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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하이브리드 음악이야기] 추방된 이주노동자, 음악으로 노동자 시인 박노해를 헌정하다

미누를 아십니까. 미노드 목탄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DMZ (비무장지대)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지혜원 감독의 영화 《안녕, 미누》의 주인공인 네팔 아저씨입니다. 그는 오래전 추방된 이주노동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톱 크랙다운(Stop Crackdown·추방을 중지하라)’이라는 이름의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로커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 때문에 9년 만에 그에겐 두 번째 고향이 되는 한국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사실 그는 작년 봄에도 네팔 한국대사관의 비자를 받아 서울 국제 핸드메이드 페어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내린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네팔 여인들이 손수 짠 수공예품을 출품해 그들 생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한 것입니다.

 

이주노동자 밴드 ‘스톱 크랙다운’의 리더이자 보컬인 미누(미노드 목탄·오른쪽)가 지난 1월 네팔을 찾아온 멤버들과 함께 강제추방(2009년 10월) 9년여 만에 첫 공연을 하고 있다. ⓒ 지혜원 제공


두 번째 고향 ‘한국’에서 쫓겨난 미누

그러나 그는 입국을 거절당했습니다. 강제 출국된 사람은 보통 5년이 지나면 입국이 허용되지만 우리의 법무부가 그에게 금지한 시간은 가혹하게도 무려 두 배인 10년이었던 탓입니다. 그가 무려 18년이나 보냈던 낯익은 한국 땅을 딛지도 못하고 다시 네팔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던 그 마음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주최하는 국제 영화제의 주인공 자격으로 드디어 한국 땅을 밟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박3일이었습니다. 다시 재회한 미누와 옛 밴드 동료들은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오랜만에 노래를 목 놓아 불렀습니다. 그가 21살의 나이로 1992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일했던 식당의 주방 아줌마에게서 배운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난 뒤 그는 밴드 멤버인 소띠하(베이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죽어도 좋아.”

자유롭게 한국에 다시 올 수 있게 되면 밴드를 다시 세우자고 굳게 약속한 뒤 미누는 다시 네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네팔의 최대 명절인 더사인을 맞아 같이 살던 누나가 고향에 다녀오는 사이 미누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지혜원 감독과 한국의 지인들이 네팔의 빈소를 조문했을 때 그가 공연 때마다 착용했던 노동자용 ‘빨간 목장갑’이 액자에 담겨 이들을 맞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공연이나 행사 말고 개인적으로 미누와 딱 한 번 조우한 적이 있습니다. 14년 전인 2004년, 역시 10월에 세상을 떠난 신해철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그와 그의 동료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제겐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왜냐하면 심장과 대동맥에 이상이 생겨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해이기 때문이죠. 쓰러지기 전, 저는 2004년에 스무 돌을 맞은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헌정하는 음반을 만드는 기획을 제안했고 진행 중이었습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이 시집의 시를 텍스트로 많은 노래가 만들어졌고 또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한땐 열혈 문학청년이었던 저와 우리 시대에 감동과 충격을 안긴 이 기념비적인 시집에 음악으로 헌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난관이 속출했습니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생각했던 신해철이 스케줄상 도저히 맡기 어렵다고 거절했던 탓입니다. 그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많은 작업을 같이했지만 그때는 조금 섭섭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프로젝트 자체에 애착이 컸던 저는 글자 그대로 고군분투하며 정태춘에서 황병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섭외했고, 그러던 중에 이주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밴드가 있다는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년 전 명동성당의 농성장에서 듀오로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대던 키 작은 네팔 청년임을 기억해 냈었지요.

하지만 이들의 섭외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저는 쓰러져 내일 일을 알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거의 6개월에 걸친 입원과 요양을 거듭하던 중 잠시 들른 서울, 저는 너무나 감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 제안을 거절했던 신해철이 저의 소식을 듣고 프로듀서를 맡아 눈부시게 작업을 마무리 중이라는 겁니다.

빼어난 감각과 능숙한 테크놀로지로 스톱 크랙다운의 트랙 《손무덤》(개인적으로 박노해의 시집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지요)을 믹싱하는 날 밤, 그의 스튜디오에서 미누와 그의 동료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신해철의 손을 거친 이들의 노래는 예상을 훨씬 더 뒤엎는, 완성도 높은 순도를 단숨에 보여주었죠. 저보다 더 좋아서 행복에 젖은 미누의 표정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미누(미노드 목탄)가 공연 때마다 손에 끼는 빨간 목장갑은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상징한다. ⓒ 지혜원 제공


노동자 정서로 가득한 한국 록 선보여

저는 그 노래를 신해철이 작곡해서 제공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해철 왈, “아냐, 형. 이 친구들이 뚝딱거리며 만든 거야. 난 편곡만 좀 도와줬어.” 이 노래는 제가 아는 한 가장 노동자적인 정서로 가득한 한국 록 음악입니다. 그리고 미누는 제가 아는 한 가장 진정성을 지닌 최고의 로커입니다. 그리고 신해철은 역시 가장 멋진 음악 친구입니다. 《노동의 새벽》 헌정 음반에 실린 스톱 크랙다운의 노래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들어볼 수 있습니다.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던 미누는 우리가 하기 싫은 힘든 일을 떠맡겼다가 내수 고용시장이 악화되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생존권을 박탈하고 추방해 버린 한국 자본주의의 추악한 어둠의 이름입니다. 그가 네팔에서 숨을 거둔 날, 서울에선 2018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모인 참가자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안녕, 미누. 저세상에서 해철이형을 꼭 만나서 못다 한 음악을 행복하게 하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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