. 야당의 반대는 고려 대상이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 검찰의 독립성 확보돼야  

일각에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가 검찰의 독립성을 흔드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여당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법무장관이 수사지휘를 남발할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담보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법으로 명시돼 있는 만큼 (검찰에서) 이를 막을 방도는 없다”면서 “원론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결국 국회 나아가 여론이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검찰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방안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개혁이 시대적 화두가 된 것은,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검사가 인사권을 가진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편향적인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검찰 인사 독립성 확보’를 공약했지만, 지금까지 구체화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학계에서는 검찰총장추천위원회, 검찰인사위원회 등을 통해 정치적 입김을 최소화할 경우에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개혁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경찰개혁에서 가장 중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 방안이다. 이를 위해 경찰위원회에 인사권을 주는 방안 등이 나오고 있다”면서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검찰개혁에서는 정치적 중립 방안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민주적 통제’에 대한 얘기만 가득하다. 문재인 정부는 마치 '검찰의 독립성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는 결코 진정한 검찰 개혁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