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마일의 커터가 높은 코스로 밋밋하게 들어오자 이치로는 특유의 오픈 스탠스 자세에서 그대로 끌어당기며 스윙했다. 잘 맞은 타구는 오른쪽 펜스를 향해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갔다. 우익수가 뒤로 물러나며 타구를 잡기 위해 점프했지만 공은 글러브 위를 살짝 지나 펜스를 직격했다. 튀어나온 공을 잡는 새, 이치로는 3루를 향해 내달았다.
이치로가 3루에 서자 마이애미의 동료들이 벤치에서 박수를 치며 쏟아져 나왔다. 경기는 잠깐 중단됐다. 네 번째 타석에서 나온 이 3루타는 이치로가 27세 되던 해 메이저리그로 넘어온 뒤 때린 3000번째 안타다. 1875년 내셔널리그의 탄생을 메이저리그의 시초라고 친다면, 메이저리그의 역사는 140년 정도가 된다. 이토록 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3000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그동안 29명에 불과했다. 3000안타는 매년 200안타를 15년간 때려야 만들 수 있는 기록이다. 15년간 메이저리거로 살아남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평균 200안타를 꾸준히 때려내는 건 더 놀라운 일이다. 달성한 선수가 극히 적은 기록이다. 그래서 3000안타를 치면 '명예의 전당' 예약티켓을 끊은 것과 다름없다. 이치로는 3000안타의 30번째 선수가 됐고 경기를 중단할 정도로 이는 대단한 일이었다.
42살의 이치로는 동료들의 축하를 받은 뒤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을 향해 헬멧을 벗고 인사했다. 짧은 숏커트의 머리는 백발에 가까웠다. 그렇게 세월의 흔적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오히려 자기관리에 얼마나 투철한 선수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감탄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일본 야구가 싫고 일본 선수가 얄미울 수 있다. 그래도 이치로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메이저리거 16년째를 맞이한 일본의 전설은 언제부터 재능이 꽃폈을까. 이치로의 재능이 만개한 것은 프로 3년차인 1994년이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소속이었던 그는 당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인 210안타를 기록했다. 이후 7년 연속 수위 타자를 획득한 것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2000년 오프시즌에 포스팅시스템(최고 이적료를 써낸 메이저리그 구단에 우선협상권을 주는 공개입찰제도)을 이용해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일본 최고의 타자, 아시아 최고의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을 이치로는 자신의 방망이로 풀어줬다. 데뷔 첫 해였다. 2001년 이치로는 타율 0.350, 56도루로 타격왕과 도루왕을 차지했다. 여기에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4년에는 262안타를 날려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갱신했다. 10년 연속 3할-200안타 이상을 기록하며 이치로는 스스로가 메이저리그의 톱클래스임을 보여줬다.
27세에 미국에 진출한 점은 기록을 축적하는데 다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안타를 적립했다는 건 훌륭한 타격 능력 탓이기도 하지만 타수가 절대적으로 많았던 것도 도움이 됐다. 통산 도루 성공률이 80%가 넘는 그의 기동력을 살리고자 팀에서는 가장 많은 타석이 돌아오는 1번 타순을 이치로에게 맡겼다.
출전 경기 수가 많았던 것도 그의 3000안타 기록과 관계있다. 지난해까지 15년(2001~2015) 동안 이치로의 출전경기 수는 140경기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5년 41세의 나이로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을 때, 노장인 그의 출전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말린스의 주전 외야수들이 부상을 입거나 혹은 슬럼프에 빠지면서 결과적으로는 153경기나 출전했다. 결국 27세부터 시작된 그의 3000안타 기록은 타격 기술과 철저한 체력 유지, 그리고 금강불괴나 다름없는 부상 방지 등이 결합돼 만든 숫자다.
덧붙이자면 이치로는 오른손 투수에게 통산 0.308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0.328을 기록 중이다. 좌타자는 좌투수에게 약하다는 야구계의 상식에서 이치로는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