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휩쓸고 간 자리엔 여전히 마르지 않는 눈물 자국이…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그리고 올해 1월 경남 밀양에서 두 건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총 74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안전점검 부실, 초동대응 실패 등 총체적 문제가 드러나면서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신속한 피해 보상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시간이 지나면 흉터는 남을지언정 상처는 아물게 마련이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찾은 제천과 밀양의 사고 현장에는 여전히 유족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었다.
지난해 사망 1명, 부상 1명에 불과했던 경남 밀양시의 화재 인명피해 통계 수치가 올해 단 한 건의 불로 세 자리 숫자가 됐다. 바로 지난 1월26일 발생한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 때문이다. 이 사고로 192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45명은 목숨을 잃었다. 밀양시 초유의 대형 재난에 청와대에서 대책회의가 열렸고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안부 장관이 잇따라 현장을 방문했다. 밀양시는 8일 동안 추모기간을 운영했으며 1만 2000여명의 추모객이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12월 현재, 세종병원이 남긴 상처는 얼마나 아물었을까?
사고 재발 대책은 거북이걸음 ‘입법 예고 중’
사고가 발생하자 밀양시와 경남도는 △병원 스프링클러 소급 설치 △재난취약시설 정밀안전진단 제도 도입 △위반건축물 이행강제금 강화 △피난 계단 설치 의무 확대 △건축 도면 데이터베이스 소방업무와 연계 △건축물 방화구획 설치 의무화 등 6개 항의 제도개선책을 내놓으며 사고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건축도면 공유 시스템 구축 작업은 내년 12월 완료를 목표로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다른 4개 대책은 입법 예고 중이거나 입법 예고 기간이 종료된 상태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특히 소유주의 요청에 의해 이뤄지던 다중이용시설 안전진단을 제도화해 건물주에게 개선 의무를 지우겠다는 재난취약시설 정밀안전진단제도는 흐지부지 재발 방지대책에서도 제외됐다.
병원 재산 수십 배 가압류, 미합의 유족들 ‘한숨’
세종병원 화재 사망자 보상 문제는 1년이 다 돼가도록 아직 완료가 안 된 상태다. 사망자 40명은 합의가 됐지만, 나머지 5명의 유족들은 보상 액수 문제로 여전히 다투고 있다. 화재 당시 세종병원은 1인 최소 2000만원에서 8000만원을 지급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으나, 사망자의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대부분 2000만원으로 보험금이 결정됐다. 여기에 병원 측의 위자료 3000만원을 합쳐 5000여만원이 보상금으로 지급됐다. 하지만 당시 환자가 아닌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등 병원 의료진과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었던 환자 등 5명의 유족은 이 액수에 반발하며 아직까지 합의금을 수령하지 않고 있다.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금액도 문제지만 정부의 일처리도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유족피해보상 대책위원장인 김승환씨는 “개인별 요구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억 단위 차이도 있다”며 “보상액수에 대한 이견은 좁힐 수 있다 하더라도 경찰에서 ‘사무장 병원’이라는 수사 결과를 너무 일찍 발표해 병원의 재산이 묶여버린 원인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협상 초기에 병원 주차장 매각 등으로 합의금을 마련하겠다는 병원 측과 의견 조율이 진행되던 시기에 사무장 병원 발표가 나왔고 곧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정 수급에 따른 환수절차가 진행되면서 보상금 마련 방법이 사라진 셈”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세종병원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부정 수급액 408억원에 대한 환수 절차가 진행 중이고, 병원 직원들 체불 임금 7억여원도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병원을 대신해 장례비와 의료비를 지원했던 밀양시도 의료법인을 상대로 6억1000만원의 가압류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세종병원 측의 법률대리인도 ‘사무장 병원’ 발표를 협상 지연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A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병원 건물이 매각돼도 대출금 등을 제외하면 10~20억원도 남지 않을 것인데, 가압류만 수백억 원이 넘는다”면서 “유족 보상금이 1순위도 아니어서 대책이 전무하다”고 털어놨다.
한편, 대형 재난의 발생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밀양시는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앞서 경남도의 대정부 건의에서 빠진 재난취약시설 정밀안전진단 제도 도입과 관련 밀양시는 11월6일 ‘화재예방 전기시설 설치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에는 건물주의 부담을 경감시켜 안전진단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집중점검시설과 노후건축물에 대해 전기시설 개선비용의 은행대출 이자와 300만 원 한도의 공사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결국 경남도가 검토만으로 끝난 다중이용시설 안전진단 강화 대책을 일선 지자체가 직접 해결에 나선 셈이다. 밀양시 관계자는 “세종병원 화재 후 안전관리 TF팀을 구성하고 안전한 도시 밀양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고 수습을 위해 심리상담에서 부터 주거 지원 등 세심한 곳까지 살피려 했지만 장례비, 병원비 가압류 문제는 아쉽게 됐다. 실익이 없는 줄 알지만 법에 따른 조치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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