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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재단 《기회불평등 2016》보고서를 통해 본 기울어진 운동장-①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진다.” 

 

최근 제기된 ‘금수저’, ‘흑수저’ 논란은 한국 사회가 계층이동이 어려운 ‘닫힌 사회’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한국이 얼마나 ‘닫힌 사회’로 가는지를 통계적으로 검증한 보고서가 나왔다. 비영리 공익법인 동그라미 재단이 발간한 《기회불평등 2016: 생애주기별 경험과 인식 조사》다. 보고서는 청소년층, 청년층, 중장년층, 노년층이 직면한 ‘기회의 불평등’을 분석했다. 시사저널은 3회에 걸쳐 보고서를 통해 한국사회 기회 불평등의 실태를 연재한다.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었다. 국제사회에 보탬이 되는 ‘큰일’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경북 한 소도시에 사는 조형수(가명․29)씨는 가난이 꿈조차 가로막았다고 말한다. 

 

그가 꿈을 실현하는 데 장애물을 만난 건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해 공부를 하던 때다. "해외무급인턴을 지원하려 했는데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집에 목돈이 없어서 무급인턴 생활 동안 버틸만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해외로 갈 수 있는 길을 알아봤지만,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를 홀로 해결해야 했기에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는 꿈을 잠시 단념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며 국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가난이 어떤 도전의 기회조차 단념하게 만든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조씨다. 

 

조씨의 말처럼 정말 가난하면 꿈꾸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된 걸까. 이를 증명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동그라미재단이 펴낸 《기회불평등 2016: 생애주기별 경험과 인식 조사》는 표본 3520명을 조사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이 도전의 기회를 가로막는 것을 입증했다. 연구자가 선정한 기준에 따라 전 국민의 지역, 성(性), 연령, 직업과 소득을 통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조사한 결과 기회의 불평등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단 세대별로는 다른 형태지만 말이다. 

 


표본 3520명 중 우리사회가 공평하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62.6%에 달했다. 공평하다고 말한 사람은 10%에 못 미쳤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배경이 개인의 노력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었다. 2015년 설문대상자의 65.7%가 ‘사회․경제적 배경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는데, 이렇게 답한 응답자는 1년 만에 8.1%p 증가했다. 

 

연구에 참여한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고서의 서문에서 기회의 불평등을 ‘희망격차’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희망격차란 꿈의 격차를 말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계층에 따라 다르다는 얘기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배경(상층과 하층), 출신 지역(수도권과 기타 지역 간)과 성(남성과 여성)에 따라서 다른 꿈을 꾼다. 대학 진학, 가족 형성, 사회이동, 노후 소득, 사회적 성취, 계층이동 등 다양한 차원의 ‘희망’이 달라진다. 

 


신 교수는 “이미 고등학생 시기부터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격차가 나타나, ‘희망격차’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면서 “이러한 격차는 결혼과 미래 자녀 세대의 사회이동 가능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나, 기회 불평등의 연쇄 고리가 각기 다른 4개의 연령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희망격차는 현실의 불평등에서 온다. 신 교수는 “계층 불평등의 공고화가 우려된다. 희망격차는 현실의 불평등에서 유래한다”면서 “진학, 취업, 소득, 주택, 가족 형성, 자녀 교육, 노후 준비 등에서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긴 인식이다”고 분석했다. 

 

성취와 노력 대신 ‘배경’이 삶을 결정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신 교수는 이렇게 적었다. “기회 불평등의 문제는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서 결과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공정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가족 배경, 출신 지역과 성은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 요소들이다. 성취를 위한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이들 요소들에 의해서 개인의 삶이 결정되는 경향이 한국 사회에서 더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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