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5년 차 맞는 어떤 남자, 배우 김지훈의 꿈
50부작 드라마,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캐릭터로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도둑놈 도둑님》은 특히 힘들었어요. 한준희가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였고, 검사 역할이라 법률 용어도 어려웠죠. 아무래도 제가 지구력이 좀 부족한가 봐요. 중후반을 지나가니까 지치기 시작하더라고요. 일종의 매너리즘이랄까요. 좀처럼 마음을 잡기가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사히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홀가분합니다.”
작품을 하는 중간에도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군요. 정신없는 현장에 있으면 그럴 틈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작품이 싫다거나,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제 성격의 문제죠. 처음엔 신나서 하다가 나중엔 ‘언제 끝나지?’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면에선 호흡이 긴 드라마보다 미니시리즈가 저와 더 잘 맞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진 않습니다. 일이니까 끝까지 해야죠.”
이번처럼 연기하면서 문득문득 지쳐올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무조건 대본에 의지해요. ‘대본에 적혀 있는 대로만 하자’는 생각으로 내 안의 120%를 끌어내려고 하죠. 이 장면은 이래서 이해가 안 되고, 저 장면은 저래서 연기를 못하겠다 같은 딴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냥 대본에 써 있는 대로만 하죠. 작품과 캐릭터에 의문을 갖는 순간 더 하기 싫어지고 지치거든요. 전적으로 작가님을 믿고,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드라마는 어느새 끝나 있어요(웃음).”
영화 《역모》가 이번에 개봉하죠.
“김홍선 감독님이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예산이 부족해 본인 인맥을 동원해 뜻이 맞는 배우들을 모아 만든 작품이 《역모》입니다. 배우들 모두 열정 페이만 받고 출연했죠.”
알고 보니 2년 전에 이미 만들어 놓은 작품이라면서요.
“사실 영화가 개봉할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영화계의 현실을 아시잖아요. 규모가 작은 영화는 찍어 놓고도 상영관을 못 잡아 개봉을 못하기도 하니까요. 개봉 안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개봉 일자가 잡히게 돼 기쁘고 놀랐어요.”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조재윤·정해인씨는 그때에 비해 유명 스타가 되었네요.
“출연 배우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다 보니까 그 탄력을 받아서 개봉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2~3년 후를 예상해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죠. 지금은 헝그리한 배우들에게 차비만 주고 찍은 다음에 그 사람이 잘됐을 때 개봉하는 식으로요(웃음).”
그동안은 영화 출연이 뜸했었죠. 배우로선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머릿속 80%는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에요. 하지만 저는 제 현실을 잘 알죠. 데뷔 15년 차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과 아직 멀었다는 것, 그게 제 현실이죠. 배우로서 꿈이 있다면 김은숙 작가님의 작품을 하고 싶어요. 모든 남자 배우가 원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제가 로맨틱 코미디와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인가 봐요. 자신 있는데 말예요. 앞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숙제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영화에도 갈증이 있어요. 《신세계》와 같은 누아르,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연기해 보고 싶어요. 이번 영화를 관계자들이 보고 거기서 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면 다음 작품으로 좋게 연결되지 않을까요?”
욕심이 많네요.
“더 큰 욕심이 있는데…. 해외 진출이오. 개인적인 목표랄까요.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니 영어와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내년에 그 기회를 바라봅니다.”
삶의 낙이 뭐예요.
“일이죠.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힘들긴 해도 저는 카메라 앞에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워요. 물론 잠도 못 자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고, 관리해야 하는 삶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육체적인 힘듦은 잠깐이에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스트레스가 시작돼요. 가장 스트레스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10년 전 사무실 계약 문제로 소송이 길어지면서 일을 못했을 때, 그리고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이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2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을 때예요. 그러니까 저는 울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웃는 배우로 사는 게 좋아요.”
그런데 전공은 연기와 무관해요. 심리학을 전공했죠.
“어렸을 땐 제 머릿속이 궁금했어요(웃음).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살까’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과에 진학했죠. 그러다 스무 살 때 우연한 계기로 연기학원에 다니게 됐고, ‘이거다’ 싶은 생각에 배우를 꿈꾸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진짜 연기 못했어요. 산 넘어 산이었죠. 그런 면에서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15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잘해 왔다고요.”
배우로서 가장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뭘까요.
“나이 먹는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젊은 감성을 유지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나이 먹어도 젊은 배우이고 싶거든요. 그래서 유행하는 옷을 사 입는 데 가장 많은 돈을 쓰고, 트렌드가 뭔지 공부도 하고, 최신 곡은 모두 섭렵하려고 하죠. 물론 유행어도 알아둬야 해요. 취미생활 중 하나가 음악방송 다시 보기인데, 최근엔 비투비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