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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남북 대치국면 속 눈길 끄는 AN-2기 신경전

남북관계가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로 촉발된 도발 드라이브에 우리 정부도 강경모드로 대응하면서 긴장이 임계치에 도달한 형국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연일 ‘핵 선제공격’을 언급하고, 관영매체를 통해 서울 불바다와 워싱턴 핵 타격을 위협하고 있다. 10월1일 국군의 날 축사를 통해 북한주민의 탈북을 언급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10월13일 민주평통 행사에서 “북한 정권이 공포정치로 주민들의 삶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다”고 공언했다.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상대를 겨냥해 이례적으로 거친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상당기간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핵과 미사일을 동원한 위협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의 국지 도발이나 기습침투 감행 가능성에도 군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원산 지역에 최근 등장한 낡은 복엽기(複葉機) 한 대가 한·미 정보 당국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북한이 대남 기습침투용으로 보유하고 있는 AN-2 기종이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지난 9월말 원산 비행장에서 북한이 개최한 에어쇼에 참가했던 한 외국 인사를 통해 고화질의 사진 여러 장을 입수했다”며 “이를 분석한 결과 북한 항공 수준이나 일부 군용 항공장비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중 하나가 AN-2기의 성능개량 부분이다. 군 정보 당국의 분석 결과, 원산 에어쇼에서 선보인 AN-2에는 위성항법용 통신장치와 지형추적레이더 TFR(Terrain Following Radar)로 추정되는 장치가 식별됐다. 이전에는 없던 것이란 점에서 AN-2 운용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보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북한은 2015년 7월29일 정전협정 체결 62주년을 맞아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북한이 보유한 AN-2 ©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은 2015년 7월29일 정전협정 체결 62주년을 맞아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북한이 보유한 AN-2 © 조선중앙통신 연합 

北, AN-2 주축 공중기동기 330여 대 보유

 실제 에어쇼에 등장한 2대의 AN-2 외관을 보면 조종석 윗부분과 동체 아랫부분에서 특이한 장치가 드러난다. 조종석 윗부분에 장착된 것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또는 글로나스 등 위성항법을 위한 위치 수신용으로 보인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기체 하부에 달린 건 지형추적레이더인 TFR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지상 쪽으로 레이더 전파를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전자파를 이용해 작전 지역 지형을 파악하는 운항 보조 장치다. 이런 장치를 이용하면 야간운항 등에 취약한 AN-2는 또 하나의 날개를 다는 셈이 된다. 야음(夜陰)을 틈타 침투하거나 비나 안개가 낀 악천후 속에도 침투가 가능하고, 보다 낮은 고도에서 운항이 가능해 레이더 탐지율이 훨씬 낮아진다는 것이다. 우리 군이 AN-2 탐지를 위해 보유한 저고도용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북한군의 AN-2기는 조종사의 육안을 이용한 비행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AN-2를 주축으로 한 공중기동기를 모두 330여 대 보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사시 북한군 특수부대인 ‘폭풍군단’(대남침투용 11군단의 별칭)의 게릴라 요원들이 이를 이용해 후방 지역 등에 침투할 경우 우리 군이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해상침투용 공기부양정과 함께 한·미 당국이 저지능력 확보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온 대표적인 특수전 장비란 지적이다.
 

구(舊)소련 안토노프사에서 개발한 AN-2는 단발엔진을 갖춘 복엽 수송기다. 시속 160km 정도의 저속 비행으로 저공 운항할 수 있는 데다 날개를 포함한 기체가 목재와 레이더파를 흡수할 수 있는 특수천으로 구성돼 탐지가 어려운 게 특징이다. AN-2기는 이착륙에 필요한 활주로 길이가 200~300m면 되기 때문에 골프장 페어웨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우리 군 당국이 수도권 일대의 골프장에서 주기적으로 방어훈련을 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골프장 한가운데 유사시 쇠밧줄을 걸거나 이동식 바리케이트를 칠 수 있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13일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과의 통일대화에서 “북한 정권이 공포정치로 주민들의 삶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 청와대 제공

우리 군도 AN-2기 20여 대 보유

 김정은은 AN-2기에 각별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2월에는 11군단의 낙하침투 훈련과 공군 비행훈련을 참관했는데 여기에 AN-2기가 동원됐다. 당시 여러 대의 AN-2기가 줄지어 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앉는 모습을 북한이 TV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김정은은 훈련을 참관한 뒤 “전투력을 총 폭발시켜 놈들이 정신 차릴 새 없이 호되게 답새기고(몰아세우고) 침략의 아성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야 한다”고 격려했다. 김정은은 2014년 1월에는 AN-2기 10여 대를 동원해 인천공항 타격과 점거를 가상한 훈련을 실시하는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 이번 에어쇼에 AN-2를 선보인 것도 김정은의 이런 취향이나 관심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다. 흥미로운 건 북한 AN-2기 대응책을 고심해 온 우리 군 당국이 비공개리에 같은 기종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실제 운용훈련까지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군 보유 AN-2기는 모두 20여 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 1970~80년대 폴란드 등 동유럽권 국가에서 도입했다고 한다. 군은 중부지역 공군 OO기지에 L-2로 이름 붙여진 AN-2기를 배치해 북한군의 공중 침투에 대응하는 전략·전술 개발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착륙 시 노출을 피하기 위해 활주로 옆에 위장막을 치는 등의 보안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9년 9월에는 훈련 중이던 AN-2기 한 대가 충북 영동의 한 포도밭에 추락해 불에 타는 사고도 발생했다. 공군은 사고 당시 ‘훈련용 경비행기 추락’으로만 발표했으며, 불탄 사고기 잔해를 위장막을 씌워 보안 조치했다. 과거 북파공작원 훈련에 관여해 온 한 정보 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동해안 전방 양양공항 등을 무대로 AN-2를 이용한 대북 침투 훈련은 계속 이뤄졌다”고 말했다. AN-2 보유와 운용은 유사시 적진에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이거나 작전에 혼선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북한군이 우리가 보유한 500MD 헬기와 같은 기종을 비밀리에 반입해 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AN-2를 둘러싼 남북한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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