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터널》 《덕혜옹주》, 벌써부터 심상찮은 입소문
매년 여름(7~8월) 극장가에서는 대전(大戰)이 벌어진다. 국내 대형 투자·배급사와 외화 직배사들이 그해의 대표 주자를 내세운 채 한판 힘겨루기를 하는 시기다. 올여름에도 외화 시장에는 맷 데이먼이 복귀한 ‘본’ 시리즈 《제이슨 본》과 수퍼 히어로 못지않은 ‘수퍼 악당’들의 이야기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등이 포진한 채 국내 극장가 공략에 나서고 있어 만만치 않은 흥행 싸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한국영화의 기대작은 ‘빅4’로 불릴 만큼 모두 기대를 모으는 ‘강자’들이어서 자칫 완승이 예상된다. 이 네 편의 양상은 ‘재난영화 대 시대극’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 주자는 투자·배급사 NEW가 야심 차게 준비한 《부산행》이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여러모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일단 ‘최초’의 기록들이 눈에 띈다. 사실상 국내 상업영화 신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좀비 블록버스터라는 점. 그리고 그간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 등 사회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라는 점 등이다. 지난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에서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열렬한 현지 호응을 이끌어냈다. 주최 측으로부터 “역대 미드나잇 스크리닝 상영작 중 최고”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다.
스펙터클 넘은 인간 본성…《부산행》 《터널》
《부산행》은 부산으로 가는 KTX 안,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분투를 그린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열차는 지옥도를 연상케 한다. 일단 이 영화는 여름용 블록버스터로서 제몫을 톡톡히 해낸다. 기괴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떼로 덤비는 좀비를 파괴력 있게 그린 점이 주효했다.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운동 에너지, 좁고 긴 열차 안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좀비 떼를 뚫고 전진하는 방식을 이용해 스릴과 쾌감을 동시에 안기는 연출도 호기롭다. 칸국제영화제 공개 이후 《설국열차》(2013)와 《월드워Z》를 합친 듯한 영화라는 평이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르적 쾌감을 전달하는 데만 집중했다면 조금 덜 흥미로운 영화가 됐을 것이다. 《부산행》은 재난영화에서 보편적으로 다루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녹아 있는 한편, 동시대 이슈들을 환기하게 하는 힘이 뛰어난 영화다. 보는 재미뿐 아니라 다양하게 읽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 텍스트라는 뜻이다. 열차 안의 사람들에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목적이다. 누군가가 살기 위해선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한 극한 상황. 선의(善意)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 타인의 희생에 무감각한 자본가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좀비로 득실대는 열차 안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누군가가 옳다고 믿는 가치는 과연 모두에게 선(善)인가. 《부산행》이 주목하는 건 좀비가 만드는 스펙터클만이 아닌, 그 너머의 인간 본성이다.
또한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지금 여기’를 바라보게 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 등장하는 괴생명체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프리즘 같은 존재였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재난은 한국 사회의 공포와 불안의 온상을 형상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지옥도가 펼쳐지는 눈앞의 풍경과 달리 매스컴은 이를 단순 폭력 사태로 갈음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는 광범위한 정보의 양은 되레 판단을 마비시킨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통해 되살아나는 감각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드러난 정부의 무능함에서 우리가 느꼈던 분노와 무력감이다.
8월에는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이 공개된다. 《부산행》의 KTX가 출발하기 하루 전의 이야기를 그린다. 프리퀄이 비슷한 시기에 그것도 다른 장르의 영화로 공개되는 프로젝트 역시 한국 상업영화가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뉴 타입’ 연출가 연상호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시험대다.
시대의 고찰,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언론에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쇼박스가 8월 선보이는 《터널》 역시 또 다른 차원의 ‘재난의 사회학’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기발한 스토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던 《끝까지 간다》(2014)의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 남자 정수(하정우)의 이야기다. 터널 밖에서는 그의 구조를 두고 시시각각 상황과 입장이 달라진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 앞에서도 국가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일이 다반사인 수상한 시절에, 단 한 명의 생사를 둘러싼 담론을 다루는 영화는 우리의 현실에 어떤 이야기를 던질 수 있을까. 다른 무엇보다 윤리적 딜레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영화일 것으로 보인다.
CJ엔터테인먼트는 성공 확률 5000대 1의 작전에 사활을 걸었다. 1950년 9월15일,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작전을 그리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서다. 이 영화는 유엔군 상륙에 앞서 첩보전을 펼치며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전쟁 블록버스터다. 해군 첩보부대 장학수 대위(이정재),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 그리고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을 중심으로 긴박했던 그날의 상황을 스크린에 재연할 예정. 각자의 신념에 따라 조국의 운명을 구하려 했던 이들의 드라마가 영화의 축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출사표는 《덕혜옹주》다.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만 13세의 어린 나이로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손예진)의 이야기다. 다른 세 편의 영화와 달리 블록버스터를 지향하지 않는다. 감정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손예진과 《봄날은 간다》(2001) 등 멜로 감성을 깊숙이 건드리는 영화들을 만들어온 허진호 감독이 손을 잡은 만큼,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펼치는 드라마가 《덕혜옹주》의 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옹주의 어린 시절 친구 장한 역은 박해일이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