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뭐라고?” 요즘 미스트롯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수 송가인이 효도대잔치 공연에서 울먹이며 한 말이다. 오랜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해 준 시청자들에게 답례코자 전국 칠순잔치를 열었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송가인 노래를 듣고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고 감격해하자, “제가 뭐라고?” 하면서 함께 우는 장면이 방송됐다. 겸손과 공감의 모습이었다.
“지가 뭔데?” 분에 넘치게 나서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주변과 세상을 어렵게 하는 사람을 두고 원망 어린 말을 할 때도 쓰는 말이다. 한 달 넘게 우리 정국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는 조국 장관을 비판하는 쪽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처럼 조국 장관 문제가 정국의 블랙홀이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장한 목소리로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했던 일본에 대한 국민적 대응도 주요 뉴스에서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검찰 개혁을 위해 그런 정도의 소용돌이는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무리한 임명 강행이 정부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국민 여론의 다수는 부적절한 장관 임명으로 보고 있다. 정부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 소속 금태섭 의원은 조국 장관을 두고 “공감능력이 없다”며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후보 인사청문회 때 지적했다. 오만과 독선으로 보았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지만, 권력자의 오만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늘 권력자에게 겸손한 권력을 주문한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 권력 자체가 지배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권력자의 겸손을 강조하면서도 얼굴 두꺼운 사람들이 정치권력 투쟁에서 성공한다는 ‘후흑론’ 같은 게 나오기도 했다. 설령 후흑의 정치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권력의 겸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리더십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군자의 덕목으로 내려온 인의예지(仁義禮智)의 핵심 내용도 겸손과 책임의식이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민심에 대한 경외, 비판의견에 대한 경청이라는 겸손한 정치적 자세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근대민주주의 이전에도 백성의 뜻이 있었고, 비판의견을 전달하는 언관들이 있었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견해를 가진 시민사회를 토대로 하고 있다. 민주적인 리더십은 이런 다양한 민심을 포용하는 태도와 능력이다.
선거 때 후보들은 늘 그랬다. 무릎 꿇고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한다. 당선 일성으로 지지하지 않는 쪽의 목소리도 대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정치의 현실에서 후보 시절의 겸손과 당선 직후의 초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진영대립의 권력정치가 압도하는 요즘의 한국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양성의 포용과 관용의 정치라는 성숙한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정치는 정체돼 있거나 오히려 후퇴한 모습이다.
최근 조국 장관 임명 파동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과제들을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도 되고 있다. 스펙 입시의 문제를 재검토하게 만들고, 한국 사회 특권층과 계급 문제도 새삼스럽게 드러냈다. 일부 86 정치인들의 민낯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송가인이 울먹이며 “제가 뭐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치란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던 인도의 전 총리 네루의 말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겸손과 공감의 리더십이 더 절실해지는 요즈음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