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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예산 졸속·밀실 심사, 민원·쪽지 예산 구태 되풀이

지난 12월8일 새벽 4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짬짜미’를 통해 내년도 정부 예산안 469조원을 통과시켰다. 당초 여야가 정부 원안보다 5조2000억원을 삭감했지만 거대 양당만이 참여한 소소위 심사 과정에서 실세 지역구 예산을 대거 포함시켜 4조3000억원가량을 다시 늘렸다. 최종적으로 원안보다 겨우 9000억원 줄어들었다.

예산 심사에서 배제된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지도부의 단식투쟁 등을 통해 강력 반발하면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평화당·정의당과의 ‘범여권 연대’가 깨지는 상황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연대가 붕괴될 경우 개혁입법 처리가 불가능해져 국정운영 주도권 약화가 우려된다.

거대 양당은 예산 심사 과정에서 밀실심사, 졸속심사, 민원예산, 쪽지예산 등 구태를 반복했다. 더욱이 ‘짬짜미’를 통해 지역구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겼다. 그들만의 ‘예산 잔치’를 벌인 셈이다.

 

12월8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9년 예산안이 통과된 후 투표 결과가 상황판에 표시됐다. ⓒ 연합뉴스


 

청년일자리 등 민생 예산은 ‘싹둑’

예산안 조정소위 회의록을 훑어보면 졸속심사가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할 수 있다. 법적 근거도 없는 소소위로 결정을 넘기자는 말이 넘쳐난다. “보류로 다 소소위에서 하고” “이것은 보류로 해서 소소위에서 심사하자” 등. 양당이 소소위에서조차 결정을 미루고 원내대표 간 합의로 넘겨버린 예산만도 7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당 원내대표가 밀실협상을 통해 예산을 정치적으로 흥정하도록 만든 것이다.

전문성 부족을 드러내는 발언들도 눈에 띈다. 한 의원은 “5억원을 드릴 테니까 이 2억5000만원은 그 5억원에서 그냥 떼어주세요. 차관, 오케이?”이라고 말했다. 세부 사항에 대한 타당성을 따지기보다는 시장에서 물건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이 연출된 셈이다.

민원예산, 쪽지예산이 올해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증액된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상당수가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으로 들어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립세종수목원 조성 예산 등 271억1300만원, 조정식 예결위 간사는 시흥복합체육센터 건립 예산 등 75억4100만원의 지역구 예산을 증액했다.

한국당 소속인 안상수 예결위원장은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 예산 등 114억5500만원, 장제원 예결위 간사는 부산 사상-하단 도시철도 건설 예산 등 120억원,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항공박물관 건립 예산 등 565억3800만원의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 쪽지예산은 모두 19건으로, 총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19건 가운데 4건을 제외한 대다수가 정부 원안에는 없다가 본회의 직전 밀실에서 배정됐다. 또 예산안에 첨부한 부대의견이 대폭 늘어나 ‘제2의 쪽지예산’이란 지적이 나온다. 예산에 넣지 못한 지역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우회로로 악용한 것이다. 예컨대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조속히 시행하는 방안이 부대의견에 들어갔는데, 경기 양평은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지역구다.

반면 청년일자리 등 민생 예산은 싹둑 잘렸다. 청년일자리 예산이 원안보다 4519억원, 구직급여가 2265억원 삭감됐다.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저임금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원 예산이 143억원,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지원 예산이 17억원 줄었다. 농민들의 안정적 소득 보장을 위한 쌀소득 보전 변동직불금도 3242억원 감액됐다.

야 3당이 거대 양당의 ‘짬짜미 예산’에 강력 반대하면서 민주당이 국회 정상화 해법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2월10일 농성장을 찾아 선거제 개편 문제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조속히 논의하자고 제안하며 야 3당을 달랬다. 하지만 선거제 개혁을 놓고 서로의 입장 차가 커 논의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간 대치가 당분간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12월 임시국회 일정 조율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2월8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들이 예산안 처리에 반발하며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야 3당, 예산심사 방식 개선 요구

민주당은 12월20일 원포인트 본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평화당과 정의당을 다시 ‘우군’으로 만들지 않는 한 민생 입법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민주당은 12월12일 야 3당이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동의하며 ‘내년 1월 중 선거제 개혁 합의, 2월 임시국회서 처리’란 당근을 제시했다.

바른미래당은 민주당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당론 채택을 압박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금이라도 선거제 개혁의 진정성을 보이겠다면 단서와 조건 없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체 의총을 통해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를 조속히 합의하기 위한 임시국회 소집에 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즉각 5당 원내대표 회담을 소집해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 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용 카드가 ‘짬짜미 예산’ 처리에 반발하는 야 3당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가 연말 대치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선거제 개편과 별도로 야 3당은 예산 심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밀실야합 예산 부분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부적인 증감액 심사가 소소위로 넘어가 예결위가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예결위 패싱’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소위 복수화를 통해 예결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사회·행정 등 분야별로 나누고 해당 예산소위를 두면 깊이 있는 심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예결위 상설화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예결위를 상임위로 전환하면 예산 관련 수시 업무보고와 모니터링이 가능해져 심사에 내실을 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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