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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성차별적 내용 담은 광고에 방영 금지 결정
육아 서툰 남성·수동적 여성 묘사 등이 해당

최근 영국에서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은 두 개의 TV 광고 방영이 금지됐다.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방영을 금지했을까. 첫 번째,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광고. 두 남성이 크림치즈를 맛보느라 아이를 망각한 모습이 담겼다. 다음은 독일 자동차 폭스바겐 광고. 역동적인 활동을 즐기는 남성과, 유모차를 곁에 두고 벤치에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이 나란히 연출됐다. 이게 무슨 문제냐 싶을 수 있지만, 영국의 광고심의기구 ASA(Advertisements Standard Authority)는 두 광고를 금지한 이유로 이들이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성차별 내용을 담은 TV 광고가 실제 방송 금지 처분까지 받은 건 영국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ASA는 남성의 육아 능력이 여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했다는 것, 그리고 남성에 비해 여성을 매우 수동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을 각 광고에 대한 구체적인 금지 사유라고 발표했다. ASA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성적 고정관념이 반영된 광고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2012년부터 다양한 조사 연구를 통해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 왔다. 오랜 준비 끝에, ASA는 지난 6월부터 모든 광고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ASA는 크게 직업이나 역할, 성격 등을 특정 성별과 연관 짓는 것과, 사람을 성적인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 그리고 성별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다른 모습을 조롱하는 듯 그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여성을 수동적으로 묘사한 폭스바겐(왼쪽)과 육아에 허둥대는 남성의 모습을 담은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광고가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영국 광고심의기구(ASA)에 의해 방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 Youtube 캡처
여성을 수동적으로 묘사한 폭스바겐(왼쪽)과 육아에 허둥대는 남성의 모습을 담은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광고가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영국 광고심의기구(ASA)에 의해 방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 Youtube 캡처

코믹함 의도했더라도 가차 없이 ‘금지’

예를 들어보자. 여성이 집 청소를 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쉬는 남성의 모습, 주차를 어려워하는 여성의 모습, 아기의 기저귀를 가는 데 쩔쩔매는 남성의 모습. 이 모든 게 ASA가 규정한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는 게 목적이더라도, 위의 기준에 해당하는 성차별적 내용이 담겼다면 주저 없이 규제 대상이 된다. 기준을 위반해 금지 처분을 받은 광고는 TV는 물론 라디오·옥외광고판·신문·잡지 등 모든 매체에서 사라진다. ASA가 2017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차별적인 광고 메시지는 아동과 성인 모두에게 성 역할에 대한 한정적인 시선과 인식을 심으며, 이를 토대로 개인들의 삶의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실제 매우 높다. 특히 광고를 접하는 어린이들은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이를 곧이곧대로 내재화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성별과 관련된 고정관념은 대중들에게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자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용이해 그간 다양한 광고에 자주 사용돼 왔다. 실제 광고 규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후에도 성차별적인 이미지를 담은 광고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규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던 2017년에도 비키니를 입은 여성의 사진과 함께 ‘Are You Beach Body Ready?(당신은 해변에 갈 몸매를 준비했나요?)’ 표어를 내건 영국의 다이어트 보조식품 광고가 논란을 일으켰다. 글래머러스한 체형의 여성이 런던 시내 곳곳 옥외광고판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이와 같은 이미지에 불편함을 느낀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해당 업체는 건강함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ASA의 판결에 따라 광고를 전면 내려야만 했다. 2018년엔 여성 발레리나, 남성 조정선수, 그리고 남성 드러머가 출연한 글로벌 브랜드 네슬레의 생수 광고가 항의를 받아 ASA의 심의를 받기도 했다. 광고에 등장한 배우들의 직업이 성별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특정 직업에 대한 성적인 고정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게 근거였다. 결과적으로 이 광고의 경우 금지 처분을 받진 않았다. 그러나 외형뿐 아니라, 광고 모델의 고정적 역할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적 의식이 한층 예리해졌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계기가 됐다.  

드라마 배역의 성별 따른 연출 차별도 지적

성차별적인 이미지 노출에 대한 규제는 비단 광고 분야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요 일간지나 드라마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녀가 다뤄지는 방식과 빈도에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몇 해 전 영국 가디언지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 TV·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성 비율은 남성이 84%, 여성이 16%였다. 가디언지는 남성의 경우 주로 특정 분야 전문가나 정치인이 많았고, 여성 중 대다수는 단순 셀러브리티나 특정 사건의 피해자였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오랜 기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드라마 《왕좌의 게임》도 이러한 지적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 배역들의 지나친 성적 묘사 및 수동적 캐릭터 부여를 지적한 영국 BBC 보도 후 한동안 논란이 됐다. BBC에 따르면 남성 캐릭터들의 경우 중요한 결정을 도맡아 하고 전장에 앞서 나서는 등 역동적이고 용맹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으로 따르거나 처벌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여성 배우들의 대사량은 전 시즌에 걸쳐 전체 분량의 30%가 채 되지 않는 등 배역의 성별에 따른 연출의 차별이 지적되기도 했다. 영국은 성차별적인 광고에 대한 규제와 더불어, 다양한 진흥책을 통해 성 역할 묘사와 관련해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 영국의 대표 방송사 중 하나인 ‘채널 4’가 매해 주최하는 광고 공모전 ‘Diversity in Advertising Award’는 지난해 ‘광고에 묘사되는 여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란 주제를 제시했다. 기존 광고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탈피한, 참신하고 새로운 여성상 연출이 심사 기준이었다. 우승작에는 1년간 100만 파운드(약 15억원)의 가치에 달하는 광고 방영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 공모전에서 ‘여성은 클리셰(고정관념)가 아닌, ‘행동’에 의해 정의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국 공군의 광고가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 광고에는 실제 여성 군인이 훈련하는 모습만 담겨 있다. 채널 4는 선정 이유로 “일반적으로 상업 광고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여성 이미지와는 다른 실제 여성의 모습을 충분히 반영해 광고 속 여성 이미지에 대한 지평을 넓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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