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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등급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이유

KBO리그가 2019년 시즌을 향해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1월30일과 31일 10개 구단 모두 스프링캠프지로 떠나며 팀 전력 극대화에 시동을 걸었다. 다만 모두가 봄바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FA(자유계약선수)를 선언하며 묵직한 돈지갑을 기대한 선수들 상당수는 기대와 달리 얄팍한 돈지갑에 만족하거나 계약 난항으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비시즌에 FA를 선언한 선수는 모두 15명. 이 가운데 두산에서 NC로 이적한 양의지는 4년간 총액 125억원의 잭팟을 터뜨렸고, SK에 잔류한 최정(6년 106억원)과 이재원(4년 69억원) 등도 거액을 챙겼다. 그러나 이들 외에는 계약 난항이 이어지다가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대다수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맺었다. 노경은과 김민성은 미계약 상태. 특히 노경은은 ‘FA 미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적지 않다.
1월8일 양의지 선수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사보이호텔에서 열린 NC 다이노스 입단식에서 김종문 단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8일 양의지 선수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사보이호텔에서 열린 NC 다이노스 입단식에서 김종문 단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FA 이적 선수 적은 이유

이처럼 최근 FA 시장에서는 서너 명의 선수가 ‘억’ 소리 나는 계약을 맺을 뿐, 대다수는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계약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선수도 한두 명. 애초 선수가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FA인데도 어째서 이적하는 선수가 적은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FA를 영입하는 팀은 전 소속팀에 금전 보상과 함께 20인 보호 선수 외의 선수 한 명을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보상 선수 없이 보상금을 받는 예도 있지만). 21번째 선수를 내주면서까지 영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팀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물급 선수가 아니면 팀 전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구단 측은 판단하고 있다. 영입 경쟁이 없으면 가치도 하락하는 법. 그게 FA 한파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보상 선수가 FA의 족쇄가 되는 것이다. FA를 선언한 한 선수는 “보상 선수 규정만 없어도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었는데…”라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 선수뿐만 아니라 대다수 FA의 마음이라고 해도 틀림없다. 이에 야구계에서는 ‘FA 등급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등급이 낮은 선수는 보상 선수 없이 이적할 수 있게끔 해 FA 제도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FA 등급제가 시행되면 정말 FA 이적이 활발해질까. 이미 2008년부터 FA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본 프로야구의 FA 등급제는 매우 간략하다. 팀 내 연봉 순위에 따라 선수 등급을 매긴다. 전년도 소속팀 연봉 순위에서 3위까지는 보상 선수와 함께 연봉의 50%(돈만 받을 때는 연봉의 80%)이고 4위부터 10위까지는 보상 선수와 함께 연봉의 40%를 FA 영입에 따른 대가로 전 소속팀에 줘야 한다(FA를 2차례 이상 선언한 경우는 보상금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 외 연봉 순위 11위부터는 선수, 돈 보상 없이 영입할 수 있다.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6차전 경기에서 SK 최정이 동점 홈런을 날렸다. ⓒ 연합뉴스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6차전 경기에서 SK 최정이 동점 홈런을 날렸다. ⓒ 연합뉴스

‘FA 대박’ 부정적인 팬심 돌리는 길

이에 대해 “왜 전체 연봉 순위가 아니라 전 소속팀 연봉 순위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적지 않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많은 팀은 불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A팀에서는 연봉 순위가 11번째지만 B팀에서는 5번째일 수도 있다. B팀은 보상 선수와 보상금을 받지만 A팀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다. 어째서 이런 제도가 시행된 것일까. 그 이유는 FA 등급제를 통해 전력 균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팀에 고액 연봉자가 많다는 것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팀일 확률이 높다. 거꾸로 약팀에는 고액 연봉자가 적다. 약팀의 선수가 이적할 때는 보상 선수와 보상금을 통해 그 선수의 이적에 따른 전력 약화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 강팀의 준척급 선수에게는 이적의 자유를 줘 약팀이 FA를 통해 전력 강화에 나설 수 있게끔 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이번 비시즌만 해도 일본 프로야구에서 FA 권리를 취득한 선수는 91명. 그 가운데 실제로 FA 권리를 행사한 선수는 고작 5명에 불과했다. FA 등급제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이적이 가능한데도 FA 권리를 행사한 선수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보상도 없다고 해도 베테랑 선수의 영입은 유망주의 기회를 뺏게 된다. 또한 연봉도 싸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또는 당장 우승을 다투는 팀이 아니라면 굳이 상대적으로 고액인 베테랑 선수를 영입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다 박종훈 한화 단장이 말한 것처럼 “FA를 선언한 순간 팀을 나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붙박이 주전 선수가 아닌 한, 팀 내에 그 자리를 다투는 선수는 여러 명 있다. 최근 한·미·일 야구계의 대세는 유망주 육성이다. 기량이 엇비슷하다면 싸게 쓸 수 있는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FA 선언을 했을 때, 이적은커녕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FA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FA 권리를 행사하는 선수가 적은 것이다. 결국, 일본 사례처럼 FA 등급제가 FA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FA 등급제는 필요하다. 다만 FA 등급제 이전에 선수 측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외국 프로야구 선수가 FA 대박을 포함해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단순히 야구 실력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많은 연봉을 받는 만큼, 그것을 사회에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사회공헌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각종 재단에 돈과 노력을 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그런 활동을 펼치면 젊은 선수가 보고 배운다. 이러한 선순환 속에서 야구 선수의 사회적 지위도 향상된다. 이런 활동을 KBO리그에서 본 적이 있는가. 과거보다 사회공헌에 노력하는 선수가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활동은 여전히 미미하다. 결국, FA 한파를 탓하기 전에 고액 연봉을 받는 것에 따른 사회적 책무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FA 대박’에 부정적인 팬의 마음을 돌리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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