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0년대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였다. 우리 일행은 체류기간 내내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동포들의 집에 돌아가면서 묵게 되었다. 산딸기 잼과 주식빵, 그리고 그곳 접대 요리인 샤슬리의 맛을 잊을 수 없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계란 프라이다. 모든 집에서 모든 끼니에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그때는 그저 ‘이곳에서는 계란 프라이가 김치 같은 것인가 보다’ 하고 어쭙잖은 추측을 할 뿐이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흔하디흔한 계란 프라이를 계속 먹는다는 게 내심 아쉽기도 했던 것 같다. 필자는 나중에야 그곳 계란이 손님이 올 때나 낼 수 있는 귀한 식재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고기가 지천이지만, 닭은 귀한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평생을 산 집주인들에게 계란은 자신이 대접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즘 부쩍 계란이 귀해지면서, 그 시절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같은 마음을 품어야 계란 몇 개쯤 요리에 깨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식품류 파동이 일 때마다 언론에서나 시끄럽지 체감 고통은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적은 식구에 집에서 요리할 일이 많지 않은 데다, ‘비싸면 안 먹고 말지’ 하는 다짐을 채 굳히기도 전에 사태는 수습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 시사저널 박정훈

많은 요리의 베이스가 되는 계란은 늘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 급하게 인터넷 장보기 페이지를 열었더니 서른 개를 앉힌 판계란은 아예 판매 목록에 없다. 어처구니없는 가격의 열 개 들이 계란도 한 번에 하나 이상은 구매하지 못한다. 오늘은 한창 먹을 나이인 딸아이가 아쉬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간식으로 한 번에 네 개씩 계란 프라이 부쳐 먹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한 개 해 먹는 것도 어려워요.” 먹고 싶으면 먹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는데도 아이는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생활물가 같은 것과는 직접 관련 없는 뉴스나 좀 넘겨다보는 아이들까지 체감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다. 아니나 다를까, 알아보니 이번 조류독감 살처분 규모 자체가 예전과는 달랐다.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의 살처분 두수도 1396만 마리였는데, 이번에는 그 두 배가 넘는 3054만 마리다. 전엔 조류독감(AI)이라 해도 피해 농가와 치킨집 등 유관업종의 시름에 한정되었던 데 비해, 이번에 유독 온 국민이 조류와 함께 독감을 앓을 만큼 계란 난리가 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필자가 느끼는 게 이럴진대,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의 삶은 어떻겠는가. 라면에 계란 하나 풀어 넣는 것도 두어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 겨울은 너무나 가혹하다. 예로부터 나라의 재앙은 나라님의 부덕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자연재해나 역병처럼 당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조차 그러했다. 하물며 온전히 천재지변이라고만 여길 수 없는 현대의 조류독감 파생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윗동네’의 어수선함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더 힘들다. 닭의 해 벽두부터 절정이었던 닭들의 수난이 이제 무사히 끝나 주면 좋겠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잦고 독해져 가고 있는 조류독감이 현명한 ‘나라님’을 새로 만나 이 땅에서 그만 활개 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