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형적으로 성장한 英 부동산 시장에 ‘브렉시트’ 변수

영국인의 평균 소득은 지난해 기준 연 2만7000파운드(약 3900만원)다. 그러나 영국의 평균 집값은 21만4000파운드(약 3억900만원), 런던의 평균 집값은 48만4000파운드(약 7억원)다. 투자은행 UBS는 평균 연봉의 10배 이상에 달하는 영국의 부동산 가격을 두고 부동산 거품 지수가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영국인들은 과연 이 높은 부동산 가격을 어떻게 감당하고 구매하고 있을까.

영국의 집 구매 절차는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이에 소요되는 부대비용 또한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구매할 집을 선정하고 금전적 준비를 갖춘 이후에도 변호사 혹은 부동산 양도 전문 변호사(Conveyancer)를 선임해 소유권을 이전하고 구매할 집에 환경법 위반 등 법적 하자가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 또한 해당 부동산의 가치가 정확하게 계산된 것인지 등을 확인받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 혹은 전문 측량사에게 조사를 받는다.

 



〈표〉와 같이 런던 평균 가격대의 집을 구매한다고 가정할 때, 부대비용으로는 약 2만8300파운드(약 4100만원)가 소요된다. 다만 처음으로 집을 구매하는 경우, 인지세 혜택이 주어져 집값에서 30만 파운드를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만 인지세가 차등 적용돼 1만4200파운드가 아닌 9200파운드(약 1330만원)의 인지세가 부과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부동산 구매 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 2018년 기준 영국의 2년 고정금리 대출 평균 이자율은 1.73%다. 주택담보대출 금액은 일반 은행 홈페이지에서 손쉽게 계산해 볼 수 있는데,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은행 HSBC를 기준으로 영국인의 평균 연봉인 2만7000파운드를 받고 있는 직장인은 약 12만8000파운드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영국의 평균 집값인 21만4000파운드에는 모자라는 수치다.



집값 부담 낮춰주는 ‘Help to Buy’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헬프 투 바이(Help to Buy)’, ‘셰어 투 바이(Share to Buy)’ 등과 같은 정부 대출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구매자가 처음으로 집을 구매하거나 현재 소유 중인 집을 팔고 새로운 주택을 구매하려는 경우에만 지원받을 수 있다. 헬프 투 바이는 부동산 구매 예정자가 60만 파운드 미만의 새로 지어진 집을 구매할 경우, 일반적으로는 해당 부동산 가격의 최대 20%까지, 런던 지역의 집을 구매하는 경우에는 20%에서 최대 40%까지 정부에서 담보 대출을 해 주는 시스템이다. 셰어 투 바이는 한국의 반(半)전세와 비슷하나 구매자가 집의 소유권을 일정 부분 가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구매자가 집값의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한 금액은 월세로 대체해 지불한다.

다소 복잡하지만 여러 차원에서 중산층의 주택 구입을 위한 지원책이 있다는 점은 안심할 일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과는 상관없이 재산 증여나 상속의 형식으로 집을 양도받고 증여 시점에 부동산에 남아 있는 대출이 12만5000파운드 미만일 경우 인지세는 부과되지 않는다고 한다. 위의 모든 수치들이 무색할 만큼 간편하고 간단하다.

 
영국 부동산 시장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침체 조짐을 보여왔다. 사진은 영국 런던의 부동산 사무소 앞을 지나가는 시민 모습 ⓒ 연합뉴스


‘노 딜 브렉시트’ 경우 집값 30% 폭락 가능성

2016년부터 도입된 다가구 주택자에 대한 규제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불안감이 더해져 런던의 집값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초엔 악명 높던 런던 시내 부동산 가격이 소폭 하락함과 동시에 거래량 또한 급감했다. 사실상 아직 브렉시트와 영국의 부동산 가격 하락 사이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그러나 2016년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부동산 시장은 침체 조짐을 보여왔다. 로이터가 부동산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및 분석에 따르면,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아무런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것)를 할 경우 런던의 부동산 가격은 30%가량 폭락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영국의 집값 상승률은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온 2013년 8월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7월에는 전달 대비 3.1% 상승률을 기록했으나 6월 3.2%에 비해 여전히 소폭 감소했다. 영국의 네이션와이드(Nationwide Building Society)가 올해 2분기에 발표한 영국 평균 집값은 21만4000파운드(약 3억900만원)로, 작년 동일 시기 20만9000파운드(약 3억300만원)에 비해 2.2% 증가했다. 반면 런던 평균 집값은 작년 7월 기준으로 48만8000파운드(약 7억500만원)에서 올 7월 48만4000파운드(약 7억원)로 0.7% 감소했다.

가디언지는 영국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1인 가구 또는 핵가족 형태의 소규모 가족 수가 증가하고 있어 주택에 대한 수요 또한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처음으로 집을 구매하는 구매자가 인지세를 내지 않아도 되도록 정책을 조정했으나, 오히려 이는 판매자로 하여금 인지세 감면을 이유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부추겨 현 부동산 소유자에게만 혜택을 주게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동시에 영국 정부는 투자 또는 주택 임대를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다주택자에 대한 인지세를 강화하는 등 규제나 조세 제도 개편을 통해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 및 신혼부부와 같이 실질적인 첫 주택 구매가 예상되는 연령대 인구 중 주택 소유자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가디언지는 지난 20년간 2만2000파운드(약 3200만원)에서 3만6000파운드(5200만원)의 연봉을 받는 25세에서 34세 사이의 인구 중 집을 소유한 비율은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고 2016년 65%에서 올해 27%로 급격히 하락했다고 밝혔다. 첫 주택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청장년층의 부동산 구입이 더욱 악화되는 이 시점에 영국 정부가 내놓은 규제들이 실효성을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는 영국의 부동산 시장은 이미 망가졌으며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미 기형적으로 성장해 버린 영국 부동산 시장에 브렉시트라는 커다란 변수까지 더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 영국 정부는 과연 어디서부터 메스를 대야 할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