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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

기업은 한 회계연도가 끝나면 실적을 마감해 재무제표를 만들고 이를 정보이용자에게 제공해 경제적 의사결정에 활용하게 한다. 투자자가 기업 재무제표를 분석해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보유한 주식을 팔거나 채권을 조기 회수하는 것이 그 예다.


국가도 2011회계연도부터 재무제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재무제표가 작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재무제표를 직접 찾아 분석해 본 사람은 일부 학자와 기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듯하다.

국가재무제표가 이처럼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 예산을 재무제표와 연계해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산은 얼마의 돈을 걷어 어디에 얼마만큼 쓸 것인지 현금수입과 지출을 기준으로 작성되는 반면, 재무제표는 현금 입·출입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준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예산을 어디에 얼마 사용했는지 직접적으로 비교·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 부채를 부채라 부르지 않는 정부

정부가 재무제표 정보를 국회와 국민에게 유통시키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도 국가재무제표 외면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국가 부채에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가 포함돼 있다. 기업으로 보면 퇴직급여 충당부채와 유사하다. 같은 점은 퇴직 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고용주의 의무를 결산일 시점에 평가한 금액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은 지급방식이 다르고(연금으로 나누어 지급하느냐 퇴직금으로 일시에 지급하느냐) 공무원연금의 경우 공무원이 일부 기여금을 납부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부는 기업과 다르게 연금 충당부채를 콕 찍어 ‘나라 빚’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연금 충당부채에는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재직 중인 공무원이 받을 금액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재직 공무원이 향후 납부할 기여금과 정부가 납부할 정부부담금으로 대부분 충당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2015년 연금개혁 이후인 2016회계연도와 2017회계연도에 공무원 연금기금에 보전금으로 각각 2조3189억원과 2조2820억원을 지출했다. 2017회계연도 공무원 연금기금의 자산총계는 1조7756억원으로 일반유형자산 등을 제외한 유동자산 및 투자자산은 1조3285억원인 반면, 연금 충당부채는 675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재직공무원이 향후 납부할 기여금과 정부가 납부할 정부부담금, 현재의 연금자산의 투자수익으로 퇴직공무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나서도 여윳돈이 생겨 현재의 연금자산을 연금 충당부채 수준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언젠가는 국민 세금으로 연금 충당부채를 지급해야 하며 이는 나라 빚일 수밖에 없다.

복잡하지만 연금 충당부채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애써 만들어 놓은 재무제표 정보를 재정관리에 활용하지도 않고, 정부가 나서서 재무제표에 포함된 부채를 부채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아쉬워서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결산이 끝난 후 결산내용을 요약한 대국민보고서를 발행하는데, 그 내용 중에 재무부가 재정개혁을 요구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재정적자를 줄이는 개혁을 당장 시행하지 않고 10년이 지연된다면 개혁에 들어가는 비용은 18% 증가할 것이다. 20년 지연된다면 50%가 증가할 것이다.” 국가의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시켜 지속 가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 재무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참고로, 미국 연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2016회계연도 기준으로 106%며, 부채에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가 포함돼 있다.

정부가 국가재무제표를 재정관리에 활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 바로 재무제표 신뢰성 저하와 재무제표 정보가 부실해지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7회계연도 결산분석서를 통해 재무결산 개시 이후 국유재산의 부정확성 등에 따른 전기오류수정손익이 65조7619억원 발생해 국가재무제표 신뢰성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획재정부 재무제표 출자금 주석에서 기타 항목으로 42조원을 표시하는 등 과다하게 차지하는 기타항목으로 인해 정보이용자의 획득 가능한 정보가 차단되는 문제점을 제시했다. 이는 정부가 국가재무제표를 재정관리에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결과 국회와 국민이 국가재무제표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정보를 열심히 만들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회계기준을 만드는가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회계기준을 누가 만드는가다. 국가회계기준은 기획재정부(국가회계제도심의위원회)가 제정한 것이며, 국가회계기준을 연구하는 기관인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는 기획재정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회계기준을 만들고, 그 회계기준에 따라, 기획재정부가 국가재무제표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회계기준 제정과 연구·조사에 반드시 필요한 지배구조와 재정의 독립성이 취약한 상태인 셈이다.

반면 기업회계기준을 연구하는 한국회계기준원은 독립된 민간기구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5조 제6항에 따라 증권발행 시 징수한 분담금의 일부분을 지원받고 있다. 미국의 연방회계기준 제정기구인 FASAB(Federal Accounting Standards Advisory Board)는 GAO(감사원), Treasury(재무부), OMB(예산관리국)가 공동으로 재정을 부담하고 있다. 회계기준 제정기구의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 인적·물적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우리 사회의 회계에 대한 인식 제고와 인프라 개혁을 위해 강조하고 있는 슬로건이다. 고령화·저출산·고용부진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재정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재정 확대는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나라 빚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가재정 건전성이 염려되는 시기에 재무제표의 신뢰도를 높이고, 이를 재정관리에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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