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핵심은 ‘국가권력 사유화와 사적 유용’
주말마다 광화문은 촛불로 뒤덮이고 있다. 추워지는 날씨에 움츠러들며 자괴감과 허탈감에 압도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시민들이 모였다. 주말마다 모이는 사람 수가 계속 늘어 신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추위와 배신감에도 모일까? 공화국(共和國) 시민(市民)들의 바람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원했을까?
무엇보다 믿음이었다. 신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를 잃었다. 이번 사태 처음부터 그랬다. 첫 번째 사과 담화를 보자.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며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받은 적이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말했다. 대통령 말로는 임기 초에 일시적으로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검찰이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2013년 1월 정부 출범부터 올해 4월까지 180건의 문건을 이메일, 인편, 팩스 등을 통해 최순실씨에게 유출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에도 대통령의 중동 국가 순방과 정상회담 일정 그리고 체육특기자 입시비리 근절 방안 등을 최씨가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었다. 2014년 8월에는 박 대통령의 미국·캐나다 등 북미 순방 상세일정, 9월에는 이탈리아 순방 일정표가 그녀에게 보내졌다. 심지어 올해 2월에는 K스포츠재단의 더블루케이 스포츠클럽 지원 사업 전면개편 보고안과 대통령의 멕시코 순방일정도 전해졌다고 한다.
모든 위기는 신뢰 위기로 시작
둘 중 하나다. 대통령의 거짓말 아니면 청와대의 대통령 보좌체계가 확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어떤 경우든 심각한 문제다. 만약 대통령의 거짓말이 아니라면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3년 넘게 그런 상태였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동안 청와대 공적(公的) 보좌의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고 하긴 어렵다. 따라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담화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다. 대통령은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에 결국 불응했다.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자신을 예외로 한 것이다. 곧 예정된 특검수사도 국민적 요구에 부합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되고 말았다.
나아가 ‘정치적 약속’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상황변화에 따라 정치적 입장과 선택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하더라도 “국회 추천 총리” 약속의 철회 시사도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약하게 하고 말았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11월21일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후보를 임명하겠다는 입장은 아직 유효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상황이 좀 변화했다. 좀 지켜보자”며 “국회 추천 총리안”을 철회할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탄핵 국면’의 정치에서 대통령이 나름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원심력의 여당과 눈앞의 대권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들어선 야권을 보니 정치적 역할도 가능해 보여 지금보단 최소한 나아질 것이라고 대통령이 믿을 만하긴 하다.
그렇지만 지금 대통령은 정치할 생각을 접어야 한다. 그 전에 정치를 해야 할 때는 안 하고 하지 않아야 할 때 그러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왜냐하면 이번 일은 ‘개인비리와 일탈’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선의(善意)를 몇몇 사람들이 개인적 이익과 권력을 위해 왜곡한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사유화(私有化)와 사적 유용(流用)’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권력이 ‘공공의 일을 처리’하는 체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익과 공공성’이다. 일부 개인과 집단의 사익과 집단적 이익을 우선하라는 게 아니었다.
대통령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 잘못 인식했기 때문에 결국 ‘거짓해명’ 논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국민적 믿음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위기의 시작은 신뢰 위기로부터 시작한다. 협상도 타협도 담판도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안타깝지만 신뢰 위기는 정당성 위기로 진화하는데 이것이 지금 대통령 위기의 핵심이다.
믿음과 함께 시민들이 원했던 것은 공감(共感)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과 공감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적극 나선 것으로 보이는 모금 과정을 보자. 대통령의 압력에 돈 내고 돈 냈다고 수사받고 국민적 공분(公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만 기업도 말 못하는 괴로움이 많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자신들의 민원을 어느 정도 해결한 듯 보이기도 한다. 향후 수사와 국정조사에서 밝혀야 할 대목이다. 이는 대통령과 기업 간 일종의 거래로 각자 원하는 것을 상대로부터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공익사업을 위해 기업의 선의(善意)를 얘기하지만 ‘자발적 참여’라기보다는 사실상 ‘강제모금’이었다. 그런데도 오직 한 사람 대통령만 “국민의 삶에 도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청와대만 그렇게 믿었고 누구도 그것을 공익과 국민이익 그리고 선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 공감 실패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 실패
대통령의 국민 공감 상실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3년 동안의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을 보면 일관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인식과 대다수 국민 간의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간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대됐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과의 공감 실패(失敗)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 실패의 다른 이름이다. 악순환이다. 신뢰 상실, 공감 실패 그리고 정당성 위기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 담화문에도 나와 있다. 대통령은 “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저와 함께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믿고 국정을 맡겼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출발점이다. 그래야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 국민적 공감도 가능하고 권력의 정당성도 인정받을 수 있다. 가능할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