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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폭행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최근 SNS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게 바로 이수역 폭행 사건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사건의 본질은 이미 저 멀리 사라졌고, 상황은 급기야 ‘남성 vs 여성’이라는 틀에 박힌 구도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해당 폭행 사건이 남녀 성대결로 확산되면서 사건의 원인 규명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 역시 온데간데없고 서로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욕설이 SNS를 지배하고 있다. 여전히 일부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남녀 대립구도에만 포커스를 맞춰 보도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말 못할 사연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국에 차고 넘친다. 이 수많은 사건 가운데서 전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 여론을 조성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사건을 접했을 때 보이는 행태는 과거와 달라졌다. 주요 언론이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제보하지 않는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방문하는 인기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에 하소연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터넷에서 관심과 바람을 타다 보면 사건의 본질은 훼손되고 여론재판에만 모두가 골몰하는 양상으로 상황이 전개된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남녀 성 대결 구도의 관점이 주는 폐해

지난 11월13일 새벽, 한 인터넷 게시판에 ‘도와주세요. 뼈가 보일 만큼 폭행당해 입원 중이나 피의자 신분이 되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된 이른바 이수역 폭행 사건. 해당 글은 8일 만에 조회 수가 25만에 육박했고 사건의 공론화를 주장하는 국민들의 서명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단숨에 35만을 넘어섰다.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언론에서는 사건 발생 3일 만에 무려 1600개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놀라운 건 1600개 기사 중에 해당 사건의 원인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기사는 단 1%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수역 폭행 사건이 자극적으로 전개되는 이유는 남녀 성 대결 프레임이라는 잘못된 구도로 해당 사건이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프레임(Frame)이란, 어떤 사안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기준 틀이다. 수많은 사건을 프레임으로 단순화해서 바라보는 이유는 대중은 사건의 본질보다 흥미에 더 관심을 두고 탐닉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심리학 연구 결과, 사람들은 누군가를 평가할 때 또는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불과 0.3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호불호나 잘잘못을 판단한다고 한다. 그 짧은 0.3초 안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하려면 가장 자극적이면서도 대립하기 쉬운 프레임으로 해당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효과적인 프레임은 지역 대립 구도였다. 어떤 사건이든 어떤 사안이든 지역 대립이라는 프레임으로 풀어나가면 곧바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프레임의 희생양이 되었고, 이후 다양한 선거 과정을 통해 지역 구도라는 고착화된 프레임이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사람들은 또다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도출된 프레임이 바로 남성 대 여성이라는 성 대립 구도다. 이번 이수역 폭행 사건 역시 어김없이 남녀 프레임의 구도로 전개되다 보니 생산적이지 않은 소모적인 논쟁만 파생되고 있다.

이수역 사건이 급속도로 여론의 관심을 받고 언론이 기사를 쏟아낸 이유는 “머리가 짧고 화장을 안 한 여성이 남성에게 맞았다”라는 식의 잘못된 루머가 초기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오보였음에도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상당수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했고,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련 찬반이 이어졌다. “여성이 먼저 신체적 접촉을 가했다”는 경찰의 주장은 여성 측의 또 다른 반론과 동영상의 등장으로 무색해지고 말았고 사건은 점점 불확실성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다. 이후 이수역 사건은 ‘가해자가 여성이다, 남성이다’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자극적인 키워드로 집약되며 여론재판에 완전히 매몰됐다.

사건의 본질은 명쾌하다.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건의 핵심 본질이다. 성별을 떠나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에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해당 사건을 국민적 관심으로 부각시킨 언론의 역할은 컸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남녀 대립 구도로 이슈화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이수역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남성과 여성은 편향된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에 머물고 말았다.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특정 경로가 돼 모든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대중의 선입견과 편견은 더욱 고착화되기 쉽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있다. 지난해 세계적인 심리학 학술지 인성 및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성적 가해 또는 폭행 등을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이 일으킬까’와 관련된 실험연구가 소개되어 학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사회심리학계에서는 권력과 힘을 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성적 가해 또는 폭언, 폭행 등을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스럽게 해당 논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더 가해를 한다’는 식으로 연결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난해 발표된 ‘Sexual Aggression When Power is New’(권력이 새로울 때 발생하는 성적 가해) 연구는 새로운 결과를 우리에게 제시했다.

다양한 실험연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 성적 가해 또는 폭행 등은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 상대보다 좀 더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인식할 때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연구진은 확인했다. 즉, 성별과 상관없이 평소 피해의식이 더 큰 상대가 자신보다 약자를 만났을 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남성 또는 여성의 문제로 폭력 또는 갈등을 바라볼 경우 잘못된 방향으로 사건이 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별이 아닌 사람의 자신감·성향과 공격적 분노 표현 방식이 보다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수역 폭행 사건 장면 ⓒ 동영상 캡처



이수역 폭행 사건의 본질과 언론의 역할

이수역 폭행 사건의 본질은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폭행’에 방점이 찍혀 있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앞서 언급한 연구결과처럼 언제나 성별이 뒤바뀔 수 있다. 해당 사건의 본질이 폭행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남녀 대립 프레임으로 이를 몰고 갔고, 결국 거친 언쟁과 자극적인 추정, 근거 없는 비판과 무책임한 폭로 등이 뒤엉키며 사건 해결의 기미는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본질을 투명하게 밝혔어야 할 상당수 언론이 프레임에만 주력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올해 들어 유독 성 차별적인 발언, 상대 성(性)을 비하하는 공격적인 신조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날카로운 반응이 현실에서 증오와 분노로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추측 보도, 흥미 위주의 보도, 양비양시론을 거듭할수록 사회는 병들고 여론은 언제나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날뛰기 시작한다. 대중의 정서와 가장 밀접히 연관된 것이 언론이지만 동시에 대중의 정서를 가장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줘야 하는 역할도 바로 언론에 있다. 언론이 본질을 도외시하고 프레임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시민의식은 타락하고 그 폐해는 부메랑이 되어 또 다른 이수역 사건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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