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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승을 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그만큼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치르고 싶다는 의미”
승수는 선발투수의 능력 아닌 운
사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승수는 과거처럼 투수의 판단 기준은 아니다. 마운드 운영이 전문화·세분화된 현대 야구에서 선발투수의 역할은 승패를 좌우하는 게 아니라 경기를 만드는 데 있다. 구원진이 가동되는 6회나 7회까지 적은 점수를 내주며 경기를 앞서거나 대등하게 이끌면 선발투수의 역할로 더 바랄 게 없다. 과거처럼 선발투수가 한 경기를 완투할 때는 승수가 선발투수의 훈장이었다. 지금은 ‘퀄리티 스타트’(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 투구하며 3자책점 이하로 막아낸 경기)라는 투수 평가 지표에서 알 수 있듯 승패는 선발투수의 절대적인 능력은 아니다. 경기를 완투하지 않고 6회나 7회 마운드에서 내려오므로 구원진의 투구 내용에 따라 승패는 뒤바뀐다. 또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를 거두지 못하기도 한다. 즉, 승수는 선발투수의 능력이 아니라 운(구원진 활약과 타선의 지원 등)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수 본연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야구계의 주류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등은 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류현진이 20승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내세운 것은 지극히 동양적인 감각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대부분 언론매체는 선수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목표와 관련해 구체적인 숫자를 묻는다. 타율 3할, 홈런 몇 개, 몇 승, 몇 세이브 등. 그것이 독자에게 주목받기 쉽다고 생각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구체적인 숫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개 팀의 우승에 일조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다. 왜냐하면 개인 성적은 타석에서 또는 마운드에서 또는 수비에서 공 하나하나에 집중한 결과가 쌓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매 시즌 200안타를 때린 이치로는 “매 타석 모든 투구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얻는 결과가 200안타일 뿐이다.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 매 타석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는 류현진 역시 잘 알고 있다. 20승이 목표라고 하면서도 “20승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치르고 싶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결국 류현진의 진짜 목표는 20승이 아닌 건강하게 한 시즌을 보내는 데 있다. 2013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그는 2014년부터 매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려 왔다. 지난해도 평균자책점 1.97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모음근 부상으로 15경기 등판에 그쳤다. 특급 선발투수라면 부상 없이 긴 이닝을 던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점에서 지난해까지 류현진은 뜻하지 않은 부상 탓이라고는 해도 아쉬운 모습이었다. 메이저리그 첫해인 2013년 192이닝을, 이듬해 152이닝을 던진 후, 단 한 차례도 130이닝 이상 던진 적이 없다. 그런 만큼 올해는 붙박이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싶다는 포부를 ‘20승’에 담은 것이다. 그것이 본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운의 세계라고 해도,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내고 싶다는 염원이 느껴진다. LA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의 목표를 듣고 “건강만 유지한다면 올 시즌 20승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며 류현진의 바람에 힘을 실어줬다. 로버츠 감독이 투수의 승리는 운의 세계라는 것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승리도 중요하지만 부상 없이 올 시즌을 보냈으면 한다”라고 덧붙인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류현진은 자기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