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내일은?“삼성이 변하려면 이재용 먼저 변해야 한다” 지적 나와
“삼성은 첨단 IT(정보기술) 기업인가?” 주변 기자들에게 물어봤다. 일단 IT 관련 지식에서 시사저널 편집국 1, 2등을 다투는 ㄱ 기자의 대답. “소프트웨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IT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반도체나 휴대폰을 감안하면 첨단 제조기업이라고 하면 적합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아이폰과 맥북을 사용하는 이른바 ‘애플빠’인 ㄴ 기자의 대답. “아니지! 첨단 IT 기업 하면 구글·애플·테슬라지. 삼성은 애플보다는 ‘팍스콘’(대만의 애플 하청 제조업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객관성을 고려해 갤럭시노트5를 사용하는 ㄷ 기자에게 물어봤다. “하드웨어(휴대폰) 빼고는 첨단이라고 할 만한 게 있나?”
마지막으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ㄱ 기자와 더불어 IT 분야 지식 1, 2등을 다투는 ㄹ 기자에게 물었다. “삼성은 제조기업, 장치산업을 하는 기업에 가깝지, 첨단 IT 기업은 아닙니다. 소니랑 비슷하죠.”
“삼성은 첨단 IT 기업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의외였다. 첨단 IT 기업에 대한 정의가 애매모호하지만, 이런 대답이 그저 삼성그룹을 일방적으로 ‘폄훼’하는 것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만든다고 해서 첨단 IT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반도체 경쟁 업체인 SK하이닉스나 휴대폰 제조업체인 LG전자에 대해 같은 첨단 IT 기업이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최근 1~2년간 계속되고 있는 삼성그룹의 사업 개편 및 구조조정은 이런 질문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그 답이 보인다. 국내 소비재 및 장치 산업을 바탕으로 시작해 휴대폰과 가전 등으로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른 삼성그룹. 삼성은 현재 기로에 서 있다. 애플이나 구글, 테슬라와 같은 첨단 IT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냐, 소니와 같은 첨단 제조기업에 머무를 것이냐. 삼성도 휴대폰 판매가 주춤하기 시작한 1년 반 전쯤 같은 질문을 한 번 던져봤을 것이다. 지금의 구조조정은 그 답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찌라시에 돌던 내용이 어느 날 현실화돼”
오는 5월10일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지 정확히 2년이 된다. ‘삼성’이란 아시아 변방의 브랜드를 글로벌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총수의 장기 부재(不在)는 그룹 전체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사업 개편을 위한 구조조정에 변수가 생겼다.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이 회장의 건강 상태는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경영의 지휘봉을 좀 더 빨리 넘겨받아야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결국 삼성의 5년 내지 10년 후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제 이 부회장이 짊어진 숙제가 됐다.
외부에서 보는 이 부회장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영속이 가능한 미래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경영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첨단 기업과 재벌 기업.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1~2년간 삼성그룹 구조조정을 해석한다면 앞으로 있을 구조조정의 방향과 미래 삼성의 모습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다. 지난 2년간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했다고 알려진 굵직굵직한 삼성그룹의 구조조정과 현재 시장에서 돌고 있는 삼성그룹 관련 소문들을 살펴보자. 먼저 이미 진행된 구조조정이다.
● 2014년 11월 삼성테크윈·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4개사, 한화그룹에 매각 결정
● 2015년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 2015년 10월 삼성SDI 화학 부문, 삼성정밀 화학, 삼성BP화학 등 화학 계열사 롯데케미칼에 매각
● 2016년 2월 삼성 엔지니어링 유상증자 성공
● 2016년 2월 제일기획 매각 추진
다음은 현재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과 관련된 소문이다.
● 에스원 매각
● 삼성카드 비롯한 일부 금융 계열사 매각
● 삼성물산 건설 부문 매각
●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과 합병
이런 소문에 주목한 이유는 지난 2년간 시장에서 구조조정과 관련해 회자되던 소문들이 대부분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루머’라고 일축했지만, 몇 개월 후 큰 테두리에서 대부분 현실이 됐다. 이는 삼성그룹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실 ‘찌라시’(사설 정보지)에 삼성과 관련해 돌던 내용들이 어느 날 보면 현실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며 “사업 구조 개편이나 구조조정은 커뮤니케이션팀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는 부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지금도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런 전례에 비추어볼 때 지금도 시장에서는 이와 같은 소문이 단순하게 소문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삼성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주력할 것”
이미 매각했거나 매각이 예상되는 사업들을 보면 몇 가지 원칙 속에서 개편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백화점식으로 이곳저곳에 걸쳐 있는 사업을 단순화하려는 것은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다. 특히 장치 또는 기간 산업과 같은 구(舊)시대 이미지가 강한 사업은 대부분 정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로서 회사 성장에 지대한 기여를 했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에 물음표가 달린 사업이라는 점과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기업들을 쳐낸 것도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삼성 입장에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다른 대기업에는 여전히 주요 사업이기 때문에 삼성 입장에서는 매각 시 적지 않은 인수대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특히 화학 계열사 매각 과정을 보면 이런 원칙이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삼성그룹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삼성BP화학·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의 화학 부문을 롯데에 각각 매각한 바 있다.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들은 1980~90년대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치고 올라오면서부터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화학 분야에 대한 위기감이 계속 제기되어왔었다. 삼성BP화학의 사장이었던 이동휘 전 사장이 2014년 8월 기자와 만났을 때 했던 말에는 삼성그룹이 화학산업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전 사장은 1981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줄곧 재무팀에서만 일하다가 BP화학 사장을 맡았던 그룹 핵심 재무통 중 한 명이었다. “원료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일본을 벤치마킹해 단기간에 산업을 발전시켰고, 중국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본과 제품 영역이 겹칠 수밖에 없었죠. 우리는 만들어진 제품 대부분을 중국에 수출했는데, 중국이 최근 설비를 증설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해 수출길도 막혀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황입니다.”
그나마 삼성BP화학은 화학 계열사 중에서 가장 실적이 좋았고, 나머지는 적자를 면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삼성그룹이 화학 계열사를 매각할 것이란 소문이 나돈 것도 2014년 말부터였다. 삼성은 결국 한화와 롯데에 화학 계열사를 모두 매각했다. 한화의 경우, 한화케미칼과의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롯데는 경영권 분쟁 등으로 인해 시장 가격보다 삼성이 비싸게 팔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방위산업도 비슷하다. 삼성 입장에서는 굳이 없어도 되는 사업이지만, 다른 기업에는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매각할 경우 실탄이 쌓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이미지는 삼성이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첨단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갤럭시S7 언팩 행사에 주커버그를 초청하거나, VR을 전략 사업으로 미는 것은 삼성이 소프트웨어 제휴와 하드웨어 개발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시장에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며 “이런 기업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들은 삼성 입장에서는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비슷한 맥락으로 삼성 내부에서는 에스원이나 삼성카드의 매각이 거의 기정사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에버랜드 매각설까지 돌고 있는 실정이다. 한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은 “제일기획 매각 소식이 알려졌을 때 직원들 사이에서 에버랜드도 매각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며 “다만 에버랜드는 창업주 때부터 소유한 부동산 등이 걸려 있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그룹이 애플·구글이 집중하고 있는 전장 사업 그리고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바이오 사업에 나서고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삼성그룹에서는 이런 원칙을 ‘사업 집중화’라고 설명한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의 또 다른 방향은 이재용 체제를 좀 더 확고히 하는 데에 있다. 두 가지 과제 중 이쪽에 더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계열사 매각이 이제껏 언급한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계열사 간 인수·합병 및 지분 이동은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 삼성그룹이 이런 작업에 들어간 것은 이건희 회장 때부터 예정돼 있었던 수순이지만, 지난해 하반기 삼성그룹에 대한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경영권 공격이 들어오면서 더욱 빨라졌다.
재계에서는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지배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생명의 인적 분할 후 삼성물산과의 합병 가능성,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 후 삼성물산과의 합병 가능성 등 다양한 향후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 계열사가 매각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두 회사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신증권 김한이 연구원은 “대주주의 관점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의 최대 과제는 삼성전자 지배력 확대”라며 “‘삼성전자 지배력 확대’ 과정에서 전자와 물산의 분할합병이 마지막 수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정점으로 현재는 어느 정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동시에 그동안 삼성그룹의 발목을 잡아왔던 순환출자나 금산분리 건도 어느 정도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를 바꿔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을 좀 더 확실히 한다고 해도 여기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일단 일부 지분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오너 일가가 전체 주주와 회사의 이익보다는 대주주를 위해 회사를 사고파는 행동만으로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지난해 엘리엇 펀드의 공격 때도 제기된 바 있다. 일개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공적 기금이 투입되는 것이 정당하냐는 논란이 그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전체 계열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과연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계열사 매각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충분한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을 때의 반발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의 결과가 성공적일 것인지, 투자가 적절한 것인지 여부는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강화된 지배력이 삼성을 ‘첨단 IT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데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어찌 됐든 방향을 잘 잡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며 선제적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삼성그룹 출신으로 지난해 1월 <삼성의 몰락>(RHK 출판)에 이어, 지난 3월4일 <이건희전>(새로운현재 출판)을 연이어 펴낸 심정택씨는 “삼성이 변화하려면 이재용 부회장이 먼저 변해야 한다. 그가 과연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처럼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대중 앞에서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가 만든 신제품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재벌 3세 이 부회장의 ‘은둔식 행보’와 ‘첨단 IT’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길이 관건이란 지적이다.