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실장 이어 이병기 전 실장 개입 의혹…시사저널 지난해 5월 “이 전 실장, 보수단체에 ‘창구 단일화’ 요청” 단독보도
시사저널은 2016년 5월 ‘’ 기사를 통해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정원장 시절 보수단체장들과 회동을 갖고 돈을 지원해 주는 창구를 하나로 하라는 내용의 요청을 했다”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의 증언을 보도했다.
“돈 지원 창구 하나로 해야 쉽게 돈 넣는다 했다”
이병기 전 실장이 보수진영 유력 인사들과 회동한 시점은 국정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5년 2월12일이다. 이 전 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공식 내정된 것은 2월27일이다. 이 전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공식 내정되기 2주일 전에 보수단체 인사들과 자리를 가지면서 자금을 지원해 주는 창구를 하나로 하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함께 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보수단체 인사들도 이 전 실장과의 회동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구재태 재향경우회 회장은 “시국 관련해서 공적으로 모이자고 해서 간 것”이라고 밝혔으며,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도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끼리 점심 한 끼 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 회동에서 이 전 실장이 보수단체 대표들에게 창구를 단일화할 것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서 본부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병기 원장이 ‘우파 진영이 하나로 뭉쳤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 내가 반박을 했다”며 “‘해외에 오래 계시다 보니까 국내 사정에는 깜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우회, 고엽제전우회, 국민행동본부 등 단체별로 성격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로 뭉치냐’고 얘기했더니 이 양반(이 전 실장)이 하는 얘기가 ‘돈 지원해 주는 창구를 하나로 해야 쉽게 그 창구에다 (돈을) 넣는다는 거였다”고 밝혔다. 구재태 재향경우회 회장도 이 전 실장이 우파 진영의 단일화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구 회장은 “(이 전 실장이) 집회를 각 단체에서 나눠서 할 것이 아니라 (창구를 단일화해서) 한 단체에서 하는 것이 어떠냐고 얘기했다”며 “집회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집회의 성격을 잘 아는 단체가 하는 게 맞다고 (이 전 실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우리(경우회)가 주도할 때 다른 단체들이 참여하는 건 광고를 내니까 알아서 하는 건데 한 단체가 주도해서 똑같이 (집회를) 하는 건 안 맞는 것”이라 말했다. 중요한 점은 청와대 비서실장 부임을 곧 앞둔 국정원장이 보수단체 대표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직접 보수단체 지원 및 집회 개최와 관련한 요청을 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공개가 되는 국가보조금이 전부가 아니다. 창구 단일화라는 것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준 것처럼 다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돈을 하나의 단체를 통해 받겠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창구 단일화를 국정원장이 직접 요청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병기 실장 자유총연맹 집회도 지시” 증언도
시사저널은 2016년 4월20일 ‘’ 기사를 통해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관리하며 집회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소속 허현준 행정관이 집회 지시자로 지목됐는데, 행정관이 독단적으로 집회 지시를 했겠느냐는 의혹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허 행정관을 넘어 ‘윗선’을 주목하면서 청와대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고, 야당의 어버이연합 등 불법자금 지원 의혹 규명 진상조사 TF는 “(행정관의 직속상관인) 비서관과의 회의와 상의는 기본적인 업무 매뉴얼로 행정관의 독단적·자의적 행동이 불가능한 구조가 청와대”라고 지적했다.
허 행정관이 집회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진 시기는 2014~15년 이후로 김기춘 전 실장에 이어 이병기 전 실장이 청와대에 재직하던 때다. 뉴스타파는 1월27일 자유총연맹 고위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2015년 10월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이 허준영 자유총연맹 총재에게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집회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자유총연맹 핵심 임원 A씨는 “2015년 10월15일 허 총재가 전화와 문자로 이병기 실장의 요청을 받은 뒤, 전국 지부에 긴급 공문을 보내 사람들을 동원했다. 5일간 준비해 청와대가 요청한 내용대로 관제데모에 나섰다”고 증언했다. 자유총연맹 전 임원 B씨도 “이병기 실장이 허 총재에게 관제데모를 요청한 뒤,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도 연락을 해 왔다. 청와대의 지시를 잘 따라달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시사저널 보도 직후 보수단체 창구 단일화 요청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던 이 전 실장이 보수단체 자금지원과 집회 개최에 개입했다는 증언이 보수단체 인사들의 입을 통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검이 청와대가 직접적으로 보수단체의 집회와 자금지원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한 가운데, 이 전 실장의 보수단체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칼끝을 겨눌지 여부가 주목된다. 특검은 1월7일 블랙리스트 작성 개입 의혹과 관련한 조사 과정에서 이 전 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1월17일 참고인 조사를 한 바 있다.청와대, 보수단체 집회 관여 정황 속속 밝혀져
시사저널 ‘어버이연합 게이트’ 단독 보도에서 제기한 “청와대 보수집회 지시” 의혹 입증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보수단체에 자금을 대고 ‘관제데모’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특검은 해당 사건을 검찰에 이첩할 계획이다. 보수집회 개최 지시와 관련한 윗선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목되면서 시사저널이 지난해 4월 ‘어버이연합 게이트’ 단독 보도를 통해 제기한 “청와대가 보수집회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다.
당시 어버이연합 측은 “청와대 행정관이 집회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어버이연합 측이 집회 지시를 내린 인물로 지목한 청와대 행정관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허현준 행정관이었다. 허 행정관은 보도 이후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시사저널에 대한 출판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민사소송 등을 제기했지만,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은 5월11일, 민사소송은 10월26일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허 행정관은 어버이연합을 부추겨 ‘관제데모’를 하도록 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조사를 받았다. 1월26일 특검에 소환됐지만 불출석했고, 최근 참고인 신분으로 블랙리스트 운영 관여 여부와 ‘관제데모’ 요청 여부를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당시 허 행정관의 ‘윗선’에 대한 의혹도 가졌다. 행정관이 독단적으로 집회 지시를 했겠느냐는 의문의 시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허 행정관의 직속상관은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 최고 책임자는 전 문체부 장관인 조윤선 정무수석이었고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병기 전 실장이었다. 시사저널은 이병기 전 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장 공식 내정을 2주 앞두고 보수단체 지원 창구를 단일화할 것을 요청했다는 보수단체 관계자들의 증언을 보도함으로써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보수단체 지원에 관여한 데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맡고 있는 정관주 전 비서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고, 조윤선 전 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관제데모 지시의 윗선으로 지목돼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시사저널은 2016년 5월 ‘’ 기사를 통해 청와대가 예산 등 자금 지원을 빌미로 보수단체에 관제데모를 지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허 행정관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예산 지원을 자르거나 책정된 예산을 보류시키겠다는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시민단체에 지원되는 보조금 등 예산을 무기로 보수단체를 관리했다는 주장은 지난해 말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김 전 수석이 2014년 11월26일자에 남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에 따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보조금 지급 시 단체 성향에 따라 광고도 그와 같이”라며 시민단체에 지급되는 국가 보조금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줬다.
또 특검 수사를 통해 청와대 정무수석실 지시로 대기업이 지원한 돈이 보수단체 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실장이 자금지원을 독려한 것이 파악되면서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권을 남용해 보수단체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