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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월호 참사 2기 특조위에 대한 우려와 기대 표명한 이석태 1기 특조위원장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환호와 울음 속에 11월24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6월 무력하게 활동을 마감한 세월호 참사 1기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뒤를 이을 2기 특조위 출범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이로써 다시 세월호 진상규명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됐다. 이 모습을 누구보다 남다른 감회로 지켜본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 1기 특조위를 이끌었던 이석태 전 위원장이다. 그에게 1년6개월간의 특조위 활동은 진실을 감추려는 힘과 맞서야 했던 외로운 시간이었다. 정부로부터 기본적인 자료 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활동 내내 ‘세금 도둑’이란 비난에도 직면해야 했다. 스스로 단단하다 생각했지만, 특조위 활동으로 상당한 ‘내상(內傷)’을 입었다고 그는 전했다. 시사저널은 사회적 참사법 통과 일주일 후인 12월1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이 전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2기 출범을 앞두고 내 그림자가 계속 어른거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언론 노출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인터뷰 동안 줄곧 2기 특조위에 대한 애정 어린 우려와 기대를 전했다. 그는 “특조위 활동은 정부가 적극 도와야만 가능한 일”이라며 “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절히 힘을 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석태 1기 특조위원장 © 시사저널 이종현


 

사회적 참사법 통과됐을 때 기분 어땠나.

 

“일본에서 휴대폰으로 소식을 확인했다. 예상은 했지만 다행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오랜 염원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물론 법 자체가 완벽한 건 아니지만.”

  

법 내용상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나.

 

“특조위원 구성이 좀 아쉽다. 여당 4명, 야당 4명, 국회의장 추천 1명으로 구성될 텐데, 유가족이나 시민사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특조위 운영 쉽지 않을 수 있다. 알다시피 자유한국당 쪽에선 ‘세월호 규명할 게 뭐 있느냐’는 입장이니까. 또 조사범위가 1기에 비해 좀 제한돼 이 점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朴 정부 지원 전혀 받지 못해 힘들었다” 

 

근래 1기 특조위 활동 때 어려움이 많이 떠올랐을 것 같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조사를 위한 지원을 정부로부터 전혀 받지 못한 것 자체가 가장 힘들었다. 특별법엔 120명이 조사위 정원이었는데 끝날 때까지 100명 정도였다. 업무가 가중되니 스트레스도 많았다. 또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가장 중요한데 국장이 이유 없이 계속 공석이었다. 아마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 위원회로선 가장 악조건 속에서 활동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는 이런 위원회 활동은 없으리라 본다.”

  

당시엔 자료 하나 얻기도 굉장히 힘들지 않았나.

 

“물론. 그냥 저쪽에서 안 보내면 손쓸 방법이 없었다. 청문회도 안 나오고, 심지어 당시 해수부에서 청문회는 불법이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나.”

  

조직 내 구성원들과의 어려움도 컸을 것 같다.

 

“당시 여당 측 위원들과는 어느 정도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지만 또 그런 걸 극복해 나가는 게 내 책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식적 수준에서의 예상이었지, 부위원장들까지 연이어 사퇴하고 이렇게 조직적 방해가 있을 줄은 상상 못했다.”

  

부위원장 사퇴 당시 충격이 컸나보다. (2015년 7월 조대환 부위원장이 특조위를 ‘세금 도둑’이라 칭하며 사퇴했고, 반년 뒤 후임 이헌 부위원장까지 대통령 7시간 조사 결정에 반발해 물러난 바 있다.)

 

“같이 팀을 이끌어야 하는 부위원장들이 그렇게 나가니까. 나가면서도 언론이나 SNS에 나와 특조위 전체를 생중계하듯 비난했다. 부위원장부터가 ‘특조위가 할 일이 뭐 있냐’고 나오니 참 힘들었다.”

  

지난 7월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 활동을 무력화하라고 지시한 문건이 청와대 캐비닛에서 나왔다. 이런 지시가 있었다는 건 예상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우릴 그렇게 힘들게 하진 않았겠지. 당시 청와대는 우리 특조위는 생겨나선 안 되는, 생겨난 후엔 어떻게든 조기에 종료시켜야 하는 존재였던 거다. 그런데 얼마 전, 박근혜 정부가 당시 세월호 청문회 나가는 공무원들에게도 증언에 대한 은밀한 사전지시를 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그건 좀 충격이었다. 사실이라면 중대한 범죄 아닌가. 매우 실망스러웠다.”

  

“당시 특조위원들 모두 트라우마 안고 있다”

 

특조위 활동이 강제 종료된 2016년 6월30일 이후부터 3개월간 조사관들이 급여 없이 일했다. 지난 9월 이들이 제기한 급여 지급 소송이 승소 판결 났다.

 

“판결은 간단하다. 이전부터 우리가 주장했던 급여 지급 기간이 그대로 반영됐다. 당시 특조위 방해 세력 쪽에서 ‘정부 입장대로 하면 급여도 나가고 모두 편해지지 않느냐, 위원장이 말을 안 들어 그렇다’는 얘기가 계속 있었다. 곁에서 참 미안하고 딱했는데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이다.”

  

많은 어려움 겪으며 그만두고 싶었을 땐 없었나.

 

“해야 하는 일이니까 유가족들이 내게 그 자리를 요청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 했던 일이니까. 오히려 그 힘든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후회는 없다.”

  

활동 이후 트라우마 겪었다는 조사관들 많다. 위원장도 그런 게 있나.

 

“특조위에서 정부 쪽 파견이 아닌 모든 사람은 아마 나까지 포함해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을 거다. 오랫동안 정부를 상대로 여러 시민사회 일을 하면서 단련이 좀 돼 있다 생각했는데, 특조위는 암튼 좀 특별했다. 알게 모르게 내상이 적지 않았다.”

  

여전히 ‘세월호는 끝난 일’이라며 특조위 필요성에 의문 갖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 규명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 끝났다는 건 뭘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앞으로 2기 특조위가 국민들에게 계속 운영 상황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1기 특조위 활동에 의문을 제기해 온 언론도 이젠 좀 다를 거라고 본다.”

  

2기가 가장 중점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부는 어떻게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조사위라는 건 사실 정부가 중립적으로 해도 안 된다. 굉장히 어려운 활동이니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임명될 위원들은 정치적 입장이 아닌, 참사 원인 밝히고 대안 마련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야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을 찾는 시민들도 더 편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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