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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에 이어 지하에서까지 참사 터진 YS 정부의 재현

12월8일 오전 7시35분경 승객 198명을 태운 강릉발 서울행 KTX 열차가 출발한 지 5분 만에 탈선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직원 등 모두 1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40여 시간 동안 열차운행이 중단됐다. 같은 날 오전 6시50분경 대구에서 서울로 가던 KTX가 선로에 30분가량 멈춰 섰다. 앞선 11월19일에는 서울역으로 들어오던 KTX가 굴착기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다음 날인 20일에는 KTX 오송역에서 전차선로에 전기공급이 끊겨 상·하행선 열차운행이 중단됐다. 3주간 무려 10건의 열차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오영식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연이은 열차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12월11일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열차 사고뿐만이 아니다. 11월24일, KT 아현지사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울·경기 일부 지역의 KT 통신망 훼손으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12월4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인근에서 지역난방공사 배관이 터져 1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다쳤다. 또한 10월7일, 고양 저유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117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최근 몇 달 사이에만 인명 피해까지 일으킨 대형 사고가 연이어 일어난 것이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문재인 정부 지지율, 최저치 경신

대형 사고들은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2월 둘째 주 주중 집계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난 12월10〜12일까지 사흘간 전국 성인 남녀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1.4%포인트 하락한 48.1%를 기록했다. 이는 리얼미터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중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지난 11일 일간 집계에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과 부정 평가 비율이 47.3%로 같았다. 또다시 대형 사고가 터진다면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13대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집권 2년 차 지지율 중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높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하락세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만은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리얼미터는 “크고 작은 악재가 집중된 영향”이라면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투신 사망, 택시기사 분신 사망,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유지, 이재명 경기지사 검찰 기소 등과 함께 강릉 KTX 탈선 사고를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사고 공화국’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김영삼(YS) 정부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영삼 정부는 임기 1년 차에 80%를 넘는 기록적인 지지율을 달성했다. 그러나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대구 지하철·아현동 가스 폭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등 연이어 대형 사고가 터졌다. 당시 “육·해·공을 넘어 심지어 지하까지 대형 사고가 났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김영삼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꼬꾸라질 수밖에 없었고, 삼풍백화점 붕괴 후 1995년 치러진 첫 민선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은 15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5곳을 얻는 데 그쳤다.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 역시 30~40%로 주저앉았고, IMF가 터진 1997년에는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생명안전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에 있다. 위험은 평등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가 더 보호받아야 한다. 시민과 노동자의 권리보장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그게 바로 사람이 먼저인 나라다.”

2017년 4월1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 가족 등이 주최한 ‘생명 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대국민 약속식’에 참석해 이와 같이 말했다. 또한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는 서명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는 기조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20대 국정전략 중 하나로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를 내세우며 △안전사고 예방 및 재난 안전관리의 국가책임체제 구축 △통합적 재난관리체계 구축 및 현장 즉시 대응 역량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형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문재인 정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12월3일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22명이 탄 낚싯배가 급유선과의 충돌로 전복돼 15명이 숨졌다. 문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사람을 구조하지 못한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명 사고가 줄을 이었다. 영흥도 낚싯배 사고 다음 날인 4일에는 전남 순천의 폐유정제 업체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추락해 1명이 숨졌고, 14일에는 구로구 지하철 1호선 온수역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열차에 치여 세상을 등졌다. 16일에는 서울 이대 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 병원은 같은 해 10월 임산부의 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 12월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나자 문 대통령은 직접 현장에 내려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경북 포항 지진 때도 현장을 방문한 바 있다.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방문했지만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 달 후인 2018년 1월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또다시 화재가 발생해 4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는 세종병원 참사 후 29만 개 시설에 대한 화재안전시설 점검 등 국가안전대진단을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했지만 이 역시도 헛수고였다. 11월9일 새벽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사상자는 고시원에 거주하는 일용직 노동자 등 취약계층이 대부분이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안전대진단 기본계획을 보면, 쪽방촌·고시원·지하상가 등은 화재 취약시설로 분류돼 점검 대상이다. 그러나 국일고시원은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돼 있어 별도의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화재에 취약한 시설물들을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서 제외한 오류로 참사가 생겨난 것”이라면서 “국가안전대진단이 짧은 기간을 정해 놓고 급하게 추진되다 보니 ‘보여주기’에 그쳤다. 이번 사고는 사회적 참사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22일 제천 화재 현장을 방문해 현장 보고를 받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낙하산 인사가 인재 불러”

야당은 문 대통령의 안심사회 공약이 부도수표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세월호 사고는 정말 참담하고 온 국민의 가슴이 찢어진 사건인데 그 사건 때 안전 문제를 진정 고민했다면 오늘날 이런 사고가 이렇게 생겨날까 의문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때(세월호 사고) 단식농성까지 했고, 그러면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는 공약도 했었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우리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그 문제를 무기로 삼아 상대방을 찌르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도 문재인 정부의 허술한 대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회진보연대 등 19개 시민단체는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생명과 안전의 권리는 어디쯤 왔나’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통해 “포항 지진과 더불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정선 광산 발파로 인한 매몰 사고(3명 사망) 등 우리는 여전히 재난으로부터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조미경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도 재난의 근본적인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과 사후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국가가 아직도 생명과 안전이 권리로서 보장되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최소한의 대처로 그 순간만을 모면하려는 면피성 수습만을 해 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인재를 불러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난안전 관련 기관에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기관장으로 내려가면서 위험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꼽히고 있다. 오 사장은 3선 의원(16대·17대·19대 민주당)으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수석조직부본부장을 지냈다. 철도 분야 경험은 전무한 상태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을 위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인 오 사장을 코레일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라면서 “정치권이나 참여연대 출신으로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핵심 요직을 차지한 것이 최근 사태의 근본적 배경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오영식 코레일 사장, 황창화 지역난방공사 사장 등 최근 사고가 집중된 기관의 수장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위험 업무 외주화 근절돼야

안전사고의 근본적 원인으로 ‘위험 업무의 외주화’를 지목하는 시각도 있다. 12월12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설비 점검을 하던 20대 하청근로자가 석탄을 운송하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이 하청근로자는 태안화력 환경연료설비 업무를 맡고 있는 외주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 직원으로, 업무 위탁계약을 맺어 태안화력 9~10호기 설비 관리를 맡고 있었다.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사고와 저유소 폭발 사고 때도 외주업체가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최근 대기업들은 인력과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한 작업을 외주로 돌리고 있다. 위험 업무를 외주화함으로써 재해를 낮춰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있고, 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위험 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에는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제도 개선과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제도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나의 삶을 개선하라’는 촛불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지만,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문제,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사고 직후 동료 노동자들은 ‘하청노동자도 국민이다. 정규직 안 해도 좋으니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100인과 대화해 달라’며 절규하고 있는데 청와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사고 방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는 대신 물타기식 국면전환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난 지난달 말부터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 왔지만 사실상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북한 카드를 꺼내들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너무 한쪽에 가 있다. 북한 문제, 김정은 초청 문제에만 신경을 다 쓰고 안전 문제 등을 등한시하니 사고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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