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정진석·김무성·유승민, 반기문 영입 등에 나서
# 장면 1.
2016년 12월28일, 새누리당 정진석 의원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2월14일까지 원내대표를 지낸 그가 방미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2016년 12월31일로 임기가 끝났다)과의 면담에 쏠렸다. 정 의원이 진작부터 ‘반기문 메신저’를 자처해 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인연이 깊다. 한국일보 기자였던 정 의원은 30년 전 반 전 총장이 외무부 장관 비서실장 시절에 그를 처음 만났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을 때는 반 전 총장이 워싱턴 주재 정무공사로 있었다.
정 의원은 “반기문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뭔지 아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일자리 문제, 양극화, 고령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나름의 해법도 갖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번쯤은 시험대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반기문 대망론’의 주춧돌이 되겠다는 것이다.
#장면 2.
2016년 12월16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는 정우택 의원이 당선됐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새누리당은 친박계 원내대표를 선택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 사태(최순실 국정 농단)가 온 데 대해 스스로 용서를 구하고 국민께 우리 당이 분열되지 않고 화합과 혁신으로 가는 것을 보여준다면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당이 분당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정 원내대표가 새누리당을 구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바통 터치한 정진석-정우택,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성씨가 같고 4선 의원이다. 정진석 의원은 충남(부여·공주·청양), 정우택 의원은 충북(청주 상당)에 지역구가 있는 등 충청과 연고가 깊다. 이것 말고 또 있다. 부친이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진석 의원의 부친은 고(故) 정석모 전 의원이다. 정 전 의원은 강원도지사, 충남도지사, 내무부 장관 등을 지내고 정계에 입문해 10대부터 15대까지 충남 공주에서 내리 6선을 했다. 2009년 세상을 떠났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던 정 의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6~17대는 충남 공주에서, 18대는 비례대표를 지낸 뒤 20대에 다시 공주에서 당선해 4선 의원이 됐다. 부자가 총 10선을 기록했다.
정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부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0년 처음 금배지를 달고 아버님을 찾아뵙고 큰절을 했는데 그때 딱 한 말씀 하신 게 ‘정치인은 말이 생명이다. 말이 화근이니 말조심해라’였다. 아버님은 ‘입안에서 오물거리는 것을 70%만 내뱉어도 뜻이 전달된다’며 말의 절제를 강조하셨다. 나도 아버님의 당부를 다 지키진 못했지만 요즘 정치를 보면 서로 철천지원수들한테 저주를 퍼붓는 듯한 언사를 너무 많이 한다. 그건 지양해야 한다.”
정우택 원내대표의 부친은 5선 의원을 지낸 고 정운갑 전 의원이다. 1955년 4월 내무부 차관을 거쳐 그해 11월 농림부 장관에 임명됐다.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에 자유당 소속으로 충청북도 진천에서 출마해 당선했다. 이어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서울에서 7대, 8대, 9대, 10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됐다. 1979년 신민당 파동 때 법원으로부터 총재직무대행에 임명됐다. 부자가 고시에 합격하고 장관(정 원내대표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을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진석-정우택, 두 ‘2세 정치인’은 지금 격변하는 정국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정진석 의원은 반기문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새판 짜기, 나아가 정권 창출의 최선봉에 서 있다. 반면 정우택 의원은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을 살려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지금은 같은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 멀지 않은 시기에 서로 다른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정진석-정우택, 서로 다른 길 갈 가능성 커
두 사람 말고도 현 정국에서 주목되는 2세 정치인들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분당해 나온 ‘개혁보수신당’의 두 축인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의 부친은 고 김용주 전 의원이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전남방직을 창업한 김 전 의원은 사업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960년 집권당이었던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의원직을 잃고 이후 사업에 전념하면서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아버지와 아들(김 의원은 2010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이 집권 여당 원내총무를 지낸 경우는 처음이다. 부친 김용주는 김 의원에게 “정치는 우리 집안사람의 성격과 맞지 않으니 절대 하지 말라”는 유지(遺志)를 남겼다. 그러나 김 의원은 결국 정치에 입문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 민주당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부친을 따라 선거 유세를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의원의 장인도 국회의원을 지냈다. 5~7대, 10대,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치환씨다. 경남 남해 출신인 그는 서울시 경찰국장, 이승만 정부 공보실장, 경향신문사 사장, 대한축구협회장 등을 지냈다.
유 의원의 부친은 재선 의원을 지낸 고 유수호 전 의원이다. 판사 출신인 유 전 의원은 1971년에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그해 반정부시위를 주도했던 당시 부산대 총학생회장 김정길을 석방시켰다. 이로 인해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 출마해 대구 중구에서 당선됐고 14대 총선에서 재선했다.
유승민 의원은 “정치를 한다고 하니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반대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대구 중구 대봉동 셋방에서 태어난 유 의원은 “집안이 넉넉하게 된 건 제가 대학 들어갈 때부터 그랬지 어릴 때는 보통 중산층보다 더 가난한 그런 생활을 했다. 아버지가 시골 출신이라서 사촌들, 외사촌들이 집에 와 북적거리면서 조그만 집에 같이 살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보수정당을 만들겠다며 새누리당을 나온 김무성·유승민 두 2세 정치인의 도전은 보수정당사에 드문 결단으로 평가된다. 물론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보수 정치 세력의 새 길을 열어가는 데 성공한다면 한국 정치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들 외에도 정계에서 활약 중인 2세 정치인들이 많다. 6선을 기록한 고 이중재 의원의 아들인 이종구 의원은 3선을 기록 중이다. 개혁보수신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김진재 전 5선 의원의 아들인 김세연 개혁보수신당 의원도 3선 의원이다. 18대에 이어 재선 고지에 오른 장제원 의원의 부친은 12대 때 국회부의장을 지낸 고 장성만 전 의원이다. 재선을 기록한 홍우준 전 의원의 아들이 친박계 홍문종 4선 의원이다.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3선 의원, 6선 의원을 지낸 김상현 전 의원의 아들인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