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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승을 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그만큼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치르고 싶다는 의미”

LA 다저스 류현진 투수가 올해 목표로 20승을 내세웠다. 지난 2월17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두 번째 불펜 투구를 하고 나서 국내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전히 20승이 목표”라고 밝혔다. 20승은 투수에게 꿈과 같다. 메이저리그만 해도 한 시즌에 20승 투수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지난해는 아메리칸리그에서 블레이크 스넬(21승)과 코리 클루버(20승) 2명뿐이었다. 최근에는 승리가 투수의 가치 척도로 여겨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20승은 리그 최고 투수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 점에서 20승을 목표로 세운 것은 류현진이 리그 최고 투수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여도 틀림없다.
2월20일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랜치의 스프링캠프에서 첫 라이브 피칭에 앞서 불펜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2월20일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랜치의 스프링캠프에서 첫 라이브 피칭에 앞서 불펜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류현진의 도전은 성공할까. 야구 관계자는 물론이고 팬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류현진의 바람처럼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치른다면” 20승을 기대해봄 직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한 시즌 20승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승수는 선발투수의 능력 아닌 운

사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승수는 과거처럼 투수의 판단 기준은 아니다. 마운드 운영이 전문화·세분화된 현대 야구에서 선발투수의 역할은 승패를 좌우하는 게 아니라 경기를 만드는 데 있다. 구원진이 가동되는 6회나 7회까지 적은 점수를 내주며 경기를 앞서거나 대등하게 이끌면 선발투수의 역할로 더 바랄 게 없다. 과거처럼 선발투수가 한 경기를 완투할 때는 승수가 선발투수의 훈장이었다. 지금은 ‘퀄리티 스타트’(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 투구하며 3자책점 이하로 막아낸 경기)라는 투수 평가 지표에서 알 수 있듯 승패는 선발투수의 절대적인 능력은 아니다. 경기를 완투하지 않고 6회나 7회 마운드에서 내려오므로 구원진의 투구 내용에 따라 승패는 뒤바뀐다. 또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를 거두지 못하기도 한다. 즉, 승수는 선발투수의 능력이 아니라 운(구원진 활약과 타선의 지원 등)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수 본연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야구계의 주류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등은 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류현진이 20승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내세운 것은 지극히 동양적인 감각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대부분 언론매체는 선수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목표와 관련해 구체적인 숫자를 묻는다. 타율 3할, 홈런 몇 개, 몇 승, 몇 세이브 등. 그것이 독자에게 주목받기 쉽다고 생각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구체적인 숫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개 팀의 우승에 일조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다. 왜냐하면 개인 성적은 타석에서 또는 마운드에서 또는 수비에서 공 하나하나에 집중한 결과가 쌓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매 시즌 200안타를 때린 이치로는 “매 타석 모든 투구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얻는 결과가 200안타일 뿐이다.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 매 타석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는 류현진 역시 잘 알고 있다. 20승이 목표라고 하면서도 “20승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치르고 싶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결국 류현진의 진짜 목표는 20승이 아닌 건강하게 한 시즌을 보내는 데 있다. 2013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그는 2014년부터 매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 왔다. 지난해도 평균자책점 1.97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모음근 부상으로 15경기 등판에 그쳤다. 특급 선발투수라면 부상 없이 긴 이닝을 던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점에서 지난해까지 류현진은 뜻하지 않은 부상 탓이라고는 해도 아쉬운 모습이었다. 메이저리그 첫해인 2013년 192이닝을, 이듬해 152이닝을 던진 후, 단 한 차례도 130이닝 이상 던진 적이 없다. 그런 만큼 올해는 붙박이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싶다는 포부를 ‘20승’에 담은 것이다. 그것이 본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운의 세계라고 해도,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내고 싶다는 염원이 느껴진다. LA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의 목표를 듣고 “건강만 유지한다면 올 시즌 20승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며 류현진의 바람에 힘을 실어줬다. 로버츠 감독이 투수의 승리는 운의 세계라는 것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승리도 중요하지만 부상 없이 올 시즌을 보냈으면 한다”라고 덧붙인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류현진은 자기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발투수라면 20승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건강하게 한 시즌을 뛰며 운이 따른다면 전년도에 한 자릿수 승리에 그친 투수도 20승을 거둘 수 있는 게 야구의 세계다. 다만 20승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목표로 삼은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20승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류현진은 KBO 리그 시절, 극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을 실전 속에서 길러왔다. 필자는 김인식 감독에게 “신인 시절 류현진과 다른 투수의 큰 차이점이 있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류현진이 입단했을 때 한화 전력은 약한 편이었다. 타선과 수비의 도움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잘 던지고도 패배의 쓴맛을 보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경기 전후로 따로 불러 수비가 실수해도 꿋꿋이 자기 공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줬다. 그것을 류현진은 잘 알아듣고 마운드에서 실천했다. 그 점이 다른 투수와는 달랐다.” 흔히들 마운드는 외로운 곳이라고 표현한다. 그 외딴섬 같은 마운드에서 류현진은 자기를 믿고 자기 공을 던질 줄 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투수에게 큰 무기다. 그런 능력을 갖춘 류현진이 건강하다면 어떤 성적을 거둘까. 설령 20승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건강한 류현진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한 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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