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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9일 나란히 개봉하며 격돌 예고한 한국영화 3파전 분석

하루가 멀다 하고 흥행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는 게 극장가지만, 이번 추석 연휴야말로 그 정점이다. 9월19일 추석 대작 한국영화 세 편이 나란히 격돌했다. 《명당》 《안시성》 그리고 《협상》. 모두 100억원 이상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다. 

 

통상 대작 한국영화는 한 주 차라도 개봉일을 서로 피해 가는 배급 방식을 택하지만, 연휴를 앞두고 세 영화가 나란히 19일에 개봉하는 정면승부를 택하면서 추석 극장가에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개봉한 공포영화 《더 넌》 등 외화에는 뚜렷한 적수가 없는 상황이다. 앞서 9월12일 개봉한 《물괴》까지 한국영화 4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 영화는 개봉 7일 차인 18일까지 68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치며 일찌감치 레이스에서 밀려났다. 


세 영화는 예매율에서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이미 접전을 예고한 바 있다. 개봉일(밤 10시 기준) 예매율의 승자는 《안시성》. 34%의 예매율로 《명당》(27%), 《협상》(14%)을 웃돌며 1위에 올라섰다. 제일 먼저 승기를 잡은 영화 역시 《안시성》이다. 개봉 첫날인 9월19일 12만 관객을 모으며 1위로 출발했다. 다만 《명당》이 10만 명, 《협상》이 8만 명을 모았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근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끝내 어느 영화가 가장 크게 웃을 것인가. 세 영화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영화 제목 가나다순)

 

왼쪽부터 영화 《명당》의 주연배우 조승우, 《안시성》의 조인성, 《협상》의 손예진 ⓒ CJ엔터테인먼트·메가박스 플러스엠·NEW

 

《명당》, 추석 영화=사극 공식 지킬까


풍수지리를 따져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어지는 관습이다. 《명당》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 소재를 조선 왕조의 역사와 연결해 만든 ‘팩션 사극’이다. 흥선대원군이 지관(地官·풍수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등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의 조언을 바탕으로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역사 기록에 상상력을 보탠 각본이다. 《관상》(2013)과 《궁합》(2018)을 이은 역학 3부작의 완결편이기도 하다.


주인공으로는 명당자리를 잘 보기로 이름난 지관 박재상(조승우)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웠다. 박재상은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인 장동 김씨 가문의 눈 밖에 나 모든 것을 잃는다. 복수를 꿈꾸며 보낸 13년의 세월이 흐른 뒤,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은 박재상에게 함께 장동 김씨 가문을 무너뜨리자고 제안한다. 


대를 이어 두 명의 왕이 나온다는 ‘2대 천자 지지(二代天子之地)’. 《명당》은 이 땅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욕망을 그린다. 땅은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부동산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까지 현실적으로 통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여기에 흥미를 당기는 역사적 사실을 한 줄 얹어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욕망의 드라마’를 완성하고자 한 것은 《명당》만의 명민한 전략이다. 소재가 소재니만큼 땅이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로 비춰지기도 한다. 


근사한 로케이션이 눈을 사로잡지만, 그보다 돋보이는 건 역시나 그 안의 인간 군상들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대립각을 만들어낸다. 박재상과 장동 김씨 가문 김좌근(백윤식)·김병기(김성균) 부자(父子), 왕 헌종(이원근)과 왕권을 쥐락펴락하려는 김씨 가문, 뜻이 달라지는 순간의 박재상과 흥선 등 엎치락뒤치락하는 갈등 구조가 이어진다. 명당, 즉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땅의 힘을 논하며 운명론을 외칠 것 같던 영화는 어느덧 인간의 선택을 이야기한다. 운명이 잘못된 길을 제시하더라도 그 앞에 선 인물은 과연 옳은 길을 택할 수 있는지, 선택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선택 앞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에 가까운 것이다.


조승우와 지성, 백윤식 등 ‘연기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불같은 기운의 충돌이 《명당》의 백미다. 박재상의 절친한 벗 용식 역의 유재명, 담대하고 꼿꼿한 성품의 기생 초원 역의 문채원 등 비교적 적은 출연 분량의 배우들도 제 몫을 다한다. 다만 이 영화는 모험을 피하고 안정을 택했다는 인상이 짙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인간의 탐욕, 음모와 배신 등을 차곡차곡 그려 나간 정통 사극이다. 탄탄하고 성실하게 잘 쌓은 극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한 방의 부재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인공 박재상이 권력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관찰자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오는 한계일 수 있다.

 

《안시성》의 제작비는 200억원대로 《명당》과 《협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사진은 9월12일 서울 용산구 용산CGV에서 열린 《안시성》 언론시사회 ⓒ 시사저널 최준필


패기의 《안시성》, 입소문 통할까 


《명당》의 중심에 인간의 헛된 욕망이 있다면, 《안시성》의 중심에는 전투가 있다. 고구려 양만춘 장군이 이끈 안시성 전투를 바탕으로 역시 상상력을 보탠 팩션 사극이다.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은 삼국을 손에 넣으려는 야심을 불태우며 고구려를 치려고, 안시성을 함락한 뒤 평양성으로 진군할 계획을 세운다. 20만의 당 군대가 몰려드는 반면, 안시성을 지키는 군사의 수는 고작 5000여 명.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조인성)은 이 전투를 어떻게든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한국 사극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조선시대가 아닌 삼국시대 고구려의 전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우선 신선하다. 당나라를 상대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둔 전투라는 기록 역시 좋은 소재다. 영화는 에두르지 않고 전투 그 자체를 중심에 놓는다. 비장미 넘치는 ‘전쟁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한국 사극영화 최초의 시도라 볼 수 있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라 애초에 다른 결론에 도달하긴 어렵다. 대신 88일간 이어진 싸움이었기에 이 전투를 어떤 양상으로 보여주느냐, 어떤 인물 서사를 만드느냐가 과제였을 것이다. 영화는 관객이 마음을 이입할 실질적 주인공으로 고구려 태학도 사물(남주혁)을 창조했다. 연개소문(유오성)의 명을 받들어 양만춘을 암살하기 위해 안시성에 잠입한 인물이다. 그가 소문과는 달리 좋은 자질을 갖춘 리더인 양만춘에게 존경심을 지니고, 결국 안시성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힘을 보태며 변화하는 성장 서사가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영화는 총 네 번의 전투가 치러지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스펙터클이 상당한 수준이다. 이것이 곧 《안시성》 최고의 강점이다. 전투마다 조금씩 특색과 방식이 다르고, 모든 인물들에게 하이라이트 신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들여 찍은 장면들이 다수다. 전장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 혹은 전투 게임의 주인공을 내가 직접 플레이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실감 나는 전투신은 할리우드의 웬만한 전쟁 블록버스터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다만 이 영화만의 참신함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류의 인물 구성이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 등, 익히 보아온 대작 외화 블록버스터들의 익숙한 공식을 따른 듯 보인다. 반복되는 전투신이 주는 피로감도 높은 편이다. 안시성의 제작비는 200억원대. 100억원대인 《명당》과 《협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을 더 크게 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최소 55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높은 제작비가 강점이자 부담인 셈이다.

 


초반 숨 고르는 《협상》, 반전 가능할까


세 편 중 유일하게 현대극인 《협상》은 사전 예매율과 개봉일 관객 동원이라는 초반 레이스에서 다소 뒤처졌다. 다만 ‘협상 전문가’라는 신선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고, 주연배우 손예진과 현빈 모두 티켓 파워가 검증된 배우들이기 때문에 입소문을 통한 후반 뒷심을 기대하기엔 충분한 작품이다.


협상 전문가 하채윤(손예진)은 긴급 투입된 현장에서 인질과 인질범 모두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며칠 뒤 국제 범죄조직을 이끄는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현빈)의 인질극이 시작된다. 인질 사망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채윤은 일을 그만두려 하지만, 협상가로 지목되면서 발이 묶인다. 태국과 한국을 오가며 벌어지는 작전에서 채윤은 인질극을 벌이는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협상을 시작한다. 


12시간 동안 벌어지는 협상의 긴박함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이 영화의 관건이다. 조건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최악의 인질극을 진행하는 범인에게서, 노련하고 똑똑한 방식으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협상가의 모습을 얼마나 잘 그려내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영화가 이 같은 기대를 그다지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냉철한 협상의 과정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감정을 훨씬 앞세운 이 영화의 전략이 약점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예상에 비해 협상의 기술이 쫄깃하고 매력적으로 드러난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처음으로 악역을 소화한 현빈의 연기 변신,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손예진의 조합은 좋은 편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오가는 대화와 별개로 펼쳐지는 군사작전 등 판을 키워 긴장감을 자아내는 방식도 팝콘 무비의 공식을 잘 따른 편. 개봉 전 시사 등으로 이미 어느 정도 관객의 호감을 산 《명당》이나 《안시성》과는 달리, 개봉 후 입소문으로 반전 드라마를 써내려가야 하는 것이 《협상》이 받아든 과제다. 결과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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