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한파 몰아치는 세계의 공장
“금세기 들어 경기가 가장 안 좋은 것 같아요. 수출도 시원치 않고 내수도 점점 한계로 치닫는 느낌이에요.”
11월16일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 후먼(虎門) 상업광장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는 양리메이(여)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양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다른 산업과 달리 의류업은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면서 “지금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둥관시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도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다. 그 속의 후먼진은 중국 의류산업의 메카다. 중국에서 의류 생산량이 가장 많다.
한국 경제 규모 맞먹는 광둥의 위기
이는 통계 수치로 증명된다. 2016년 후먼 의류산업의 생산액은 450억 위안(약 7조4250억원)이었다. 판매액은 900억 위안(약 14조8500억원)이었다. 과거에는 멀리 신장(新疆), 윈난(雲南) 등지에서 상인들이 후먼에 직접 와서 의류를 사갔다. 지금은 물류망을 통해 후먼에서 전국으로 보낸다. 이날도 양의 매장 직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주문한 옷을 보내기 위해 분주했다. 또한 후먼의 의류는 동남아, 아프리카 등 해외로도 많이 팔려 나간다. 그로 인해 중국에서는 후먼은 ‘중국 여성복의 생산공장’ ‘중국 아동복의 메카’ 등으로 부른다.
올해는 후먼진(鎭)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예년보다 판매량이 크게 줄고 있다. 비교적 큰 점포를 운영하는 왕리(여)는 “도매업, 소매업 할 것 없이 의류 판매가 정체됐거나 심지어 줄어들었다”면서 “재고량이 쌓이면서 생산량을 줄이거나 조업을 중단하는 공장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바이자(百家)공업원은 입구부터 빈 공장과 땅을 임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바이자공업원은 의류와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작은 기업이 주로 입주해 있다. 관리사무소 측은 “올해는 임대료를 10% 할인해 주었으나 임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둥관이 속한 광둥성은 중국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력을 가졌다. 2017년 광둥성 국내총생산(GDP)은 8만9879억 위안으로 중국 31개 성·시·자치구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중국 전체 GDP의 10.5%를 차지하는 규모다. 달러화로 환산하면 1조2940억 달러다. 한국 GDP(1조5308억 달러)에 근접한 규모로, 광둥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광둥은 1인당 GDP가 2014년에 이미 1만 달러를 돌파했다. 2017년 대외무역액은 6만8200억 위안(약 982억 달러)이었다. 특히 수출액은 4만2200억 위안으로, 전 세계 수출국 상위 10위권 안에 들 수 있을 정도다.
광둥성의 지난 3분기 GDP 성장률은 6.9%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 전체 성장률인 6.5%보다 높다. 하지만 광둥의 경제력과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광둥은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91년 이래 1994년을 제외하고 GDP 성장률이 7%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1994년은 중국이 환율정책을 개혁하면서 위안(元)화를 대폭 절하했다. 그로 인해 달러화로 산정한 GDP가 급감했을 뿐이다. 또한 금세기 들어 분기별로 살펴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대외무역이 직격탄을 맞았던 2009년 1분기의 GDP 성장률 5.8%가 유일했다.
美 관세 부과하면 ‘역성장’ 우려도
최근 광둥성 경기가 좋지 못한 건 곳곳의 업계에서 들린다. 광둥의 한 민간은행 회장실에서 근무하는 리위광(가명)은 11월15일 “올해 우리 은행이 떠맡은 부실자산이 600억 위안(약 9조9000억원)인데 절반은 광둥에서 발생했다”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된 민간 기업이 계속 출현해 연말까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11월17일에 만난 기업청산 전문변호사인 장하이산(가명)은 “수년 전부터 중국 정부가 외국기업에 대한 혜택을 대폭 줄이고 있는 데다 노동자 임금이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어 외국기업의 중국 탈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광둥성 경제가 흔들리는 직접적인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내수소비의 정체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 수출을 주도하는 광둥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광둥성 정부도 이런 현실을 솔직히 ‘고백’했다. 11월6일 발표한 ‘3분기 광둥성 거시경제운용 상황분석’ 보고서에서 “미·중 무역마찰이 끊임없이 상승해 가면서 미·중 사이 수출입 무역을 제외하고도 기업 생산, 투자 의향, 취업과 산업 클러스터의 안전 등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흥미로운 예측도 공개했다. 만약 내년 1월1일부터 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광둥성의 대외무역은 3% 역성장하고, GDP 성장률은 0.51% 떨어진다는 것이다. 2017년 광둥의 대외무역은 전년 대비 8%, 수출은 6.7% 성장했었다. 그에 반해 올해 상반기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 감소했다. 3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0.4%만 늘어났을 뿐이다. 한데 내년에는 완전한 역성장으로 돌아선다는 예측이다.
11월22일 일본 노무라증권이 발간한 보고서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노무라증권은 “내년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율이 인상되면 내년 1분기 중국의 수출은 올해 4분기보다 5.6% 하락하고 경제성장률도 0.7%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로 인해 현재 중국 기업들은 인상될 관세를 피하기 위해 일정한 출혈을 감수하고 밀어내기 수출을 감행하고 있다. 미국으로 가는 수출물량을 앞당겨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4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은 3분기보다 0.2%, 수출은 1.8% 높아질 전망이다.
교육용 로봇, 3D 프린터 등을 생산해 95% 이상 수출하는 메이크블록(童心制物)도 그러하다. 왕젠쥔(王建軍) 사장은 전화통화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계약한 대미 수출상품을 올해 말까지 앞당겨 수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메이크블록에 있어 미국 시장은 최대 고객처다. 미국이 수출물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 뒤를 일본, 유럽이 잇고 있다. 왕 사장은 “수출계약은 적어도 반년에서 1년 단위로 이뤄져 올해는 큰 타격이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내년부터는 관세율 상승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경쟁업체보다 가격경쟁력에서 크게 뒤처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 같은 우려는 다른 중국 기업도 갖고 있다. 10월15~17일 로이터통신이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중국수출입상품박람회에 참가한 중국 기업 91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중 60개 업체는 ‘무역전쟁에 대해 우려한다’고 응답했다. 휴대전화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의 판매 책임자는 “올해 시장을 미국으로 넓히려 했으나 무역전쟁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고객들이 구매처를 이미 다른 나라로 바꾸려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올해 수출 주문이 감소했다’는 기업은 28%에 그쳤고, ‘내년에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업체는 21%밖에 되지 않았다.
무역전쟁은 전 세계 경기를 위축시키고 소비자를 불안케 한다. 이런 불안 심리가 확산되면 소비가 줄어들고 경제는 불황에 빠진다. 중국인들도 그 점을 우려하고 있다. 리위광은 “2022년까지 중국 정부는 어떻게든 경제성장률을 5.5% 이상으로 유지하려 안간힘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는 필자에게 웃으며 “잘 알지 않느냐”며 되물었다. 20차 전당대회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15년 장기집권에 돌입하느냐 마느냐가 걸린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시 주석의 집권 연장은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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