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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민소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제시하는 2019 대한민국의 길(上)

[편집자주]

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은 시사저널은 ‘2019 혼돈의 대한민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란 특별기획을 연재합니다. 그 첫 회로 조정래 작가를 만났습니다. 조정래 작가와의 특별 대담을 통해 원로 작가가 제시한 우리 사회의 진단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上·中·下 3편에 걸쳐 나눠 소개합니다. 

 

 

소설가 조정래와 《태백산맥》에는 ‘국민작가’ ‘국민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86년 출간 이후 《태백산맥》은 850만 권이나 팔렸다. 지금과 같은 출판 불황기에도 매년 10만 권씩 팔려 나갈 정도로 문단 내 《태백산맥》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조 작가는 작품의 상당수가 대하(大河)소설이다. 또 다른 작품 《아리랑》 《한강》 역시 대하소설이다. 이들 세 작품의 판매량을 합치면 1550만 권에 이른다.

대하소설은 웬만한 작가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영역이다. 거대한 담론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수백, 수천 명의 인물을 하나의 작품 주제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태백산맥》만 해도 1983년 집필을 시작해 6년 만에 완성했다. 원고지 분량으로 치면 1만6500장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마음고생도 상당했다. 박경리의 《토지》가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절묘하게 묘사한 걸작이라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거대한 시간과 이념의 물줄기를 작가 특유의 필체로 선 굵게 풀어써낸 게 백미(白眉)다. 태백산맥은 그렇게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세대를 거쳐 전해졌다. 시간이 흘러 책은 색이 바랬지만, 그 속에 담긴 ‘혼(魂)의 문학’은 지금도 읽는 이의 가슴을 잔잔히 적시고 있다. 지난 11월17일 소설의 무대였던 전남 보성군 벌교읍 ‘보성여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조정래 작가는 “국가는 국민을 반드시 행복하게 해 줄 의무가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사회 곳곳에 있는 적폐청산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신작을 집필 중이라 들었습니다.

“《천년의 질문》이에요. 책의 주제는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이지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든 나라의 국민은 ‘도대체 국가가 우리에게 해 준 게 뭐지? 국가는 왜 필요한 거지’라며 회의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있었나요? 없었어요. 그 응답을 비로소 내가 하겠다는 겁니다. 세 권짜리인데 한 권을 완성하고 여기(전남 보성) 내려왔습니다. 내년 6월까지 나머지 두 권을 더 쓸까 합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국가가 해 준 게 뭐가 있냐’며 비통해합니다.

“우리 인생은 문제가 많아요. 그죠? 왜냐면 각기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이익을 추구하며 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겁니다. 법과 국가는 그래서 필요하죠. 해방 직후와 오늘의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해방 후에는 국가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때였지요. 이후 70년의 역사가 흘러가면서 우리는 엄청나게 조직화된 사회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계속되고 있어요. 과거의 문제가 분단·혼란·무질서·가난이 중첩돼 있다면, 지금은 경제문제, 삶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한국은 GDP(국내총생산)가 3만 달러인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미국 다음 수준인 ‘양극화’입니다. 무엇보다 계층 간 소득 차이가 엄청납니다. 지니계수(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는 2016~17년 0.42였어요. 이 지수가 작년 0.48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일 큰 문제는 ‘경제’예요. 10대 재벌기업이 대부분을 소유하고 비정규직이 42~48%라고 합니다. 이건 말이 안 돼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전에는 국민의 75%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 이후에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졌는데, ‘나는 빈곤층’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47%였답니다. 그러면서 재벌들은 돈을 벌었어요. 사내 유보금이 9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는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국가와 사회가 만든 ‘박정희식’ 대기업 성장 모델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기업을 밀어줬습니다. 한 기업인의 비자금이 노출됐는데 그 일부가 4조~5조원이었다고 해요. 이런 나라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1조원을 갖고 장학재단을 만들면 대학생 6000명이 등록금을 낼 수 있어요. 솔직히 이들이 대기업으로 클 때까지 그 상품을 누가 사줬습니까. 일차적으로 우리 국민이 쓰지 않았나요. 그런 다음에 수출한 거죠. 그렇게 국민이 도와줬으면 갚아야 하지 않나요. 외국 기자가 한국에 와서 30년을 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나라다. 대기업들이 이렇게 횡포를 부리는데 왜 소비자들이 불매운동 한 번 하지 않는가’라고 말이죠. 이게 우리가 갖고 있는 굴종의식이에요. 이제 소비자 의식을 키워야 합니다.”

경제 말고 또, 위기라고 생각하시는 건 없으신가요.

“별로 없어요. 누가 정치가 위기라고 말하는데, 정쟁(政爭)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니까요. 거대한 타협을 위해선 정쟁이 필요합니다. 타협은 나쁘지 않아요. 민주주의는 타협의 산물 아니겠습니까. 야합(野合)이 나쁜 거지.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이 왜 싸우느냐고 말하는 건 바보예요. 건전하게라도 싸워야죠.”

지난 정권 때 “이게 나라냐”는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국가관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민주주의예요. 도대체 대의민주주의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국민이 가진 권력을 지도자에게 위임했는데, 그들이 잘못하면 직접 회수해야죠. 그게 지난번 일입니다. 거대한 힘이 대통령을 몰아내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려면 미국처럼 직접선거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 국회의원, 교육감, 지자체장만 직접선거로 뽑습니다. 반면, 미국은 직접선거가 많아요. 그렇게 되면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이 줄어들고, 사법부가 함부로 못 합니다. 누군가 ‘그 많은 선거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더군요. 안 될 것 같나요? 인터넷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잘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통일, 분단 해결의 문제는 잘하고 있어요. 다만 경제가 문제죠. 1년 반이 지났는데 가시적인 효과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잘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1년을 더 기다려 봅시다. 하나의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3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 정도 시간을 줄 필요는 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블랙리스트는 하나의 미숙한 정권이 저지른 잘못입니다. 그걸 갖고 우리 사회 전체가 병들었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누군가 블랙리스트 문제를 문화부 장관이 더 과감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항의했다더군요. 지금 블랙리스트를 만든 두 사람 박근혜, 김기춘이 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밑에서 하수인 역할을 한 실무자들에게는 조금 관대하게 다가가도 되지 않을까요. 처벌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지만, 용서해 주는 것도 가능해요. 이번 문화부 조치는 직접 피해를 입은 문화인에게는 마땅치 않을 수 있으나 범사회적으로 볼 때는 잘한 겁니다. 나도 피해자들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현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적폐(積弊)는 70년간 계속 쌓여온 것들입니다. 국민에 의해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그렇기에 문 대통령에게는 70년간 계속된 적폐청산을 빠르게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사회적, 국가적 책임이에요. 그걸 국민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만큼 하느냐는 문 대통령의 능력이에요. 이번에 시작하면 그다음 정권이 또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깨끗한 나라로 가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국민의 권리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부패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6개국 중 30위라고 합니다. 썩은 나라지요. 상위 5위권 안에 들어갈 때까지 적폐청산은 계속해야 합니다. 국민이 세금 냈으니, 우리는 반드시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국가는 그걸 해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통령은 단 5년의 임명직, 계약직일 뿐이에요. 영원한 권력이 아닙니다.”

 

 

※‘신년기획/ 2019 혼돈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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