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쌍용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도 ‘中心’ 잡기 위해 총출동
미국의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중저가용 전기차 모델3의 사전 예약을 받았다. 한 번 충전해 215마일(346km)을 달릴 수 있는 만큼 소비자들이 열광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불과 1주일 만에 32만5000대의 예약주문 물량이 몰렸다. 약 16조원 규모로, 예약주문 역사상 단일 품목으로는 한 주간 최대 판매 성과를 기록했다.
4월25일 중국 베이징 순이구 중국국제전람센터에서 열린 ‘2016 베이징 모터쇼’에도 친환경 자동차들이 주류를 이뤘다. 폭스바겐과 시트로엥, 도요타, 혼다, 닛산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를 대거 선보였다. 도요타는 일본 자동차 업계 최초로 중국에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V)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코롤라’와 ‘레빈’ 등 2종의 PHV 모델을 이번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최근 흥행몰이에 성공한 테슬라 역시 ‘모델X’와 ‘모델S’를 올해 모터쇼에 선보였다.
지드래곤 등장에 현대차 부스 인산인해
현대차와 기아차, 쌍용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도 하이브리드 모델을 공개했다. 현대차는 중국형 ‘베르나’(현지명 위에나) 콘셉트 모델과 함께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중국 최초로 공개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병호 부사장(베이징현대 총경리)은 “올해 모터쇼에는 친환경 기술과 함께 현대차만의 미래 모빌리티 철학이 많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전시 과정에서 해프닝도 발생했다. 현대차의 프레스 행사는 모터쇼 개막일인 4월25일 오전 11시20분(현지 시각)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국내 인기가수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0시30분부터 현대차 부스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급기야 중국 공안(公安) 수백 명이 출동해 현대차 부스뿐 아니라, 주변을 이중 삼중으로 막아서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본 행사가 진행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취재진뿐 아니라 방문객 수천 명이 현대차 부스 주변에서 지드래곤을 기다렸다. 잠시 후 지드래곤이 무대에 등장하자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중국에서 한류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중국 판매율이 향후 다시 회복세로 돌아설지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현대차는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된 베르나와 아이오닉 등을 통해 전세 역전을 노리고 있다. 전초전은 나쁘지 않았다. 4월 현대차의 중국 점유율이 올 들어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벌써부터 신차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아차 역시 중국형 ‘뉴 K3 터보’와 함께 친환경 소형 SUV인 ‘니로’를 공개했다. 특히 기아차는 KX5 X-Car존을 운영하면서 영화 <엑스맨>의 코스프레 등을 선보여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밖에도 쌍용차는 전략 모델인 ‘티볼리 에어’를 선보였고, 르노삼성차는 QM5 후속 모델로 예상되는 신형 ‘꼴레오스’를 공개했다.
이곳에서 만난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중국의 친환경 신에너지 차 시장 흐름을 선도해나갈 예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최근 대박을 친 테슬라의 전기차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테슬라가 최근 사전 예약을 받은 전기차의 실제 출시일이 내년 말”이라며 “이때가 되면 기존 완성차 업체들도 충분히 기술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미리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경우, 자칫 나머지 라인업의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기차를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 만드는 것이 팩트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올해 모터쇼에서는 중국차 업계의 반격도 거셌다. 과거 중국 모터쇼장은 해외 유명 브랜드를 베낀 ‘짝퉁차’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물론 일부 업체들이 벤츠의 ‘스프린터’나 랜드로버의 ‘이보크’, 현대차의 ‘싼타페’ 등을 빼박은 차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자체 개발한 기술과 디자인의 차들을 선보였다.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기술력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완성도도 높았다. 현지에서 만난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디테일이 다소 떨어지고 내구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서도 “중국 로컬 브랜드의 성능과 디자인이 기존 업체를 충분히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러에코(LeEco)의 자율주행 전기차 ‘러시(LeSEE)’가 대표적이다. 러에코는 중국 최대 동영상 서비스 업체로, 독자 개발한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를 사용해 자율주행을 수행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209km다. 전기차이니만큼 연비도 우수하다. 최근 테슬라가 공개한 ‘모델S’보다 성능 면에서 한 단계 앞선 차라는 것이 러에코 관계자의 설명이다.
‘중국이 짝퉁차 천국’은 이제 옛말
중국의 창안(長安)자동차는 자체 개발한 반(半)자율주행차 ‘루이청(Raeton)’을 선보였다. 차량에는 전방 카메라와 레이더, 고정밀 지도 등이 탑재돼 있다. 덕분에 루이청은 본사가 있는 충칭(重慶)에서 출발해 모터쇼가 열리는 베이징(北京)까지 약 2000km를 무인 기술로 달려왔다. 2018년께 자율주행 기술을 일부 적용한 자동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지리(吉利)는 한 번 충전에 253km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 ‘디하오(帝豪)EV’를 선보였다. 베이징차는 러스왕과 함께 자율주행 전기차를 개발 중이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최근 인기몰이 중인 SUV를 대거 선보였다. 지난해 중국 SUV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급증했다. 이 중 60%가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국 토종 브랜드들이었다. 올해도 중국 업체들은 SUV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때문에 독일과 일본, 한국 등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도 중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맞춤형’ SUV를 대거 선보였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신규 수요가 대부분 SUV에 쏠려 있다”며 “향후 수입차 업계와 중국 토종 및 합작 업체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