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다시 찾은 포항 지진 피해 현장 “목소리 큰 놈은 1500만원, 나는 200만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2월11일의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이곳은 지난해 11월15일 포항을 강타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곳 중 하나다. 지진이 시내를 휩쓴 지 1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지만 현장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 깨지고 부서진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으며, 그 안에선 주민들이 위태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복구를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었으나, 주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봉합되지 않은 모양새였다. 공사 현장 사이로 ‘주민들을 기만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년 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무엇을 향한 걸까.
건물 갈라졌어도 “오갈 데 없어” 계속 머물러
흥해읍 정중앙에 위치한 대성아파트는 흉가에 가까웠다. 갈라진 건물 벽 틈 사이로 빗물이 흐르고 바닥에 나뒹구는 잔해 옆으로 고양이가 어슬렁거렸다. 창문은 깨진 채로 걸려 있었고 나무는 90도로 휘어 있었다. 전체 6개 동 중에서 4개 동이 전파(기둥·벽체·지붕 등 주요 구조부가 50% 이상 파손돼 개축하지 않으면 주택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 판정을 받고 출입이 금지됐다. 굳게 걸린 쇠줄엔 ‘위험 지역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이 아파트는 1년 넘도록 이 상태로 버려져 있다.
바로 옆 한미장관맨션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6층 높이의 건물 곳곳에 균열이 있었다. 외벽이 뜯어져 나가 속자재가 훤히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건물 더미에 대비해 입구는 초록색 망과 철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비상계단 창문 밖으로 튀어나온 보일러 연통은 휘었고 유리엔 깨진 자국이 선명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한눈에 봐도 위태로운 이곳에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단 점이다. 1시간 동안 지켜본 이 맨션에선 3분에 한 명꼴로 사람이 지나다녔다. 베란다 창 안으로 빨래를 걷는 여인이 보이기도 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부터 차를 몰고 돌아온 중년 여성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이들이 이런 위험한 곳에서 계속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배를 피우러 나온 체육복 차림의 한 중년 남성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곳 말고는 오갈 데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집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지진이 났을 때도 남들은 다 대피하는데 우리는 안에서 지진이 멈추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정부에서 지원금 100만원을 받긴 했지만, 이 돈으론 이사는커녕 건물 수리도 못 한다.” 그는 “아직도 지진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벌벌 떨린다”고 말했다.
“목소리 크면 지원금 더 받아”
이 맨션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이 전한 상황은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는 “가동 2XX호에선 샌 빗물에 석고보드가 젖어 떨어져 나갔더라”며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거실 한쪽 벽에 곰팡이가 피고 벽지를 뜯어낸 자리에 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 경비원은 “이러다 지진이 또 나면 다 무너질 텐데 걱정이다. 이 문제에 정부가 너무 안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 거주자들은 포항시와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시에서 지급한 주택복구 재난지원금이 납득할 수 없는 금액이란 이유에서다. 재난지원금은 주택 파손 정도(소파·반파·전파)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포항 시민의 경우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맨션 주민들은 파손 정도에서 가장 낮은 등급인 소파 판정을 받아 총 200만원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설 업체를 불러 자체 판정했더니 그보다 높은 등급이 나와서다. 이 결과를 보고했더니 시에선 지급을 번복할 수 없다고 했다.
피해 판정 방식에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은 1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자연재난 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요령에 따르면,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시·군·구청의 소관부서에서 현장 확인에 나서야 한다. 포항시의 경우, 지난해 지진 때 해당 부서뿐만 아니라 300여 명의 전문가가 투입돼 피해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워낙 피해 규모가 컸던 탓에 이 인원으로도 조사가 정확히 진행될 순 없었다. 조사 요원들이 짧은 시간 동안 피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에 반항하려고 계속 텐트에서 지낸다”
이에 많은 이들이 판정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포항시가 운영하는 ‘지진상황 공유게시판’엔 피해 보상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게시물 700여 건이 등록돼 있다. 시에서 “지진 피해를 접수하는 게시판이 아니다”고 공지했는데도 시민들은 여전히 이 게시판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특히 ‘지진 피해 보상 규정,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네요’란 제목의 글을 쓴 이공주씨는 “다른 곳에선 사진 촬영 한 번 없이 실금만 가도 보상을 받았는데, 우리 집은 타일이 다 깨졌는데도 보상받지 못했다”며 “보상규정이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포항시는 “조사 요령이 올해 개정돼, 판정 기준이 과거보다 세분화됐으며 향후 피해조사엔 전문요원들이 자 등 도구를 이용해 피해를 정밀히 측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은 금액으로 망가진 주택을 고칠 수도 없고 이사를 갈 수도 없는 주민들은 여전히 대피소에서 생활 중이다. 지진 직후 흥해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엔 아직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다리를 뻗고 누우면 가득 차는 좁은 텐트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원래 집에 돌아가서 위험하게 사는 것보다 이곳에서 지내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한파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상희씨는 “샤워실에 열기가 돌지 않아 할머니들이 벌벌 떨고 있다”며 “어르신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이곳에 갇혀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울부짖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춘득 할머니(73)는 “정부에 반항하려고 계속 텐트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그는 대성아파트 바로 옆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벽돌이 깨지고 벽에 금이 갔는데, 이 할머니 역시 소파 판정을 받고 200만원을 지원받았다. 문제는 돈보다 봉사자들이 집을 헤집고 간 흔적이었다. 이 할머니는 “갈색 벽에 회색 페인트를 마음대로 바르고, 실크 벽지를 다 뜯어내고 싸구려 벽지를 붙여놨다”며 혀를 찼다. “계단이 다 깨졌는데 정작 이건 안 고쳐주더라”고도 했다.
이 할머니의 화를 돋운 건 옆집이었다. 그는 “똑같이 부서졌는데 저 집은 지붕까지 싹 다 갈더라. 목소리 큰 놈이 다 가져가는 거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주택에서 실제 지원금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거주자가 부재한 탓에 확인하지 못했다. 35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다는 이 할머니는 “농사도 잘되고 정말 좋은 동네였는데, 지금은 너무 흉흉해졌다. 돈 문제가 예민하게 껴 있다 보니 주민끼리 단합도 안 되고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동네 집값은 폭락했다. 이곳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박외춘씨(46)는 “이 동네 아파트 값이 30% 가까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지진 전에는 20평짜리 집 매매가가 6500만원에서 7000만원 사이였는데, 지금은 매수세가 없을뿐더러 급매만 나와 4000만원에 겨우 팔린다”고 했다. 이어 “포항 전체로 따지면 아파트 값이 20%는 떨어졌을 거다”고 했다.
“앞뒤 다른 정치인들에 환멸”
이 지역은 특별재생지역으로 선정돼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흥해읍을 특별재생지역으로 승인했다. 총 예산은 2256억원, 올해엔 490억원이 편성됐다. 이 돈은 포항시가 전파된 공동주택을 매입해 문화공간 등 공공시설 등을 짓는 데 쓰인다. 포항시에 따르면, 사전 주민설명회는 완료했고 이재민과 개별 면담을 준비 중이다. 다만 이 사업은 전파 주택에 한정된다. 반파나 소파 판정을 받은 주택은 특별재생계획이 아니라 재건축팀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 서민들은 재개발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당장 재개발을 위한 목돈을 마련할 수 없어서다. 대성아파트 B동에 거주하다 현재 대피소에서 생활 중인 옥상호씨는 “재개발한단 얘기가 있는데, 그것도 주민 부담이 있어야 되는 거지 서민 촌에서 그럴 돈이 어디서 나느냐”고 했다. 대성아파트 B동은 전파된 다른 동들과 달리 소파 판정을 받았다. 옥씨는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고, 다 무너져가는 곳에서 살 수 없어서 대피소에 와 있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앞뒤 다른 정치인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한미장관맨션의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총무는 “선거 때는 다 해 줄 것처럼 하더니만, 선거 끝나고 나니 ‘나 몰라라’ 식이더라”고 했다. 실제 포항 지진 이후 국회엔 지진 관련 법안이 우후죽순 발의됐지만, 지금껏 통과된 법안은 특별재생지역 계획을 담은 특별법 하나뿐이었다. 포항시의회 관계자는 “법안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며 “큰일이 나면 라면 끓듯 모두 부글부글하다가 잠잠해지면 확 식어버리는 게 언제까지 반복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북지역엔 지금도 여진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내진율은 여전히 5%에 그친다. 경북지역 건축물 내진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주거용 건물 내진율은 지난 11월 기준 4.77%에 불과하다. 100개 건물 중 95개가 지진이 나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단 얘기다. 이에 정부는 공공건물 내진 보강에 필요한 예산을 대폭 늘리고, 안전 설계를 완료한 건물에 인증서를 부여하는 제도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장 달라진 걸 체감할 수 없는 주민들 입장에서 불안감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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