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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세 편의 다큐, <자백> <7년-그들이 없는 언론> <마담 B>

북한에 살던 여자가 한국에 왔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오빠를 만나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은 그들이 화교 집안이라는 것을 문제 삼았다. 6개월간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에서 감금 취조를 당한 여자는 자신의 오빠 유우성씨가 북한 공작원이며 그가 건넨 자료를 북한으로 전송했다고 자백했다. 공포가 만든 거짓 자백이었다. 지난한 법정 싸움 끝에 2015년, 남매는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이미 짓밟힐 대로 짓밟힌 뒤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었다.

누가 어떻게 무슨 의도로 국가의 적을 만들어내는가. 다큐멘터리 <자백>이 던지는 질문이다. 유우성씨 남매의 사례로 문을 여는 이 영화는 이후 국정원의 취조를 받다가 의문사한 탈북자 한준식씨, 1970년대 학원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재일동포 김승효씨의 자백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를 통해 단발적 사건이 아닌 한국 현대사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간첩 조작의 ‘역사’가 펼쳐진다.

영화 에서는 최승호 PD의 저돌적인 화면의 힘에 놀라게 된다. 과 궤를 같이하는 영화 (왼쪽 사진)는 탈북자들의 여정을 좇고 은 해직 언론인들의 피로와 절망, 희망과 분노를 지켜본다. ⓒ 전주국제영화제

이 다큐는 4월30일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제가 열리기 전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상영작으로 선정한 뒤 영화제 측에 국정원의 외압은 없었느냐”는 걱정 어린 질문이 나올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작품이었다. 독립언론 ‘뉴스타파’ PD이자 MBC에서 해직된 최승호 PD가 연출했다.  황우석 사건, 스폰서 검사 사건 등 굵직한 탐사보도를 진행했던 베테랑 PD의 진가는 작품 속에서 발휘된다.

권력자에게 거침없이 다가서는 카메라

최승호의 카메라는 거침없다. 그저 간첩 조작 피해자들의 육성을 담는 데 그치는 다큐가 아니라는 얘기다. 진실 탐구를 위해 집요하게 종횡무진하는 그의 카메라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하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권력자들에게도 거침없이 다가선다. “사과하시면 되잖아요. 당시 최고 책임자로서의 발언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면서. 그들의 대답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다.

거칠게 밀리고 저지당하는 와중이라 기술적으로 잘 찍은 화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취재에 대한 이 끈질긴 태도와 배짱은 결국 다큐에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진실의 맥락을 맞춰 나가기 위한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는 힘이 된다. 유우성씨 사건이 최종심에서 판결이 뒤집힌 건 국가기관의 위증을 반박할 수 있도록 팩트를 찾아 진실을 제시한 최 PD의 카메라 때문이었다.

베테랑 PD지만 <자백>을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취재원 접촉부터 외교적 마찰에 대한 고민, 자칫 자신도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만들면서 내내 공포에 시달렸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다큐의 몇몇 장면에서는 사건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연출자의 의무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가해자들에 대한 개인적 울분 사이의 조절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있는 한준식씨의 딸과 전화로 접촉하는 장면은 <자백>의 하이라이트이자 최 PD가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했던 때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취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윤리적 딜레마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내 “순간순간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전해야만 하는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넘을 수 있는 선’이라고 마음을 다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첫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저돌적인 화면의 힘에 놀라고, ‘이것이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인식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됐다는 것이 공통적 반응이었다. 한 외국인 관객은 놀라움을 표하며 “국정원은 왜 이렇게 많은 간첩을 조작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자백>, 가을께 극장 개봉도 추진

<자백>을 찍으면서 숱하게 떠올렸을 질문. 최승호 PD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국정원은 간첩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국가 권력이) 당신의 옆 사람도 간첩일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며 대한민국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간첩을 잡는 사람에게 포상을 하기도 한다. 개인·조직·세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탐사 저널리즘 다큐의 힘을 보여준 <자백>은 가을께 극장 개봉을 추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자백>과 연관성을 띠는 다큐 두 편을 더 목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백>의 연출가 최 PD는 김진현 감독의 다큐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서는 출연자로 등장한다. 권석재·노종면 등 YTN 해직 기자들과 최승호·정영하·박성호 등 MBC 해직 언론인들을 주목하는 다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2015년까지 19명의 언론인이 해고됐다는 것을 짚으며 문을 여는 이 다큐는, 7년의 세월 동안 저항한 해직 언론인들의 곁에서 그들의 저항을 지켜본다. 피로와 절망, 그리고 희망과 분노를 오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들어올 때 변화를 이뤄내겠다는 건 오산”이라는 최 PD의 말은 <자백>이 던지는 질문과도 오버랩된다.

좀 더 직접적으로 <자백>과 궤를 같이한 상영작도 있었다. 윤재호 감독의 다큐 <마담 B>다. <자백>이 탈북자들이 한국에 당도한 이후의 상황이라면, <마담 B>는 그 직전까지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탈북을 돕는 여성 브로커 ‘마담 B’가 이 다큐의 주인공이다. 그 개인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분단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분단은 수많은 ‘경계인’을 낳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중국에서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들의 여정(旅程)을 함께 좇았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그 생생한 기록이 이 다큐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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