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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기업살인법, 원청이든 하청이든 시고 책임자 밝혀지면 사업 접어야 할 정도로 세게 처벌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다급했다. 국회는 법안을 쏟아내며 원청 책임 강화를 약속했고, 정부는 안전 부문의 정규화를 다짐했다. 하지만 비극은 되풀이돼 왔다. 12월11일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참변을 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2월16일 성명을 통해 “원청 사업주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방관자가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반복이다.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를 기리기 위한 2차 촛불 추모제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좀 더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Corporate Homicide Act)’을 제정해 노동자의 인명사고에 대한 기업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했다. 법 시행 이후 영국의 산재 사망률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자 사고의 대안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이 법은 사고의 법적 책임을 물을 때 원청과 하청을 나누지 않는다. 

 

영국 법무부의 ‘기업살인법 가이드’에 따르면, 하도급 계약관계를 포함한 모든 회사와 협력업체는 노동자 사고 책임의 주체가 된다. 가이드는 “책임은 작업장 안전에 관한 원청업체(contractor)와 하청업체(sub-contractor)의 의무에 따라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라 1차 책임자가 밝혀지면 상한선 없는 징벌적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2011년엔 최고 385만 파운드(55억원)의 벌금이 내려졌다. 2013년엔 사망사고 책임을 진 회사가 자산 총액과 맞먹는 벌금을 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 이름도 공표된다. 

 

즉 기업살인법은 1차 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고 상황에 따라 원청과 하청 어느 쪽이든 1차 책임자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책임자에게 시장에서 발 빼야 할 정도로 무거운 형벌을 가하면, 자발적으로 안전에 신경 쓸 거란 취지다. 

 

이렇게 되면 안전 업무를 맡은 하청업체의 진입장벽이 자연스레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적어도 노동자 생명과 직결된 일만큼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맡을 수밖에 없도록 산업 구조를 강제 재편하는 것이다. 이번에 사망한 김씨는 중소 발전설비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이었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수급업체를 쓰는 자체가 안전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라며 “불량한 안전관리가 인명사고와 비용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청을 쓰되 철저히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업체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화된 외부업체가 안전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점은 경영계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6년 11월 보고서를 통해 “주요 선진국은 안전 업무를 외부업체에 아웃소싱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며 “외부업체가 안전관리 능력이 떨어질 것이란 생각은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안전 업무는 오히려 전문화된 하청업체가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국회는 원청 책임에 집착하고 있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7개를 묶어 내놓았다. 여기엔 원청 사업주의 책임 범위를 강화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이마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 때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돼왔다. 

 

이 와중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기업살인법과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2016년 6월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이 법안은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를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어 해당 사업주를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처벌 수위가 낮고, ‘사업주’의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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