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나는 오소희 여행작가 "작은 행복 추구, 멈추고 음미하기, 미리 걱정하지 않기"
[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아이를 둔 사람은 "내 자식은 나보다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예전보다 불행하다"고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터다. 오소희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다른 나라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은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고 싶어 10년 전부터 여러 나라를 찾아다녔다. 돈이 많아 팔자 좋게 여행을 다닌 게 아니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아프리카 오지 등을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게다가 쇼핑몰보다 농촌 흙길을 걸었고, 화려한 호텔보다 싸구려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한 이유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그 많은 나라를 다니게 됐나.
"나는 행복하지 않아서 여행을 떠났다. 행복한 사람은 그냥 살면 된다. 뭔가를 찾기 위해 떠난다는 것은 뭔가 결핍돼 있다는 얘기다. 그 무언가가 대체로 '행복'일 때가 많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여행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를 열심히 봤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바닥까지 보여주며 소통했다. 여러 나라를 돌아본 결과, 행복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었다. 물론 환경도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여행을 떠났다."
왜 행복하지 않았나.
"나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삶을 살았다. 입시를 겪었고, 적성이나 인생을 탐구할 겨를이 없었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갔다. 그때까지 배운 것은 타협하는 것이었다. 이것만 참으면 무엇을 가질 수 있다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게 있으리라 생각했다. 첫 직장은 광고사였는데, 내 상사 그러니까 나의 20년 후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25살의 젊은이에게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밤마다 술친구를 찾고 아침에 사우나 다녀오는 상사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언제까지 남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야 할까라고.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를 선언했다. 그 무렵 남자 친구와 결혼했고, 남편이 군대 생활을 할 때 부대 근처 계룡산에서 3년을 살았다. 청소년기에 가져야 할 자신의 탐구 생활을 그 시기에 충분히 가졌다. 읽고 싶은 책을 읽었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러고 나니 자기애가 생겼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30년이 지났어도 변함없이 아이들은 자기애 없이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교육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끊어 놓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대신 계속 목표를 주장한다. 그 목표를 꾸준히 추구하다가 20살이 되면 시쳇말로 '여긴 어디? 나는 누구?'가 된다. 자기애가 없었던 시기에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애를 낳아서 뭐해'라고 생각했다. 자기애가 생기자 사랑할 수 있었고 아이를 갖고 싶었다. 아이가 36개월쯤 되니 아이에게 한글 공부는 왜 안 시키냐는 등의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1등으로 달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엄마였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3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이 사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엄마에게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와 같은 말이다. 그때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36개월 된 어린아이를 데리고 떠난 게 여행의 시작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나처럼 그렇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여자를 보질 못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살까로 출발한 여행이기에 그에 대한 답을 줄 만한 나라를 골라 다녔다. 그랬더니 점점 최빈국을 찾게 됐다. '베트남 사람은 벼를 심는다. 캄보디아 사람은 벼가 자라는 것을 본다. 라오스 사람은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라는 문구를 보고 라오스로 향했고, 마지막엔 아프리카 우간다를 다녀왔다. 많이 불행한 사람도 봤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자살률이 높냐면 그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은 왜 불행한가를 반분했다. 이는 나는 왜 불행한가와 연결된다."
우리는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는 모두 아는 것처럼 속도다. 세계에서 뭔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 나라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은 보통의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다. 올림픽에서 100m를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의 속도를 누가 따라잡을 수 있겠나. 비정상적이다. 전쟁의 트라우마든 무엇이든 우리는 초인적인 힘으로 그것을 이뤘다. 그런 속도감 속에서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길을 걸을 때도 어느 속도까지는 사유(思惟)할 수 있다. 주변과 호흡도 한다. 그 속도가 빨라지면 두서없고, 주변을 관찰할 겨를이 없다. 목적지에 도달해서 뒤를 보면, 멀리 온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을 전혀 즐기지 못했고, 과정에 대한 추억도 없다. 우리 부모가 우리를 그렇게 키웠다. 내 아버지는 내 입학식 졸업식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늘 술을 마시거나 회사 일을 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엄마에게 내가 뭔가를 좋아하거나 보여주면 좋다고는 하면서도 그럴 시간에 공부하라며 혀를 찼다. 우리는 그런 속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행복의 정의도 잘 못 내렸다. 행복은 멈추고 음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 버린다. 어떻게 보면 일회용일지 모른다. 어떤 것은 오랜 시간 인내하며 쌓아 올려서 느끼는 행복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성취라고 한다. 한국 사회는 그 성취만을 행복과 동등하게 봤다. 이를 모두에게 세뇌시켰다."
지금까지 몇 개국을 여행했고, 왜 가난한 나라를 찾았나.
"한 50곳 정도 다녔다. 이곳저곳 빨리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에서 한 달 정도 사는 여행이다. 주로 제3세계를 다녔다. 이도 행복과 관련이 있다. 선진국은 책으로 치면 사회과부도나 화보 같다. 제3세계는 철학책 같다. 그곳에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아이를 주렁주렁 안고 있던 20대 필리핀 엄마는 아이들이 자기 행복의 기원이라고 했다. 그 집안을 들여다보면 세간살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돈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다고 하지 않나. 시클로로 돈벌이하는 인도의 한 아빠는 온종일 굶고도 아이에게 줄 슬리퍼를 사서 집으로 갈 때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은 무엇일까. 여건 속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매일 물을 주고 키워내는 것인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다녔다."
그 답을 찾았나.
"한국은 떠나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점차 여기서도 행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답한다. 그 행복이 영롱하고 반짝이는 것이어서 누구에게나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다. 매일 가꾸는 조금 둔탁한 빛을 내는 행복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세계를 여행하면서 본 그들의 행복은 작았다. 행복을 잘게 썰어야 한다. 이는 자족이다. 우리는 자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더 큰 것을 추구하도록 교육받았다. 두 번째 이유는 멈추고 음미해야 한다. 멈추고 음미한다는 것은 만족지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가오지 않는 것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를 보면 모두 어떤 일이 닥치면 생각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아이를 두고 대학 걱정을 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그렇다. 세계 여행 후 남은 단어는 균형이었다. 인생에서 없는 것은 더 채우고, 많은 것은 덜어내면 된다. 육아도 그렇다. 아이에게 많은 것은 덜어내고 없는 것을 주면 된다. 여행한 나라 중에 완벽한 나라는 없었다. 각자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의 균형이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될수록 불행했다.
우리는 거대한 토목공사식 성취를 행복이라고 배웠고, 그것을 이뤘을 때 박수받았다. 우리 세대가 끝물이라고 본다. 이런 식의 행복 강요는 더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발전속도가 늦춰졌다. 요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라는 신조어가 나오지만, 예전엔 한 단어로 정리했었다. 카르페디엠(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이런 어휘가 우리에게 없어서 다른 나라의 것을 가져다 쓰지만, 어쨌든 그런 어휘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런 의식이 늘었다는 얘기다.
다행히 아빠의 퇴근 시간이 조금 빨라졌다. 다음은 아이들이 집으로 일찍 와야 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집과 부동산에 집착하는 나라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집은 항상 텅 비어있다. 식구란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인데 우리에겐 식구가 없다. 법적 가족이라는 부양의 관계만 남았다."
속도가 빠른 세상에서 나만 다르게 산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은 개인적이다. 기아나 질병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에이즈에 걸린 엄마가 그 상태에서 임신하고 출산했다. 남편은 죽었고, 그 엄마는 하루 1달러를 번다. 우리가 보기엔 행복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 엄마는 희망을 품고 산다. 특정 국가의 제도에 대한 이해, 문화 특수성, 역사까지 버무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에 유난히 집착하는데, 집이란 행복의 조건일까.
"한국인에게 집은 동아줄 같은 것이어서 '한 채 있으면 거리에 나앉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한다. 돈의 개념일 뿐이다.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하루아침에 몇 억 원이 생기고, 누구는 집이 없다는 이유로 열심히 일해도 허덕인다. 집이 없어서 안정감을 못 느낀다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말이다. 직장의 수명이 짧아지고, 재취업이나 재교육이 이뤄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교육이나 노후가 모두 개인의 어깨에 올라있다. 그래서 부동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것이 복지국가처럼 해결되면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하고 많은 이자를 내면서 집을 소유하고 싶어 할까. 필요 없을 것이다."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쓰면 행복할 수 있다. 아플 때 병원에 못 가거나 쌀을 못 사는 정도는 벗어나야 한다. 내가 계룡산에서 살 때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자연이 있었고, 내가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가난하거나 원하지만 못 가진다는 느낌은 없었다."
여행 중 만난 사람 가운데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는가.
"너무 많다. 결혼하지 않은,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마취 간호사가 있었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면서 모은 휴가를 소말리아로 가서 봉사하는 일에 쓴다.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는지 몰랐던 한 일본 대학생은 안데스 전통음악을 듣고 매혹됐다. 20살 초반에 편도 비행기 표로 볼리비아로 가서 식모살이 등을 하면서 돈을 모아 전통음악을 배웠다. 결국 안데스 음악가가 됐고, 지금 40대가 됐을 그는 볼리비아 여성과 결혼해 아이 낳고 볼리비아에서 잘 산다. 이처럼 국가나 사회의 지원 없이도 자신의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자신의 생으로 들여놓는 사람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