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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한 번에 오지 않습니다. 느닷없이 닥친 듯이 보이는 위기도 알고 보면 오랜 시간 조금씩 쌓이고 쌓인 것들이 한 번에 폭발한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숨겼거나 소홀히 했던 것이지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말하기가 힘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 때로는 알면서도 위기를 맞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다 보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되지요.  위기를 인식하고 선택하기까지는 고통이 따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때로는 내 잘못을 인정해야 하지요. 어떤 경우는 다른 이에게 아픔을 주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내 살을 잘라내야 합니다. 기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폭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이건 회사건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어떨까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흥하던 국가가 어느새 쇠락합니다. 국가 지도그룹이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못한 업보입니다. 위기는 마치 안개가 스미듯 스멀스멀 침투해 하나둘 망가뜨립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이념이나 논리의 문제는 아닙니다. 현실의 문제입니다. 국가건 개인이건 위기를 위기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대변동》에서 꼽은 국가적 위기의 결과와 관련한 요인에는 이런 것들이 있더군요.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국민적 책임의 수용, 국가정체성, 국가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 평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국가의 능력, 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9월2일 오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무산되자 조 후보자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본인 관련 의혹에 관해 해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9월2일 오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무산되자 조 후보자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본인 관련 의혹에 관해 해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내정된 지 9월9일이면 한 달입니다. 지난 한 달은 그야말로 ‘조국 정국’이었습니다. 이슈를 다 집어삼켰습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인 검찰 수사도 진행 중입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이들은 허한 마음을 달래러 산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한 달 동안 온통 쏠릴 만한 사안인지는 의문입니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변화와 발전을 기대하는 국민들은 지쳤습니다. 더 이상 정치권에 새로운 리더십을 바라지 않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힘겨루기는 극에 달해 상대방을 향한 막말과 분노가 일상화됐습니다. 대한민국은 위기입니다. 인구 절벽을 맞습니다. 월 출생아 수가 39개월째 역대 최소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9개월 연속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를 기록 중입니다. 미-중 갈등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저성장, 저금리 시대입니다.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 갈등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기의 본질은 아닙니다. 여야 모두 있는 그대로가 아닌 보고 싶은 대로 현실을 봅니다. 여야 간 소통은 물론 내부 소통도 파편화됐습니다. 강한 당파성만이 지배합니다. 국가 리더십의 위기, 이것이 위기의 본질입니다. 명절인데 주제가 무겁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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