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전술핵, 치킨게임 멈출 수 있는 역설적인 협상 카드
김정은이 체득한 ‘핵’이라는 학습효과
북핵 문제와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하나씩 살펴보자. 북한이 위험수위를 넘나들며 대놓고 도발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이 미치광이라서가 아니다. 대한민국과의 체제 대결에서 경제적으로 승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적으로 밀리는 경제력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분야 그리고 외교적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군사력이고 그 무기는 오직 ‘핵’만이 가능하다는 추론을 김정은은 했을 것이다. 아울러, 핵을 갖고 있으면 대한민국 내 여론을 ‘전술핵 재배치’와 ‘평화를 위한 대화 제안’으로 분열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또한 그는 학습효과를 통해 체득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가 핵개발을 멈추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북핵 개발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이달 초 주도적으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력한 대북 추가 제재 결의를 추진하고 나섰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결의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이슈와 미국과의 자존심 경쟁에서 우위를 서려는 중국과 러시아는 끝까지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에 설 것이 분명하다. 추가 대북 제재를 거부하고 오히려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개발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 확장을 더 불편하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에 대해 압박과 제재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의 추가적인 압박과 제재는 암묵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무관심으로 인해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이 전 세계적 압박으로 대화의 장에 나설 리는 없다. 이미 북한 내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그에게 전 세계적인 압박과 제재 동참은 북한 인민들을 힘들고 궁핍하게 할 뿐이지 정작 자신에게 다가오는 실질적인 타격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특성상 군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날리 만무하다. 경제적 압박이 점점 심해질 경우 이에 대한 인민들과 군부의 분노를 외부 세계(가령 대한민국과 미국 등)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핵은 김정은에게 필수적으로 놓쳐서는 안 될 카드이다. 미국의 제재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미국은 결국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선제 타격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키느냐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미국이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서 한발 물러선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 앞에 무력시위를 벌인 국가 또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던 단체는 무차별하게 짓밟혀왔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이 상대에게 화해 제스처를 취하고 대화를 내미는 건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으로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북한이 만약 대한민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북한은 이미 미국의 엄청난 화력에 의해 전 지역이 초토화 됐을 것이다.최후의 협상카드가 될 지도 모를 필요악
결과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핵개발 대립을 중재하고 풀어낼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게 달려 있다. 힘의 과시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마음대로 공격하지 못하자 트위터를 통해 이에 대한 분노를 오히려 우리를 향해 쏟아내고 있다.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 자매지인 환구시보 역시 매일 사설과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 야심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멈출 것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침묵하며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 온갖 폭언을 일삼는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유화책을 비판하며 전쟁 불사와 한미 FTA 폐기를 동시에 주장하는 미국, 대한민국은 향후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첫째, 모든 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제재에 대한 전세계적인 동참 호소에 주도적으로 나서자 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처럼 되어가고 있다”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북 대화를 복원할 것을 강조했다. 유시민 작가 또한 “북한은 합의대로 협상이 시작되면 추가적으로 핵,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북한의 김정은이 웃을 일이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 북한의 군사력 억제와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거나 해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화는 상대가 이성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설령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고 하면 과연 대한민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겠는가. 북한은 지금도 핵보유국 인정, 주한미군 철수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들 주장을 대한민국 차원에서 수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문 대통령은 안쓰러울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 노력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북한에게는 한미일에 맞서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 배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미국이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군산복합체 수출 등)보다 전쟁을 통해 잃게 될 비용(대한민국 또는 일본 등에 투자한 미국의 자본)이 클 경우 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트럼프는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돈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전술핵 재배치를 최후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우리 정부를 대신해 “국민 여론이 전술핵을 원하고 있다”는 발언을 미국에 전달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 개발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 확장을 두려워하지만 이것보다 대한민국, 대만, 일본 등이 연쇄적으로 핵개발 또는 전술핵 배치를 전개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위축될 것이고 대만과 일본은 본격적으로 중국의 주장에 대해 강경하게 맞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핵을 핵으로 맞서자는 주장은 공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설득할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약 미국과 북한이 비밀리에 협상을 한다면 안건은 뻔하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양보하는 대신 북핵 동결에 대한 막대한 보상금액을 미국과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다. 트럼프는 돈을 중시하기에 이 부담금을 우리에게 부과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북한 제재 또는 설득에 동참시키고 미국과 우리가 지불해야 할 핵 동결 비용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전술핵이 최후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해야 한다. 상대는 총을 들고 있는데 우리는 총이 없다. 협상은 둘 다 총을 든 상태에서 평화와 체제 보존을 위해 서로 총을 내려놔야 한다는 결론으로 전개돼야 한다. 미국과 북한의 치킨게임을 멈출 수 있는 전술핵은 역설적으로 공포가 아닌 안정을 위해 이제 대한민국에게는 필요악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