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평화선언과 비핵화 검증 완료 맞바꿔야”
언론에 비친 천 이사장 이미지는 ‘대북 강경론자’다. 굳건한 한·미 동맹과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가 주장의 요지다. 하지만 사고는 유연하다. 올해만 세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천 이사장은 “100%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면서 “북한의 의지만 있다면 6개월 내 비핵화를 99% 이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발효 등 북한 체제 보장 조치와 비핵화 검증 완료 시점을 일치시킬 것을 제안했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 목표가 대남 적화통일 전략의 일환이라는 국내 보수층의 생각에 대해서도 “체제 단합을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천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떠난 9월18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북측 협상단의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가.
“북한이 추구하는 목표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모르면 신뢰할 수 없다고 느낄 거다. 협상이 추구하는 가치, 목표, 이익에 따라 전략은 정해진다. 경수로 협상에서 2년, 6자회담에서 2년간 북한 외교관들을 만나봤는데 북한은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충실하다. 김계관(북한 외무성 제1부상)하고 이야기를 해 보면, 그 사람이 훈령에 따라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다 알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김계관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김계관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거다.”
“北의 대남 적화통일은 ‘립 서비스’ 불과”
6자회담 수석대표 당시와 지금의 북한 목표는 달라졌을까. 대남 적화통일 같은 거 말이다.
“그때도 나는 대남 적화통일이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봤다. 북한의 목표는 생존이다. 미국의 적대정책을 해소하고 체제 안정과 생존, 번영이 목표다. 적화통일이라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원대한 목표에 불과하다. 적화통일을 위해 생존과 번영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남북대화에 대한 보수층 우려를 어떻게 보는가.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지금 북한의 우선순위에서 적화통일은 없다. 체제안정을 40~50년간 유지하면서 경제안정을 이어나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적화통일이라는 것은 북한의 독자적인 체제로서 존속하기 위한 정권의 정당성이라고 할까. 계속 부르짖는 구호에 불과하다.”
현 정부의 대화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한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싶지 않다. 대화는 항상 있어야 한다. 다만 우리한테 가장 큰 문제는 북한 핵문제이지 않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모든 가치는 협상이 가능하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북 협상력이다.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북한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
중요 관전 포인트는 뭘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를 위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뭐라고 말했을지가 중요하다. 현재 북한은 핵실험장, 미사일 엔진실험장을 폐기한 것 말고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비핵화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핵을 얼마나 갖고 있다’ ‘핵물질이 얼마나 있다’다. 어디서 생산하고 있다고 신고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미국이 받아들일 만한 비핵화 초기 조치는 뭘까.
“신고든 동결이든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핵물질을 계속 만들고 있지 않나. 핵실험장 폐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미 버린 카드다.”
신고와 동결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신고를 완전하게 한다면 부분적 동결보다 낫다. 부분적 동결이란 영변의 핵시설만 동결하는 것이다. 모든 핵시설,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포함시키면 동결이 더 낫다. 북한은 아마 신고를 하더라도 완전한 신고를 하지 않고 단계적 신고를 할 가능성이 높다. 1차 신고 내용이 뭐냐에 따라 신고는 동결보다 더 못한 게 될 수 있다. 결국 신고 내용에 달렸다.”
2년 내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할까.
“그건 북한의 의지에 달렸다. 북한이 숨기려고 하면 10년 가도 안 된다.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결심하면 6개월 내 99%를 할 수 있다. 갖고 있는 핵물질만 내놓아도 된다. 탄도기술까지 달라는 게 아니다. 핵물질 시설을 폐기하고 영구불능화 하는 건 기술적으로 6개월도 안 걸린다. 100% 비핵화의 정의가 뭐냐에 따라 다른데, 5㎿ 원자로, 재처리 시설까지 폐기하는 건 수십 년도 더 걸린다. 재가동할 수 없도록 영구불능화 조치만 해도 된다.”
북한이 제대로 신고할까.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북한의 핵 포기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험대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숨겨놓은 농축우라늄을 다 신고하느냐다. 그다음 신고의 완전성과 정확성을 확인하는 검증이다. 그걸 얼마나 광범위하게 허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검증의정서를 채택할 때 검증의 범위와 방법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를 보면 북한이 진짜 (핵 포기) 의지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로드맵에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핵물질을 어느 단계에서 내놓을지,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를 어느 단계에서 할지 결정해야 한다.”
“北, 쓸모없는 핵실험장 폐기로 생색”
북·미 양측 간 서로 필요한 것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미·북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른 것은 북한은 아무 의미가 없는 핵실험장 폐기 같은 것을 카드로 냈기 때문이다. 핵실험을 여섯 번 한 곳은 사실상 필요가 없다. 인도·파키스탄도 핵실험을 여섯 번 하고 실험장을 폐쇄했다. 핵실험을 여섯 번 하면, 핵실험 데이터를 확보해 그다음부터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임계전(臨界前) 핵실험을 해도 된다. 북한은 지금 버린 카드로 생색을 낸다.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미국이 너무 큰 보상을 해 준 게 문제였다. 한·미 연합훈련이라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이 존재하는 한 필요한 거다. 미국은 정말 필요한 것을 버린 거고 북한은 필요 없는 카드를 버린 게 문제를 이렇게 만들었다.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편을 들고 있다. 이게 결국 한·미 간 신뢰, 공조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사실 핵실험장은 폐쇄하면 안 된다. 사찰이 끝날 때까지 열어놓아야 한다. 오히려 북한이 하겠다고 해도 우리가 말렸어야 했다. 나중에 사찰관이 들어가 여섯 번의 핵실험 중에서 어떤 게 플루토늄인지, 어떤 것이 HEU(고농축우라늄)인지 확인해야 한다. 김정은은 버린 카드로 엄청나게 값을 후려치고 있다.”
방북 특사단에게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를 하겠다고 말했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자세한 얘기는 미·북이 만나서 할 거다. 우려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이 핵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 참모들이 핵실험장 폐기가 의미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조언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이 4월2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실험장은 이제 사명을 다해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주변에서 어드바이스(조언)하지 않는가.”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을 맞교환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시에 하되 끝을 일치시켜야 한다. 미·북 수교, 평화협정 발효시점, 경제제재 완전 해제 등 안전보장 조치를 비핵화 완료, 검증되는 시점과 맞추면 된다.”
종전선언 없이 바로 평화협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인가.
“한반도는 지난 65년간 종전 상태를 유지해 왔다. 남은 것은 법적 종전선언밖에 없다. 법적 종전은 평화협정에 의해 된다. 평화협정이 발효되는 날 법적 종전이 된다는 것이다. 그 전에 하는 종전선언은 지금의 종전 상태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속에 전략무기 배치도 안 하고 군사훈련도 안 하는 내용이 들어가면 단순한 종전선언과 다른 의미가 들어갈 수 있다. 이건 준(準)평화협정, 임시 평화협정이다.”
국내 보수층은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꼼수가 있다고 비판한다.
“이미 13년 전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하겠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단순히 그걸 갖고 뭐라 하기는 힘들다. 이 문제는 핵을 없애면 간단히 해결된다. 북한에 핵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핵을 갖고 있을 수 있나. 북한이 그걸 받아주겠나.”
5월 미국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용인하는 발언을 했다.
“내가 그때 제기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너무 일찍 꺼낸 것이 잘못이었다는 거다. 우리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카드를 다 쓰고 남은 게 비핵화밖에 없다고 치자. 그럴 경우 비핵화를 안 하고 주한미군 있는 게 낫나, 그걸 고민해 보자는 논리였다.”
“외교부, 대북 협상 주도권 없어 보여”
과거 노무현 정부 때와 지금 대북 라인업을 비교하면 어떤가.
“그때는 외교부가 대북 협상을 주도했다. 안보실 등 청와대 여기저기서 외교부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노 대통령이 외교부에 힘을 실어줬다. 지금은 외교부에 이런 문제를 아는 사람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저러시는 걸 보면서 ‘외교부에 주도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정부 활동에 대한 미국 쪽 반응은 어떤가.
“한·미 공조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너무 앞서가고 있는데 미국은 이게 결국 대북 협상력과 북핵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중재 자체에 부정적이라는 뜻인가.
“문제를 더 쉽게 만들기 위해 나선다면 되지만 반대로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해 나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북한에 비핵화를 안 하고도 버틸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게 위험하다. 미국에서 볼 때 ‘모처럼 비핵화시킬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만들어 놨는데 한국 정부가 기회를 살리는 게 아니라 날리는 일을 꾸미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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