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취임 연설에서 위기감을 느꼈다”
1월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며 미국인의 단결을 호소했다. 그는 16분 간 취임사를 통해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자”, “우리의 일자리와 제조업을 다시 되찾자”, “미국의 국경을 지키자”를 외쳤다.
취임식 다음날인 1월21일 미국 각지에선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이 전개됐다. ‘여성들의 행진’은 낙태․남녀 임금 격차․성추행부터 이민자 권리 문제․강력한 경찰권 발동 및 대규모 구속․환경 보호 문제 등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반(反) 트럼프 시위다.
이 거리 행진은 작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 직후 많은 여성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연대를 제안하면서 구체화됐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이는 백인 여성들이었지만 차차 아프리카계 미국인, 라틴아메리카인, 무슬림 여성들을 세 축으로 조직이 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로지 ‘미국’ ‘미국인’ 만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외침이 여성을 위시한 많은 미국인들을 거리로 이끈 셈이었다.
시위 참가자는 500개 이상의 도시에서 370만명 가량이 모인 것으로 보도됐다. 여성들 행진의 중심지격은 미국 수도이자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던 워싱턴DC였다. 반 트럼프를 외치는 수십만 인파가 몰렸다. 시위는 시카고와 뉴욕 맨해튼,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 미국의 주요 도시는 물론, 베를린과 로마, 암스테르담, 케이프타운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됐다.
1월21일(현지시간) 미국의 대도시 뉴욕 맨해튼에서도 ‘여성들의 행진’이 이뤄졌다. 뉴욕 가두행진에 참가한 위니프레드 암스트롱(Winifred Armstrong․87)씨는 시사저널로 이메일을 보내와 “저항의 표현에서 시작한 우리의 행진은 이내 일체감 속에 열기로 가득 찼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뉴욕 토박이’인 암스트롱씨는 파란 눈에 금발을 한 전형적인 ‘백인 여성’이다. 원로 여성․환경운동가로 케네디 정부 시절 아프리카 정책 자문역을 역임한 바 있다. 아직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던 지난해 9월 기자가 뉴욕에서 만났을 때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며 “미국인들의 합리성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3달이 지난 뒤 그는 보호대에 몸을 의지한채 노구를 이끌고 거리에 나섰다. 왜일까.
그는 당초 ‘여성들의 행진’에 참가할 계획이 없었다고 말했다. “원래 행진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 구십의 나이에 가까운 저는 시위에 적합하지도 않을뿐더러, 행동으로 나서는 것보다 뉴욕시의 환경 입법 문제를 다듬고 강화는 문제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암스트롱씨가 거리로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1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직후였다. 시종일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던 트럼프의 연설을 들으며 “위기감을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외침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또한 미국 내 많은 ‘우리’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행진에는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많았다. 암스트롱씨는 “행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오바마 행정부 시절 로고이기도 했던 ‘예스 위 캔’이란 구호가 암묵적으로 흐르고 있었다”며 “평화로운 행진 속에 미국 시민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반(反) 트럼프 집회’에는 유명인들의 참가도 잇따랐다. 팝스타 마돈나와 알리시아 키스, 할리우드 배우 엠마 왓슨과 스칼렛 요한슨 등이 참석했다. 특히 마돈나는 워싱턴D.C.의 연설 무대에 올라 “우리는 여성으로서 폭압의 새 시대를 거부하고, 저항한다”며 “반대세력은 진정한 연대 앞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외쳤다. 힐러리 클린턴은 반 트럼프 시위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트윗을 통해 “이는 우리의 가치에 대한 시위였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