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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만나는데 장소가 뭐가 문제냐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다. 범인(凡人)들도 양 당사자가 만날 때는 형식에 신경을 쓴다. 여기서 형식은 시간과 장소, 의전 등을 포함한다. 하물며 국가원수끼리 만날 때는 말할 나위도 없다. 형식을 따져보자.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서 분단 후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파트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이때는 장소가 평양이라는 사실은 아무 문제가 안 됐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이뤄졌다. 이때도 장소는 평양이었다. 이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가 한 번 평양으로 갔으니 이제는 저쪽에서 서울로 오는 게 이치에 맞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이번에도 우리 국가원수가 북한으로 간다. 이건 형식 면에서 문제가 많다. 우리는 통일을 위해 이런다고 대승적으로 넘기지만 북한은 안 그렇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한 최고지도자의 방북을 체제 선전의 기회로 적극 활용한다. 자칫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의 최고 존엄을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격이 된다. 우리 국가원수가 두 번이나 북한엘 갔으니 이제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한으로 오는 게 상식적이다. 이게 향후 정상적인 남북관계 전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우리 대통령이 평양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 가장 목이 마른 쪽은 북한이다. 올 들어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유화 모드로 나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제재가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기왕 문 대통령이 평양을 가게 됐으니 좋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길 바란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울 좋은 말에 휘둘리지 말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최대한 냉철하게 국익을 챙겨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통일이 돼야 같은 국민이고 아직은 준전시상황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다음 남북 정상회담은 반드시 서울에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