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직적·기업형으로 변신하는 시세조종 세력에게 시가총액 작은 코스닥은 최적의 범죄 대상
조폭 세력, 유흥가에서 증권가로 진출
기업형 주가조작 세력의 증가는 시가총액 규모가 작고,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코스닥 상장사에 눈독을 들인 폭력조직이 늘어나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모습이다. 실제 검찰이 지난 2015년 발표한 전국 조직폭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영리형 범죄는 2001년 13건에서 2013년 307건으로 2261%의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즉 눈에 띄는 폭력 대신 주가조작 시도를 비롯해 기업사냥·탈세·횡령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조폭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고(故) 김태촌씨의 양아들로 범서방파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김아무개씨가 ‘경제사범’으로 검찰에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김씨는 기업 인수·합병 전문브로커 최아무개씨 등과 짜고 2012년 11월 위조지폐감별기 제조사 S사를 인수해 회삿돈 200여억원을 빼돌려 사채를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코스닥 상장사였던 S사는 2013년 상장 폐지됐다. 주식 담보 가격을 높여 코스닥 상장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조폭 일당 11명이 금감원에 대거 적발되기도 했다. 지방 유명 폭력조직인 이들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에너지 시설업체 E사를 무자본 M&A로 인수한 뒤 초단기 소량 매매 방식으로 주식을 팔다가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최윤곤 금감원 자본시장조사2국장은 “불공정거래 사건이 조직적·기업형으로 대형화하는 추세”라며 “허위 사실 유포 등 부정거래와 기업형 시세조종이 늘어나는 만큼 적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코스닥이 일반 전문투자자와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조폭의 표적까지 된 데는 시장 자체가 갖는 한계에서 비롯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주식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코데즈컴바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2만3200원이던 코데즈컴바인 주가는 이틀 만에 3만150원으로 상한가를 쳤고, 보름 만에 18만4100원까지 올랐다. 시가총액이 6조원대 중후반으로 불어났으며 코스닥 대장주인 카카오를 제치고 코스닥 2위에 올랐다. 주가조작이나 시세조종 세력 개입을 의심했지만, 결과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에 편입됐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주가가 급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코데즈컴바인이 4년 연속 적자기업으로 파산 신청 후 회생 절차에 들어가 10개월간 거래가 중단된 부실기업이었다는 점이다. 주식 대부분이 보호예수로 묶여 있어 실제 유통 주식은 전체의 0.6%에 불과했다. 단지 기술적 결함이나 실수로 영국 FTSE그룹이 코데즈컴바인을 스몰캡(소형주) 지수에 포함시키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미국 나스닥을 본떠 출범 20주년을 맞은 코스닥시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으로 남게 됐다. 시가총액이 낮고 유통물량이 적다 보니 일어난 일인데, 그 때문에 시세조종 세력의 먹잇감으로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활발해진 ‘공매도’가 주가조작을 더 수월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될 때 주식을 빌려서 미리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종목을 사서 되갚는 식으로 수익을 내는 투자기법이다. 수년 동안 국내 주식시장이 박스권 장세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상승장뿐만 아니라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올리겠다는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금액은 지난 2008년 3491억원에서 2015년 13조9461억원으로 3895% 늘었다. 이렇게 공매도 규모가 늘어나면서 시가총액 자체가 작은 코스닥시장은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공매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를 불공정거래에 악용하는 작전세력들이 문제”라며 “이런 작전세력이 주가를 조작하기에는 유가증권시장보다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코스닥시장이 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코스닥 구조조정 통해 상장사의 질 높여야
전문가들은 코스닥시장의 전면적인 체질개선만이 시세조종으로부터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즉, 양질의 기업이 상장되고 투자자가 몰려들어 시가총액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주가조작 시도 자체가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코스닥 상장사 수만 늘릴 것이 아니라 코스닥 구조조정을 통해 상장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격 미달 업체가 무더기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하면서 취약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IT(정보기술)버블 때인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602개 기업이 상장했는데 이 중 38%가 상장 폐지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개인투자자의 피해로 돌아갔다. 소액주주 188만 명이 24조7000억원의 피해를 봤다. 성균관대 SKK GSB 이재하 원장은 “자금의 규모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신규 기업이 상장하면 소외된 기업들은 더욱 소외되는 악순환이 초래되는 상황”이라며 “정리가 필요한 종목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아울러 기관투자가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황세운 실장은 “증권사의 중요한 고객인 기관투자가가 코스닥 투자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증권사가 비용을 들여 투자 의사결정을 위한 자료인 기업분석보고서를 만들 이유가 없다”며 “이런 상황에선 사설 정보 사이트에서 나온 불확실한 정보만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 코스닥시장은 투기장이나 시세조종 세력의 먹잇감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