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재취업 위해 10년 근무경력 요구…심사배점기준 조정하고, 감사원 주의마저 무시
지난 5월17일 오후 7시40분쯤 전남 무안국제공항의 활주로로 이어지는 유도로의 항공등화(燈火) 절반가량이 한꺼번에 꺼져버렸다. 이 때문에 승객 172명을 태우고 주기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객기는 관제탑 지시에 따라 급히 남쪽 유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야간에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 국내 공항에 설치된 항공등화가 고장을 일으킨 사고는 올해 상반기에만 3차례 발생했다.
한국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는 유도로 등을 모두 A업체로부터 10년 이상 수의계약으로 독점 납품을 받고 있다. 문제가 발생한 김해공항을 비롯해 무안·김포공항에서 갑자기 꺼져버린 항공등화 역시 이 업체 제품이었다. 이 업체는 2014년 공항공사를 퇴직한 고위직 간부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논란에 휩싸였던 곳이다. 공항공사 측은 국내 항공등화 업체 가운데 KS 인증을 받은 곳이 해당 업체밖에 없어서 독점 납품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술한 공항 보안, 이유 봤더니
공항은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국가 1급 보안시설에 해당한다. 항공 부문은 사고가 한 번 터지면 곧바로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를 관리하는 공항공사는 퇴직자들이 민간 업체로 흘러들어가고, 그 업체에 일거리를 몰아주는 관피아 폐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공항공사의 퇴직자 챙기기 형태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근무경력 10년을 요구해 재취업을 유도하고, 퇴직자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형식이었다. 경쟁 업체에서 입찰이 불가능하도록 심사기준을 비정상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가히 ‘항공마피아(항피아)’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현재까지 국내 공항의 보안검색 용역업무는 극소수 특정업체들이 독식해 오고 있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보안검색 용역업체 낙찰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8년 이후 공항공사가 관리하는 공항의 보안검색 용역 업무는 5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한 차례 낙찰을 받을 때마다 150억원 이상의 매출을 보장받았다.
이 업체들은 공항공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포공항과 제주공항·김해공항의 보안검색 및 특수경비 위탁관리용역 업체 현장 대리인 전원은 공항공사 출신으로 채워졌다. 한 업체는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지낸 전직 국회의원이 회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테러위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공항의 안전 및 보안마저 특정 업체끼리 나눠먹는 셈이다.
그렇다면 관련법에 따라 경쟁 입찰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소수 업체가 ‘나눠먹기’ 식으로 장악할 수 있었을까. 해답은 입찰 과정에서 공항공사가 내세운 심사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경쟁 업체의 낙찰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배점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구체적인 입찰심사기준을 살펴보면 공항공사는 ‘동등 이상 용역’을 행한 업체의 경우에는 A등급일 때 35점 만점을 획득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유사용역’을 행한 업체의 경우 A등급을 받더라도 최고 10.5점밖에 받을 수 없도록 용역계약 심사기준을 정했다. 이 때문에 유사용역 업체의 경우 모든 항목에서 최고점을 받아도 최종 점수는 80.25점을 받게 된다. 공항공사의 규정에 따라 계약을 낙찰받기 위해 필요한 최저 점수가 85점임을 감안하면 신규 업체는 사실상 낙찰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공항공사 측은 "유사용역 실적 인정 비율은 동등 이상 용역의 30% 수준으로, 이는 조달청 적격심사 기준을 준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달청에서 5억원 이상 시설분야 용역을 입찰할 때 동등이상 업체와 유사용역 업체의 최고점 차이가 7점밖에 나지 않는다. 공항공사의 해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퇴직자 업체와 수상한 연장 계약
퇴직자가 설립한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공항공사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사저널은 과거 일방경쟁입찰 대상인 위탁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돌리면서까지 일감을 몰아주는 문제를 제기했다.(시사저널 2014년 6월17일자 1287호 ‘[단독]공항공사, 퇴직자 회사에 과다용역비 지급했다’ 기사 참조)
공항공사의 이 같은 태도는 원죄에서 비롯됐다. 공항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과 2010년 경영 효율화 계획에 따라 두 차례에 걸쳐 소방 및 정비 분야의 인력을 감축했다. 대신 퇴직자가 해당 업무와 관련된 4개 회사를 설립하도록 지원했다. 이후 공항공사는 이들 회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일감을 몰아줬다.
이들에게 지급하는 비용도 다른 업체보다 훨씬 많았다. 공항공사가 과다 지급한 액수는 63억원에 달한다. 공항공사는 아웃소싱 설계 기준보다 1인당 최소 15만4100원에서 최대 100만2000원까지 더해진 금액으로 월 기본급을 산정했다. ‘명예퇴직에 대한 보상’이 명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공사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에 따라 매년 용역기관에 의뢰해 공항 시설 위탁관리 설계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기준으로 위탁 용역 예정 가격을 작성하고 있다. 해당 법령에 따르면 위탁 용역 원가를 정할 때는 특별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가산하지 않고 이 기준에 따라 책정해야 한다.
앞서 2011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주의 요구를 받았다. 당시 공항공사 측은 “계약 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없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시정하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공항공사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항공사는 감사원의 주의요구를 무시하고 2013년 1월과 2014년 1월 퇴직자 업체 4곳과 모두 2년 연장계약을 체결하는 등 특혜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수준 평가 우수업체에 대해 2년 이내로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연장계약금액은 A사 114억4000만원, B사 23억5000만원, C사 83억8500만원, D사 76억5200만원 등 총 298억2500만원이다. 공항공사 측은 “2014년 11월 계약업무지침 개정을 통해 퇴직자가 임원으로 재직중인 법인 등과 2년간 수의계약을 금지하고, 퇴직자 영입현황을 의무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 출신 채용하도록 강요하기도
1500억원가량의 용역 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공항공사는 노골적으로 자사 출신 채용을 유도하기도 했다. 일부 용역업체 입찰 과정에서 총괄책임자의 자격 요건으로 ‘공항근무경력 10년 이상’을 명시한 것이다. 사실상 공항공사 출신 퇴직자를 총괄책임자로 고용하도록 요구한 셈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 8월17일 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공항공사 서울지역본부는 2015년 12월 김포공항 운영(청소·카트수거 등) 분야 위탁관리 용역입찰 긴급 공고를 내면서 “현장대리인(소장)은 과업지시서상의 자격을 갖춘 자로, 공항공사 쪽과 사전 협의 후 임명”하도록 요구했다. 이 공고문과 함께 공시한 특수과업지시서에는 현장 대리인의 자격 요건으로 ‘공항근무경력 10년 이상’을 명시했다.
실제로 이 공고에 따라 선정된 청소 용역업체의 현장대리인은 공항공사 퇴직자(4급)인 이아무개씨가 맡았다. 직전 계약업체 현장대리인도 공항공사 직원(2급) 출신이었다. 정동영 의원실 관계자는 “공항근무 10년 이상 경력은 공항공사 출신이 아니면 갖출 수 없는 자격인 데다, 현장 총괄책임자를 사전 협의해 임명하라고 한 것은 사실상 출신 직원의 채용을 암묵적으로 요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항공사 측은 "해당 업무 담당자의 과실이었다"며 "'관련 분야 10년 이상의 근무 경험이 있는 자'로 기준을 바꿨다"고 밝혔다.
이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었다. 공항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14개 공항의 업무를 위탁받은 43개 용역업체 현장대리인 81명 가운데 30명(37%)은 공항공사 퇴직자로 확인됐다. 총계약액 100억원 이상인 굵직한 협력업체 12곳의 현장대리인이 모두 공항공사 출신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46개 용역업체 가운데 1개 업체만 공사 출신 관리자를 채용하고 있다.
정동영 의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정서로 인해 관피아·철피아에 이어서 항피아까지 등장했다”고 우려하면서 “마피아에 버금가는 비리 구조를 개혁해야 한국 사회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