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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 (33) 호반건설그룹] 어린 세 자녀에게 일찍부터 승계… ‘장남 밀어주기’ 마무리 짓고 ‘둘째 키우기’ 나서

 

호반건설은 재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1989년 종업원 5명으로 시작한 호반건설은 3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국내의 내로라하는 재벌가(家)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올해 9월1일 기준 자산총액 7조원을 넘겼고, 재계 서열 47위에 올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 시공능력평가 13위에 랭크됐다. 호반건설의 성장세는 현재진행형이다. 호반건설은 건설업에 집중된 사업구조를 다각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수년 전부터 인수·합병(M&A) 시장의 ‘단골’로 꼽힌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호반건설 본사 © 시사저널 포토


 

호반건설이 이처럼 내실 있는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창업주인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신중 경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분양한 단지의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으면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다는 ‘분양률 90%’ 원칙과, 부채를 최소화하는 ‘무차입 경영’ 원칙을 지켜왔다. 이런 경영스타일은 국내 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빛을 발했다. 1997~98년‘IMF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헐값으로 내놓은 부동산을 매입해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서 사세를 크게 확장한 것이다.

  장남 회사 호반건설주택, 그룹 핵심으로 부상

 

올해 5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김상열 회장은 왕성한 경영 활동을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10년 이상 김 회장 중심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일찍부터 자신의 세 자녀에 대한 승계 작업을 벌여왔다. 현재 지분 승계는 상당 부분 마무리된 상태다. 일단 김 회장의 장남 김대헌 호반건설 상무는 호반건설주택(옛 호반비오토)을 중심으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호반건설주택은 김 상무(85.7%)와 김 회장의 부인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14.3%)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호반건설주택은 2003년 설립된 부동산 자문 및 중개업체다. 계열사의 아파트 분양도 대행한다. 호반건설주택에는 설립 직후부터 그룹 차원의 지원이 시작됐다. 내부거래 규모와 비중은 매년 증가했다. 급기야 2010년에는 내부거래율이 99%(총매출 179억원-내부거래액 178억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후에도 호반건설주택에 대한 일감 지원은 계속 늘어났다. 2011년과 2012년의 내부거래율은 각각 88%(298억원-263억원)와 96%(484억원-466억원)에 달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13년, 호반건설주택에 자회사이던 호반씨엠과 에이치비자산관리를 흡수 합병하면서다. 이는 당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에이치비자산관리는 호반건설주택 매출 대부분을 책임져온 계열사다. 2012년 기준 내부거래율이 90% 규모였다. 호반씨엠은 매년 전량에 가까운 매출을 그룹 계열사에 의존해 온 경우다. 합병을 통해 호반건설주택의 내부거래율을 낮춤과 동시에, 호반씨엠의 일감몰아주기 논란도 매듭지을 수 있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 연합뉴스


 

실제로 합병 이듬해인 2014년 호반건설주택의 내부거래율은 8.6%(2049억원-176억원)로 대폭 하락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내부거래율은 39.4%(7902억원-3118억원)로 다시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전체 매출의 43.61%에 해당하는 5468억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 것이다. 이를 통해 호반건설주택은 그룹의 간판회사로 부상했다. 지난해 매출(1조2539억원)과 영업이익(1959억원)이 호반건설(1조1815억원·1791억원)을 뛰어넘은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호반건설주택이 그룹의 지주사로 부상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상열 회장의 차남 김민성씨는 호반건설산업(옛 호반티에스)을 갖고 있다. 2010년 설립된 주택건설 및 분양공급업체다. 현재 김씨가 지분 90%를, 그룹 계열사인 호반베르디움(옛 베르디움)이 10%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호반건설산업에는 그룹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계열사들의 매출을 책임지는 ‘백기사’ 역할을 했다. 여기엔 티에스주택·티에스개발·티에스건설·티에스리빙 등 자회사가 동원됐다. 추첨 방식의 택지지구 아파트 용지 입찰의 당첨률을 높이기 위한 ‘벌떼입찰용’ 회사다. 이를 통해 용지를 낙찰받아 계열사에 시행·시공을 맡기는 식이었다.

  

차남은 호반건설산업, 장녀는 호반베르디움

 

따라서 호반건설산업의 내부거래는 ‘매입’에 집중돼 있었다. 호반건설(분양외주비)과 호반건설주택(광고선전비)이 주요 거래처였다. 호반건설산업의 매입 거래 규모는 설립 이듬해인 2011년 80억원에서 2014년 3093억원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계열사들의 일감몰아주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해 내부거래율이 7.1%(3701억원-263억원)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전체 매출 6152억원 가운데 44.2%에 해당하는 2724억원이 그룹 계열사에서 나왔다. 본격적인 ‘차남 밀어주기’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김 회장의 장녀 김윤혜씨에게는 호반베르디움이 주어졌다. 그녀는 호반베르디움 지분 30.9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김민성씨도 20.65%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48.38%는 자기주식이다. 2012년까지만 해도 총매출이 31억원에 불과하던 당시 베르디움(호반베르디움의 전신)은 2013년 자회사이던 호반베르디움·베르디움개발·에이치비건설 등을 흡수 합병하며 덩치를 불렸다. 호반베르디움도 일부 내부거래 물량이 있었다. 그러나 2014년 11.3%(1996억원-225억원)이던 내부거래율은 2014년 3.4%(4064억원-140억원)에서 2015년 1.2%(2357억원-29억원)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매출(469억원)이 줄어든 반면, 내부거래 규모가 64억원으로 증가하면서 내부거래율도 13.7%로 올랐다.

  


 

호반건설그룹은 이처럼 지분 승계가 상당 부분 2세들에게 진행된 상황이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향후 2세들이 별다른 잡음 없이 순조롭게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얘기가 달라졌다.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호반건설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다. 자산총액이 10조원 미만이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으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대기업에 준하는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이고, 내부거래 비중이 12% 혹은 액수가 200억원 이상인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따라서 2세들의 회사는 당장 규제를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공정위 ‘살생부’에 사명(社名)을 올린 곳이 2세 소유의 회사들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모회사인 호반건설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김 회장(29.1%)과 부인 우 이사장(4.7%) 등 총수 일가 지분율이 33.8%이고, 지난해 기준 내부거래율도 31.12%(1조1815억원-3812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호반건설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가 대형 건설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회사를 통해 아파트 용지를 입찰받아 다른 계열사에 시공을 맡기는 식의 경영구조를 채택하면서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논란을 해소해 나갈 것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문제를 야기한 사업구조도 개편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연재기획 ‘재벌家 후계자들’ 34회는 부영그룹입니다. ‘재벌家 후계자들’의 자세한 내용은 팟캐스트 방송 팟빵의 ‘시사팩폭( ‘아이폰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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