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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채용 공고 적발 건수 급증…‘미혼 우대’∙신체조건 관련 사항 게재도 위법

8월24일 생과일주스전문점 ‘쥬씨(JUICY)’ 서강대점 매장에서 낸 여성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가 논란이 됐다. 카운터에서 일할 여성을 모집하며 ‘외모에 자신 있는 분만 지원하라’, ‘다른 일 안 하시고 계산만 하시면 된다’며 알바 구인 사이트에 광고 내용을 게재해서다. 서강대점은 ‘모델나라’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공고를 올렸다. ‘여자 모델분 구한다. 계산만 해주시면 된다’며 ‘모델이 아니더라도 외모에 자신 있으신 분은 연락주세요’라는 내용의 광고가 서강대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졌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조’는 8월25일 쥬씨 서강대점 매장 앞에서 피케팅 시위를 열고 본사 차원의 공개 사과와 노동인권교육 실시를 요구했다. 쥬씨의 채용 공고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알바노조 관계자는 “점주와 본사 모두 사과했다. 본사 차원에서 공개적인 사과를 준비한다고 했다”며 “쥬씨 본사 차원의 대응을 지켜보고 이후 알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본사와 협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알바노조는 8월25일 쥬씨 서강대점 앞에서 피케팅 시위를 열고 성차별 채용에 대한 공개 사과와 노동인권교육 실시를 요구했다. (출처-알바노조 페이스북)


외모 조건으로 한 채용 최대 500만원 벌금형

이 법률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특히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 키, 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이나 미혼 조건, 그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할 수 없다. 채용에 외모조건을 내걸면 법률을 위반하게 되며 최대 5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법률을 뛰어넘는 광고를 흔히 보게 된다. ‘용모 단정한 여성분 구함’, ‘키 165cm이상 여성 구함’, ‘판매원 구함(여성은 미혼자에 한함)’과 같은 알바 채용 조건이 종종 보인다. 웨딩홀 채용 공고의 경우에는 교정기를 끼고 있으면 안 된다거나, 아예 ‘예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놓는 경우도 있다.

 

알바뿐만 아니다. 기업의 정규직 채용 과정에서도 성차별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인권위원회가 ‘국내 항공사들이 승무원 채용에 신장 조건을 내걸어 지원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차별적 행위’라며 시정권고를 한 이후 국내 항공사들은 신장 제한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관행적으로 키 작은 승무원은 뽑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작년 말에는 한 스타트업 기업이 마케팅 기획 운영 인턴을 채용하면서 ‘C컵 이상 미모의 운영 팀원’이라는 요건을 내걸어 물의를 빚은 사례도 있었다. 

 

올해 7월 청년위원회와 청년희망재단이 만 19~29세 청년 106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일반 기업 채용 면접 과정에서도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냐’, ‘애인과 연애 기간이 얼마나 되냐’ 등 업무와 무관한 질문을 던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임의로 정한 불합리한 기준으로 외모, 결혼 여부 등을 묻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관행도 문제지만 자신들이 내건 채용 공고가 위법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일반 기업 채용 면접 과정에서도 업무와 무관한 질문을 던지는 사례가 많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어떤 채용 공고가 성차별로 처벌 받게 될까. 보통 구직자들이 많이 겪는 성차별은 채용에 ‘다른 조건’을 부여하는 경우다. 여성들에게 이런 조건을 내걸 때다. 미혼일 것을 전제로 한다던가, ‘여성은 자택 통근자 우선’, ‘용모 단정한 여성에 한함’ 등 업무에 필요하지 않은 조건을 채용 공고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면접 중 ‘결혼 후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등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한쪽의 성(性)만을 채용 대상으로 하면 차별이 된다. ‘남성 환영’, ‘병역필한 자에 한함’으로 표시해 남성만 채용하거나, ‘여성 비서’, ‘웨이트리스’라는 명칭으로 여성만 모집하는 경우다. 직종별로 남녀를 분리 모집하거나, '대졸 남성 200명, 대졸 여성 20명’처럼 모집 인원을 다르게 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같은 자격을 갖고 있지만 다른 성이라는 이유로 낮은 직급으로 채용하거나 키와 몸무게 등 신체 기준을 채용 조건으로 내거는 것도 위법이다. 다만 남성복 모델이나 소프라노 가수처럼 신체적 특성이 핵심 요소가 되는 경우, 목욕탕 근무자나 기숙사 사감 등 성별을 배려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예외다. 또 여성취업을 금지한 직종(굴삭, 채굴, 발파 등)에 남성을 채용하는 경우는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연2회 모니터링…사법처리는 올해 1건에 그쳐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온라인 채용 사이트나 일간지 광고, 언론보도 등을 통해 기업의 모집∙채용 과정에서 성차별 등이 있었는지를 연 2회에 걸쳐 모니터링 하고 있다. 그리고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기업에 시정권고를 내린다. 시정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동일한 위반 건이 3년 이내에 다시 발생할 경우 사법처리를 하게 된다. 2013년에는 ‘무조건 외모로 뽑는다’는 조건을 제시한 커피전문점 점주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한 제조업체 사업주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일부 대기업에서 면접 때 결혼·출산 계획 등을 묻고, 프랜차이즈 기업이 근로자를 채용할 때 성별·외모만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자 고용노동부는 작년 11월 대기업과 주요 프랜차이즈 기업 2268개를 대상으로 ‘모집∙채용과정에서 발생가능한 성희롱∙성차별 행위에 대한 예방 권고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권고문이 무색하게 올해 성차별 채용 공고 적발 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해 적발돼 시정권고를 받은 경우는 454건. 올해에는 상반기(1월~6월)에만 425건이 적발됐다. 그러나 사법처리가 된 경우는 2015년 0건, 2016년 1건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감독관 90% 이상이 노조 파업, 임금체납 등 수십만 건의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자주 하는 것이 어렵다. 방학 기간(7~8월) 모니터링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상반기∙하반기로 나눠 (성차별 채용) 예방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인광고를 하는 기업 수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원천적으로 차별의 여지가 있는 구인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기업의 채용 공고를 게재하는 직업정보제공업체 1200개에게 각 기업의 성차별 공고가 처벌대상이라는 점을 알려줄 것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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